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기억, 말로 이어가는 시간의 흐름

by 바나나 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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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할머니가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시고 종종 해주셨던 사소한 추억들이 있다. "네가 세 살 때, 마당에서 강아지를 쫓아다니다 넘어져 무릎을 다쳤지."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할머니의 말씀을 통해, 그 기억은 내 것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무릎을 만지면, 할머니의 목소리와 함께 흐릿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쩌면 실제 기억이 아닌, 할머니의 말씀으로 재구성된 이미지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누구의 기억인가? 할머니의 말이 내 안에 심어준 기억이다. 언어는 이처럼 시간을 넘어 기억을 전달하고, 보존하고, 때로는 새롭게 창조한다.


인간은 왜 이야기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가? 공자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이 말은 언어와 기억의 본질적 관계를 암시한다. 과거의 경험과 지혜를 언어로 표현하고 전달함으로써, 우리는 미래를 위한 자원을 축적한다. 동양 철학자들은 이를 '문화적 전승'의 핵심으로 보았다. 주자(朱子)는 "천하의 도를 전하려면 반드시 말과 글이 있어야 한다(傳天下之道 必有言語文字)"고 했다. 기억과 지혜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언어인 것이다.


동양의 '구비전승(口碑傳承)' 전통은 말의 힘을 보여준다. 문자가 널리 보급되기 전, 중요한 지식과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판소리, 민요, 설화는 말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구전 전통이 단순히 정보 전달이 아니라 정서적, 문화적 기억의 보존이었다는 점이다. 『심청전』을 듣는 사람들은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효(孝)의 가치와 인간 삶의 보편적 비극과 희망을 집단적으로 경험하고 기억했다.


조선 시대의 '기록 문화'는 더욱 체계적인 기억의 보존 방식을 보여준다. 특히 '사초(史草)'는 국왕과 신하들의 언행을 기록한 사관들의 메모로, 이후 『조선왕조실록』의 바탕이 되었다. 사관들은 현장에서 들은 말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고, 이 기록은 당대에는 철저히 비밀로 유지되었다. 언어를 통한 기억의 보존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사관의 기록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도 있었다.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단종을 폐위시킬 때, 사관 성삼문은 사초를 숨기다 목숨을 잃었다. 이는 언어로 남긴 기록, 즉 기억의 힘을 두려워한 권력자와, 그 기억을 지키려 한 지식인의 대결이었다.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 전승은 가장 친밀한 형태의 언어적 기억 전달이다. 조선 시대의 가문에서는 족보와 함께 가문의 이야기가 중요했다. "너희 증조할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가족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서사였다. 이런 이야기는 공식 역사에 기록되지 않지만, 한 가족의 집단적 기억과 가치관을 형성한다. 어린 시절 들은 조상의 이야기는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행동 방식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다.


역사적 트라우마와 관련해서는 증언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일제강점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을 확립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행위다.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최초로 공개 증언을 했을 때, 그 말은 50년 동안 억압되었던 기억을 해방시켰다. "내가 위안부였다"라는 짧은 한 문장은 역사를 새롭게 쓰게 했다. 언어는 이처럼 침묵 속에 묻힌 기억을 되살리고, 개인적 트라우마를 집단적 인식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민담과 설화에는 한 민족의 집단적 기억과 무의식이 담겨 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세계관과 윤리적 가치를 담고 있다. 호랑이를 속이는 지혜, 형제간의 우애, 선악의 구분과 같은 주제는 언어를 통해 세대를 넘어 전해져 온 문화적 DNA다.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말은 의미를 담는 그물이다(言者所以在意)"라고 했다. 민담과 설화의 언어는 민족의 집단적 기억을 담아내는 그물인 셈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기억 보존의 방식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블로그, SNS, 클라우드 저장소는 개인의 일상부터 중요한 사회적 사건까지 모든 것을 기록하고 저장한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이라는 이름은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개인사가 디지털 언어로 시간 순서대로 정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온다.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 정작 무엇이 중요한 기억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조선의 문인들은 중요한 사건과 감정만을 일기에 기록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모든 것을 포스팅한다.

기억과 언어의 관계에서 흥미로운 점은 '서사(敍事)'의 힘이다. 우리는 단편적 사실보다 이야기 형태로 기억한다. 역사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의미 있는 서사로 과거를 구성할 때 그것은 생생한 기억이 된다. 퇴계 이황은 『언행록(言行錄)』에서 선현들의 일화를 수집했는데, 이는 단순한 교훈집이 아니라 유학의 가치를 생생한 이야기로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호모 나란스(Homo narrans)', 즉 '이야기하는 인간'인 것이다.


언어는 기억을 보존하지만, 동시에 변형하기도 한다. 매번 이야기될 때마다 기억은 조금씩 달라진다. 이는 약점이 아니라 언어적 기억의 생명력이다. 중국 철학자 장자(莊子)의 "물고기 논쟁" 일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혜자와 장자가 물고기의 즐거움에 대해 논쟁하는 내용인데, 이 대화는 수천 년간 전해지면서 다양한 해석과 변형을 거쳤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더 풍부한 의미가 생성되었다. 기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창조되는 살아있는 과정인 것이다.


현대 심리학은 '자서전적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자신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 즉 자서전적 기억에 기초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기억하고 말하는 일련의 이야기다. 조선 시대 문인들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자성록(自省錄)'을 남긴 것도 이와 통한다.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함으로써 정체성을 확립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집단 기억에 있어 '기념일'과 '의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3·1절, 광복절과 같은 기념일에 반복되는 말과 의례는 집단적 기억을 강화한다. "대한독립만세"라는 구호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특정 역사적 경험과 가치를 환기하는 언어적 의례다. 공자는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고 했다. 여기서 '예'는 의미 있는 행위와 언어의 체계를 뜻한다. 기념일의 언어적 의례는 이런 '예'의 현대적 형태라 할 수 있다.


결국 언어와 기억의 관계는 순환적이다. 기억은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보존되며, 그렇게 보존된 언어는 다시 새로운 기억을 형성한다. 한국의 시인 김수영은 "말은 생각을 낳고, 생각은 말을 낳는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말은 기억을 낳고, 기억은 말을 낳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기억을 형성하고, 그 기억이 다시 우리의 언어를 규정한다.


오늘날 우리는 '기억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진단이 있다. 디지털 저장 장치가 발달할수록 우리의 내적 기억 능력은 감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의 지혜는 진정한 기억은 단순한 정보의 저장이 아니라, 의미 있는 서사를 통한 내면화임을 가르친다. 공자가 말했듯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學而不思則罔)." 진정한 기억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언어를 통해 의미화된 경험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그것을 언어화할 것인가? 그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과 미래를 결정한다. 퇴계 이황은 "글을 통해 도를 전하고, 도를 통해 마음을 전한다(以文傳道 以道傳心)"고 했다. 언어가 담아내는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지혜와 가치의 보고(寶庫)다. 말이 품은 기억, 기억이 품은 말. 그 순환 속에서 우리의 시간은 의미를 얻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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