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여행처럼 살 수 있을까

'주도경험'을 기록하기로 했다

by 밤우




삶을 돌이켜보면 유난히 선명하게 남는 순간들이 있다.

기억을 떠올리면 그때의 풍경과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런 순간.


나에겐 스물셋에 다녀온 남미 여행이 그랬고,

스물여덞의 제주살이가 그랬다.


둘 다 한 달 남짓이었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왜 어떤 시간은 흐릿하게 지나가고, 어떤 시간은 이렇게 또렷이 남는 걸까.




남미 여행을 하면서, 생전 안 쓰던 일기를 매일 한 페이지 가득 40일을 꼬박 썼다.

지금 그 일기장을 펼쳐보면, 그때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경험 앞에서 기뻐했고 어떤 문장을 쓰면서 머뭇거렸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구 반대편, 낯선 언어와 문화,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

그래서였을까. 하루하루가 또렷했고, 나는 조금 더 용감해졌다.



제주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누군가에겐 그저 평범한 국내 여행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 시간이 너무나 낯설고 자유로웠다.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걱정은 잠시 내려놓은 채 하루를 온전히 만끽했다.

여태껏 어중간하게 허리를 굽히고 있다가 이제야 쭉 펴고 인생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제주에서의 한 달이 끝나갈 즈음, 문득 그 차이가 궁금해졌다.

분명 똑같은 30일인데, 왜 어떤 시간은 흐르듯 사라지고, 어떤 시간은 나를 바꾸는 경험으로 남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유는 단순했다.

매일 새로운 경험이 있었고, 그걸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다는 것.


여행지에서는

낯선 골목을 걷는 것, 작은 브런치 카페에 가는 것, 심지어 길을 헤매는 것조차 하나의 '사건'이 됐다.

그런 작은 경험들이 쌓여서, 아주 밀도 있고 오래 기억되는 하루가 남게 된다.


그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매일 일기를 썼다.

그날 느낀 감정과 기억을 한 줄이라도 더 붙잡아두고 싶어서.

그날의 경험을 한 줄 한 줄 내 인생의 페이지에 채워 넣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멀리 떠나야만 특별한 하루를 살 수 있나?"

그래서 시작한 게 '주도경험 일기'다.


거창한 건 아니다.

퇴근길에 안 가본 서점에 들러본다거나,

주말에 생전 처음 해보는 요리를 해보는 정도.

익숙한 길 대신 골목 하나를 돌아가는 것도 좋다.


별 것 아닌 행동이지만, 그게 '처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하루는 조금 달라진다.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특별한 하루.

그런 하루를 모아보면, 일상도 여행처럼 느껴진다.


신기하게도, 그러다 보면 일상 속에서도 약간의 설렘이 생긴다.

뭔가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내가 그 하루를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이 하루를 내가 만들어간다'는 믿음이 생긴다.



물론, 매일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고, 의욕이 바닥인 날도 있다.

그래도 괜찮은 것 같다.

이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내 삶을 조율하기 위한 연습장 같은 거니까.


언제 다시 큰 여행을 떠나게 될진 몰라도,

매일의 작은 여행을 이어갈 수는 있게 되는 것 같다.

조금씩 새로운 하루가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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