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권력, 말이 만드는 지배와 저항

by 바나나 슈즈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한 대신이 임금을 섬기던 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딸을 임금의 후궁으로 들이고자 했다. 그러나 제나라에서는 신하가 딸을 후궁으로 바치는 것을 '진'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옷을 바치다'라는 뜻의 '진의(進衣)'와 같은 발음이었다. 대신은 이 말이 자신의 딸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그는 딸을 보낼 때 "소녀를 왕께 그저 '알현'시킵니다(覲見)"라는 표현을 썼다. 임금은 그 표현의 변화를 알아채고 노해 대신을 처벌했다. 언어의 선택이 권력 관계를 흔들었던 것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도구만이 아닌 권력 관계를 반영하고 형성하는 강력한 매개체다. 공자는 『논어』에서 "명불정즉언불순, 언불순즉사불성(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이라고 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은 단순한 언어적 정확성을 넘어 사회 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정치적 행위였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부르는지, 그 명명의 권한이 바로 권력의 표현이었다.


조선 시대의 언어 예절은 권력 관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고, 존댓말과 반말의 사용은 엄격한 사회적 위계를 반영했다. 양반은 상민에게 반말을 썼고, 상민은 양반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존댓말을 써야 했다. 궁중에서는 더욱 복잡한 언어 규범이 존재했다. 임금에게 말할 때는 특별한 존칭을 써야 했고, 임금의 이름은 언급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언어적 관습은 권력 구조를 일상적으로 강화하는 장치였다.


흥미로운 점은 권력을 가진 집단이 언어의 규범을 설정하고 통제한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관리계층이 사용하는 '아언(雅言)'이 표준어로 여겨졌다. 민간에서 사용되는 '수어(俗語)'는 저급하다고 여겨졌다. 조선 시대에도 한문은 권력층의 언어였고, 한글은 오랫동안 '언문(諺文)'이라 불리며 격하되었다. 말과 글의 위계는 사람의 위계와 일치했던 것이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저항도 언어를 통해 이루어졌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이런 측면에서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세종대왕은 서문에서 "백성을 위하여 훈민정음을 만든다"고 밝혔다. 그때까지 문자 사용이 권력층의 독점물이었던 상황에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의 보급은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권력의 재분배를 의미했다. 말할 수 있는 권리, 기록할 수 있는 권리는 곧 권력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동양 철학에서는 '언권(言權)'이라는 개념이 있다. 말할 권리와 권력의 관계를 의미한다. 한비자는 "임금이 말을 많이 하면 신하들이 권력을 얻는다(人主多言 則臣得其權)"고 했다. 말의 독점은 권력의 독점과 연결된다는 통찰이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군자는 말을 아낀다(君子寡言)"라는 관념이 있었다. 이는 단순한 미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유지의 전략이기도 했다.


조선 후기 공론장의 확대는 언어와 권력의 관계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정치적 논쟁이 확대되고, 서원과 향약을 통해 지방의 목소리가 중앙으로 전달되면서, 권력의 분산이 이루어졌다. 박지원은 『연암집』에서 "백성의 입은 막을 수 없다(民口難防)"고 했다. 발언권의 확대는 곧 정치적 참여의 확대와 연결되었다. 말의 권리는 곧 정치적 권리의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언어와 권력의 관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사회에서 누가 언어의 규범을 정하는가? 누구의 말이 더 가치 있게 여겨지는가? 이러한 질문은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를 들여다보는 창이 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담론이 권력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이는 동양 철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인식했던 바다.


특히 우리말의 경우, 존댓말과 반말의 복잡한 체계는 사회적 관계와 권력 구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직장에서 상사는 부하에게 반말을 쓰고, 부하는 상사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언어적 관행이 권력 관계를 강화한다. 청와대의 대변인이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할 때, 그 존칭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권력 관계의 표현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언어 사용을 통해 끊임없이 권력 관계를 재생산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언어와 권력의 관계가 더욱 복잡해졌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누구나 발언권을 얻게 되면서, 전통적인 언어적 권위는 도전받고 있다. 신조어의 폭발적 증가, 인터넷 언어의 확산은 기존 언어 규범의 권위를 흔든다.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언어적 헤게모니가 등장한다. 많은 '좋아요'를 받는 게시물, 많은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의 말이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는 식이다.


언어는 권력을 강화할 수도, 저항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예로부터 민중들은 풍자와 해학을 통해 지배층을 비판해왔다. 판소리나 탈춤에서 양반을 조롱하는 표현들은 언어를 통한 저항의 한 형태였다. 한편 지배층은 '아비투스(habitus)'라고 불리는 특유의 말투, 어휘, 표현 방식을 통해 자신들의 계급적 정체성과 권위를 유지했다. 말은 계급을 드러내는 표지였던 것이다.


언어가 가진 권력적 측면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언어의 해방적 가능성도 기억해야 한다. 조선의 학자 정약용은 백성들의 언어를 직접 듣고 기록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그는 『목민심서』에서 "백성의 말을 경청하라"고 강조했다. 권력자가 아닌 이들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것은 정치적 행위이자 윤리적 실천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언어의 권력 관계를 인식하고 대응해야 할까?


우선, 자신의 언어 사용이 어떤 권력 관계를 반영하고 강화하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누구에게 어떤 말을 쓰는지, 누구의 말에 더 귀 기울이는지를 돌아볼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재생산하고 있는 권력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다음으로, 발언권이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자가 말했듯이 "널리 배우고 묻기를 좋아하라(博學而好問)."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것은 진리에 다가가는 길이자, 권력의 편중을 바로잡는 방법이다.


결국 언어와 권력의 관계는, 말이 품은 사람과 사람이 품은 말의 본질적인 측면이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관계와 위계를 구성하고 반영하는 살아있는 체계다. 주자(朱子)가 말했듯이 "언어는 마음의 소리요, 문자는 언어의 그림이다(言者心聲也 文者言之畫也)." 우리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어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가 하는 문제는 곧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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