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후 우리 집은 신길동으로 이사했다. 예전 동네와 멀지 않았지만 이사한 후론 가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사춘기 중학생을 지나느라 바빴고, 몇 달 후면 수험생으로 살아야 할 일 년 때문에 숨 쉬는 것마저 무거운 고등학생이었다.
그날은 신길동 신풍시장 근처에 사는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초겨울 바람에 잔뜩 웅크린 채 마이마이 카세트의 테이프를 타고 흐르는 유콜 잇 러브(You call it love)에 집중하려고 이어폰을 깊이 눌렀다. 우신초등학교 정문 앞 육교쯤이었을까. 육교 아래 술 취한 남자가 몸을 가누지 못해 비틀거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를 보지 못한 나는 주정뱅이의 몸이 쏠리자 미처 피하질 못하고 몸을 돌리려다 중심을 잃었다. 차도로 기울어지는 찰나 때마침 지나가는 자전거와 부딪혔다. 그 참에 중심을 잡고 일어나 자전거 주인에게 고개를 조아려 사과하고는 아직 흐느적거리는 주정뱅이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더는 취객이 쫓아오지 않을 거리가 되어서야 고개를 들고 숨을 골랐다.
그때 옆 차도로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갔다. 털모자를 눌러쓴 거무튀튀한 자전거 주인의 얼굴은 마스크에 가려 두 눈만 드러났다. 얼핏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의 눈이 반짝였다. 신호에 멈춘 자전거를 한 발로 지지하고 뒤돌아본 그가 나를 보고 웃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제야 자전거 뒤 안장에 묶인 비닐에 싸인 신문 뭉텅이가 눈에 들어왔다. 숨이 멎는 듯했다.
오빠다. 갑작스러운 놀람과 반가움에 현기증이 났다. 왜 필연은 준비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걸까. 나는 오빠를 부르려 했다.
“어어… ”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려다 자꾸 울대에 걸려 엎어졌다. 그 사이 자전거 페달이 움직이더니 자동차 물결과 합류해 사라졌다.
‘아직 이곳에 사는구나.’
지금도 아이들의 가방을 메고 숙제 검사와 핫도그를 먹는지 궁금했다. 오토리버스 작동으로 덜거덕거리는 카세트에서 다시 음악이 나오자 가슴 저 밑 구덩에서 불씨 하나가 올라왔다.
그때 어른들에게 친구 집에는 나와 덩치뿐 애당초 마스크 오빠는 없었다고 말했어야 했을까. 만약 내가 오빠의 인형을 던지고 도망치지 않았다면, 문 앞에 놓인 인형을 갖고 왔더라면 지금 그를 거리낌 없이 반갑게 부를 수 있었을까.
내가 오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반갑다는 말인지 미안하다는 말인지 헷갈렸다. 속수무책 떠밀려 쫓겨난 오빠의 낮은 울음이 환청으로 맴돌았다.
조금 전 자전거 주인의 눈에서 예전 마스크 오빠한테서 보던 반짝임과 비슷한 걸 보았다.
한낮의 흐린 오후, 나는 내내 길에 서 있었다. 자꾸 되감기를 하려는 무심한 카세트가 딸칵거릴 때마다 시간을 방패 삼아 기억을 묻어버린 그날의 방조가 떠올라 눈물이 났다.
그 후로 5년.
혹시 싶어 영등포와 신길동을 몇 번 찾았지만, 다시 그를 만나지 못했다. 나는 칼에 베인 상처에 스며든 피처럼 유년의 한때를 그대로 가슴에 담았다. 하지만 믿었다. 여전히 그는 어느 후진 동네에서 피터 팬처럼 아이들을 모으고 행진하며 핫도그 대신 햄버거를 먹고 다방구 대신 게임을 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