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들을 꼽으라면, 그중 상당수는 '말'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했거나, 했어야 할 말을 하지 않았을 때다. 문제는 대개 말의 내용이라기보다 '그 말을 했어야 할 때'를 놓친다는 데 있다. 동양 철학에서는 이를 '시중(時中)'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때에 맞게 중도를 지키는 것이 도(道)이니라." 여기서 '시중'은 단순히 중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때에 맞게 균형을 잡는 지혜를 뜻한다. 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때를 잘못 선택하면 독이 되고, 평범한 말이라도 적절한 순간에 건네면 약이 된다.
숙종 13년(1687년), 조정에서는 큰 논쟁이 벌어졌다. 당쟁이 격화되어 임금의 마음마저 혼란스러웠다. 이때 노성한 대학자 송시열이 임금을 찾아와 한참을 침묵했다. 숙종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자 송시열은 이렇게 말했다.
"폐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만, 지금은 때가 아닌 듯합니다. 마음이 평안해지셨을 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 짧은 말이 오히려 숙종의 마음을 움직였다. 송시열은 며칠 후 다시 불려가 자신의 간언을 펼쳤고, 숙종은 그의 말을 경청했다. 간언할 때도 때가 있음을 안 지혜였다.
공자는 '불역불구(不抑不詘)'라 했다. 말을 억누르지도 지나치게 굽히지도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균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혼란한 시대에는 강직한 말이 필요하고, 평화로운 시대에는 부드러운 말이 어울린다. 말의 균형점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이것이 시중의 핵심이다.
조선의 명재상 황희는 세종 임금을 모시며 한 번도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지혜는 '말할 때'를 알았다는 데 있었다. 어떤 날은 임금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간언을 다음날로 미루었고, 급한 일이라도 임금이 다른 신하와 대화 중일 때는 끼어들지 않았다. 황희의 시중(時中)은 결국 그를 조선의 가장 존경받는 재상으로 만들었다.
불교에서는 '응기설법(應機說法)'이라 하여, 부처가 중생의 기질(機)과 수준에 맞게 가르침(法)을 설했다고 한다. 같은 진리라도 상대에 따라 다르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초보자에게는 단순한 비유로, 이해가 깊은 이에게는 깊은 법문으로 말이다. 말의 진정한 효과는 상대와 상황에 맞춰질 때 극대화된다.
중국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은 "말은 때를 얻어야 빛나고, 꽃은 봄을 만나야 피어난다(言得其時則明, 花遇春而開)"고 했다. 아무리 좋은 말도 그것이 필요한 때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로의 말은 슬픔이 한창일 때 필요하고, 조언의 말은 마음의 문이 열렸을 때 효과적이다.
시중(時中)의 지혜는 일상에서도 빛을 발한다. 아이가 실수했을 때 즉시 꾸짖는 것보다 감정이 가라앉은 후 대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연인과 중요한 대화를 나눌 때도 피로하거나 배고픈 상태를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말의 내용 못지않게 말의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한비자는 "꽃이 지극히 아름다워도 제철이 아니면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는다"고 했다. 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훌륭한 내용도 때를 놓치면 빛을 발하지 못한다. 또한 말은 한번 내뱉으면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사람을 알고 말하고, 때를 알고 말하라(知人而談, 知時而談)"고 했다.
결국 말의 시중(時中)은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상황에 대한 예민한 감각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단순한 말솜씨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통찰과 세상에 대한 지혜를 필요로 한다.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말을 건네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추구해야 할 말의 미학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