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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Mar 28. 2021

라면이 생각날 땐 냉이된장국

라면 끓일 때보다 10분만 더 투자하세요

멸치라는 생물은 장렬히 생을 마감해서 수많은 국의 국물 맛을 내주는 고마운 존재다. 글을 쓰기 전에 멸치의 생에 경의를 표한다.


봄에만 먹을 수 있는 국 중에 쑥국이 담백하면서 시원한 맛이라면 냉이된장국은 정갈하면서도 시원한 맛이다. 특히 냉이 특유의 그 향은 인스턴트로 찌든 우리의 혀와 위장과 뇌를 맑게 해 주고 달래준다.


냉이된장국은 조리법이 매우 간단하기 때문에 걸핏하면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려는 게으른 1인 가구에게 꼭 추천하고픈 메뉴다. 게다가 가격도 싼데, 보통 사이즈의 냄비에 끓여서 네댓 끼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 2000원 정도밖에 안 한다.


냉이된장국은 냉이만큼 된장도 요리의 핵심 재료다. 부모님이 담아주신 집된장이 최고다. 부득이 집된장이 없다면 파는 된장으로 끓여도 된다. 냉이의 강한 향 때문에 집된장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그럴싸한 국물 맛이 날 것이다.


준비물 : 다시멸치, 된장, 냉이


1. 보통 사이즈의 냄비에 다시멸치와 된장(한 숟가락 반 정도)을 넣고 물을 붓는다. 숟가락으로 된장을 풀어 준다. 끓고 난 후에 냉이를 넣으면 국물의 수위가 더 올라가므로 나중에 국물이 넘치지 않을 정도로 물을 붓는다. 가스불을 켠다(강불)


2. 물이 끓어서 멸치 육수가 좀 우러날 동안 냉이를 씻는다. 뿌리 부분을 위로 향하게 해서 흐르는 물에 하나씩 씻은 다음, 볼에 물을 넘치게 둔 상태로 서너 번 더 헹구어 낸다. 냉이가 자라느라 이렇게 고생해서 싱크대까지 왔는데, 대략 5분도 안 걸리는 씻는 걸 귀찮아한다면 당신은 냉이라는 피조물에게 죄책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또다시 라면을 선택한다면 나이 들어서 생길 위장병은 당신 탓!)


3. 끓고 있는 물에 냉이를 투하한다. 불을 중불로 해서 멸치 육수와 냉이의 맛이 제법 우러나서 당신의 혀가 만족할 때까지 5~10분 더 끓인다. 여기서 중요한 팁은 처음 맛본 국물이 약간 싱겁다고 해서 된장을 더 투척하면 안 된다. 끓일수록 국물이 줄어들어 조금씩 짜게 되고, 식사 때마다 다시 데워야 하기 때문에 그걸 감안해서 약간 싱겁게, 삼삼하게 끓인다.


모든 야채류는 너무 오래 끓이면 별로다. 특유의 산뜻한 향, 그 신선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몇 분을 더 끓여야 할지 모르는 요린이는 가스불 앞에 계속 서서 수시로 맛을 보면 된다. 당신 혀에 '아, 딱이다. 시원하네.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싶은 때 불을 끄면 된다.


이번에는 북어도 좀 넣어 보았다.(멸치 넣을 때 같이 넣으면 됨) 러시아산은 동태든, 북어든 깊은 맛이 안 난다. 아마 멀리서 오느라 오랜 냉동에 어즙(?)이 빠져나가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북어는 북어라 냉이된장국과 안 어울리는 느낌은 전혀 없고 시원하다.


두부를 넣어도 되지만 두부를 넣으면 국물이 좀 텁텁해진다. 개인적으로 비추.


오늘은 휴일에도 일하러 가서 늦게 마치는 마눌대왕님의 어명으로 끓였다. 요리 전에는 좀 귀찮았지만 끓여놓고 나니 마눌대왕님도 고맙다 하시고(아따! 국 맛있네. 감탄이 나오네), 시원한 국물 맛에 나도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인스턴트에 지친 당신의 불쌍한 위장을 위해서, 그 위장 때문에 뇌까지 당신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 걸지도 모르니까 딱 10분만 더 투자해서 라면보다 냉이된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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