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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Mar 21. 2021

아, 대단한 살림이여

살림살이가 쉬운 게 아니었구나

신은 왜 알약 하나로 생명을 유지하고, 안 싸도 되고, 청소도 안 해도 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지 않았을까?


삼시 세끼를 먹기 위해서는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장을 보고, 장 본 재료로 요리를 하고, 다 먹고 난 후에는 싸야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한다. 하루 이틀만 청소를 안 해도 물건 위든, 바닥이든 틀림없이 먼지가 쌓인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의식주 해결을 위한 이 단순한 활동들을 죽을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왜 좀 더 고상하고 고차원적인 일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이토록 귀찮은 일들을 죽을 때까지 할 수밖에 없도록 인간의 삶을 설계했을까?


먹고 입고 자는 일이 누구에게는 매우 절박하거나 즐거운 일이니 단순히 고차원의 일을 하기 위한 저차원의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런 반복적인 일이 대부분인 살림살이가 정말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외벌이를 하던 젊은 시절, 집에서 게으름을 피운다고 아내를 하찮게 봤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부자가 돼서 가사도우미와 요리사와 운전기사를 둔다고 해도 그렇게 마음이 편할 것 같진 않다. 임금을 지불한다고 해도 그분들의 노고로 내 노고를 대신하는 것이니 만큼 부담 없고 즐거운 생활만은 아니지 싶다.


신의 깊은 섭리를 알 길은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라는 것이 그 섭리 중 하나라는 것이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몸과 마음에 온갖 병이 찾아오니 말이다.


식기세척기와 로봇청소기 등 시간을 절약해주는 여러 도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물건을 소유하는 것, 집안에 뭔가를 들이는 것도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든다. 소유가 많을수록 삶이 복잡해지고, 신경쓸 것도 많아진다.


어찌 보면 지루한 살림살이지만 내 손으로 내 입맛에 맞게 요리해서 가족과 함께 먹는 즐거움도 있고, 가사를 나누면서 가족이 서로 위해주는 애정도 유지된다.  그런 장점이 있다.


구형 승용차를 아주 깨끗이 타고 다니는 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드는 건 자기 삶을 조용하고 충실히 살아간다는 느낌 때문이다. 살림을 부지런히 사는 것도 그런 느낌인 듯하다.


육아를 포함해서 단순하고 지루한 살림을 잘 살아내는 것이 결혼생활을 이해하고, 배우자를 배려하게 되는 첫 번째 관문이 아닐까?




모든 단순하고 사소하고 미미한 존재들이 그렇듯이... 살림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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