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달아 수십 번 전화하는 학생 아버님

블라블라 뚝!

by 서내

오랜 시간 사교육에 몸 담았으니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많은 학생들을 만났고, 다양한 학부모님들을 상대했다.


학교 다니는 학생 신분일 때는 교실 안 '작은 사회'에서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하면 되었기에 이렇게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인지는 알지 몰랐다. 사회적 견문이 좁았음이라. 어느 사회집단이든 그렇겠지만 학원도 어떤 사람이 방문할지 모르는 미지의 공간이다. 학원에 와서 상담을 하고 마음이 맞아 인연이 되어야 끈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이다.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한 학생의 아버님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은 몇 해 전, 12월 31일.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날 일어났다.


a는 중학교 때 우리 학원에 처음 왔다. 그렇게 성적을 올렸고 고등학교까지 함께 했다.

a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아이로 조금 사고를 치는 아이이기도 했다. 그래도 공부는 제법 했고, 수업도 알려주는 대로 잘 따라왔다. a는 종종 아버님 이야기를 했기에 아버지께서 엄하시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a가 예비고 1을 앞두고 있었고, 학원에서는 다음 해 3월 모의고사를 대비한 모의평가를 진행하는 날이었다.


a는 오늘 안 가면 안 되냐는 연락이 왔다.

기말고사도 끝났고, 졸업을 앞두고 있으니 마음이 풀어져 놀고 싶었으리라.

학원 입장에서는 아이가 결석을 하면 안 되니 일찍 끝내 줄 테니 오라고 회유했다.

그리고 학원에 도착한 a

- 선생님, 오늘 00시 00분 되면 알려주세요. 어디 가야 해요

- 알았어. 시간 되면 알려줄게. 들어가서 시험 잘 보고 와! 파이팅!


시간이 흘러 a가 말한 시간이 되었다.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었기에 따로 불러내기가 망설여져서 '조금 더 풀어도 되겠지.'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더 보태면 사실 a가 일찍 놀러 가고 싶어서 하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흘러서 a의 아버지의 문자가 왔다.

- a학원에 있나요?

- 안녕하세요 아버님. 네 a 지금 모의고사 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실까요?


나의 행동이 큰 불상사를 일으킬 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답장과 동시에 아버님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되었다.


- a가 학원에 있어요?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해야지. a 찾으러 다니느라고 내가 얼마나 블라블라

- 아 죄송합니다. 아버님. 오늘 수업이 있어서 수업 진행하느라구요.

- 내가 a 없어진 줄 알고, 학교도 가고, 어디도 가고, 블라블라

- 죄송해요. 아버님. 지금 바로 보내야 할까요?

- 내가 a 찾아다느니라고 블라블라. 뚝!


화가 나신 아버님께 사죄를 하고, 굽신거렸다.

a가 말한 시간이 아버님과의 약속인 줄 알지 못했다.

학생의 아버님은 전화를 하시다 화가 나셔서 본인의 분에 못 이겨서 전화를 뚝 끊으셨다.


'아, 내가 시간을 체크해서 말해줬어야 했는데, 하.'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지금 원래 기존 학원 수업시간인데 하는 억울함도 살짝 들었다.


다시 학원 전화기가 울렸다. 따르릉


- a가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해야지! 에? 연락 좀 하고 삽시다! 네?

- 아. 예 죄송해요 아버님

- a 찾으러 다니느라 내가 블라블라 뚝!


본인 말씀만 하시더니 전화는 또 도중에 끊겼다. '근데 평소에 무슨 연락을 하고 살아야 할까요?'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화가 나신 아버님의 화를 풀어들이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디를 가시려고 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화가 나신 모습을 보니 너무 죄송했다.


그리고 다시 울리는 전화, 전화 폭주가 시작되었다.

똑같은 얘기를 하시다 끊고, 다시 전화 와서 똑같은 이야기 하다 끊고, 7번 정도 반복되었다.

이제 나도 좀 화가 났다. 죄송하다고 했고, 자꾸 의미 없는 전화로 짜증을 내시니 어쩌란 말인가? 수업시간에 수업하는 게 잘못이야?


따르릉, 또 전화가 울린다.

나는 남자 원장님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전화를 받으라 했다.


나에게 대충 전해 들었던 터라 똑같은 이야기를 또 하고 계시니

남자 선생님도 조금 언성이 높아졌다.


- 예 아버님. 그래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강한 사람 앞에선 약해지고, 약한 사람 앞에선 강해지는 걸까?

본인에게 굽실대던 나에게는 강하게 나오고, 본인에게 강하게 나온 사람 앞에서는 화가 바로 수그러들었다.


그렇게 a 아버님의 전화는 끝이 났다.

욕이란 욕을 먹고 나니 나도 기분이 언짢았다.

12월 31일 내 마지막 날 저녁을 이렇게 기억해야 한다니 속상했다.




그렇게 전화가 끊기고, 30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a에게서 문자가 왔다.


-죄송해요. 선생님




문자를 받고 마음 한 켠이 씁쓸했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나.

더구나 내가 이뻐하던 아이였기에.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자신의 마음을 담아 눌러썼을 아이의 마음이..



나는 a에게 무슨 답장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답장을 했다.

- 연말 잘 보내고, 새해맞이 잘하자!





울적한 기분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 아버님이 또 전화가 왔다.

나를 대하는 태도와 남자 선생님께 대하는 태도가 달랐기에 상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진 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도착한 문자하나

-선생님 아까는 제가 죄송했습니다. 연말 잘 보내십시오.





*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시간 체크는 정말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a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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