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조선 중종 때의 일이다.
조정에서는 김안로라는 신하가 왕의 총애를 받으며 권세를 부리고 있었다. 많은 신하들이 그의 전횡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지만 중종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때 한 젊은 관리가 조용히 경륜있는 대신(大臣)을 찾아가 물었다.
"대감, 어찌하면 임금께서 저희의 간언을 들으실까요?"
대신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다.
"임금 앞에서 말할 때는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하네. 첫째, 때를 기다리고. 둘째, 간결하게 말하고. 셋째, 마음을 담아야 하네."
이 조언을 들은 젊은 관리는 며칠 동안 고민했다. 그러다 중종이 후원에서 꽃을 감상하며 기분이 좋아 보일 때, 그는 조심스레 다가가 말했다.
"전하, 김안로의 전횡이 심합니다."
단 한 문장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말 속에는 깊은 우려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중종은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안로는 점차 조정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 일화는 『중종실록』에 실려 있지는 않지만, 후대 문헌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말하기 지혜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이 네 글자는 말의 품격에 관한 핵심을 꿰뚫고 있다. 이것은 말의 강약 조절을 뜻하는 조언이 아니다. 상황과 맥락 속에서 정확한 자리를 찾으라는, 말의 ‘온도 조절’에 가까운 통찰이다.
앞의 이야기에서 등장한 조언에는 말의 적절함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이 담겨 있다.
때를 기다리고, 간결하게 말하고, 마음을 담아야 한다.' 이 세 가지는 과유불급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첫째,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 상태와 상황을 읽는 지혜다.
아무리 옳은 말도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소용없다. 젊은 관리는 중종이 기분 좋을 때를 택했다. 기회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말이 스며들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린 태도였다.
둘째, '간결하게 말한다'는 것은 핵심만을 전달하는 절제다.
젊은 관리는 장황한 비판이나 화려한 수사 없이 단 한 문장으로 핵심을 전했다. 말이 많아지면 오히려 그 무게가 분산된다.
셋째, '마음을 담는다'는 것은 진정성의 문제다.
같은 말이라도 그 안에 담긴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른 울림을 준다. 젊은 관리의 말에는 개인적 이해관계가 아닌, 나라를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중종의 마음을 움직인 진짜 이유일 것이다.
이 세 가지 원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말의 과잉'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SNS에는 숙고 없이 쏟아내는 말들이 넘쳐나고, TV 토론에서는 상대의 말을 끊고 자신의 주장만 반복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런 말들이 과연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하에 말이 많은 것보다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 낫다"고 했다. 말의 자연스러운 이치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적절함'이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말. 너무 강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은 어조.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속도. 이 모든 균형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과유불급의 지혜다.
좋은 말은 맑고 투명하면서도, 그 안에 깊이를 품고 있어야 한다. 진심은 수사보다 깊고, 논리보다 오래 남는다. 그 울림이 곧 말의 품격을 만든다.
젊은 관리의 일화는 분명한 교훈을 남긴다. 말의 가치는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마음을 다해 전한 한마디. 그것이야말로 과유불급의 지혜이자, 말의 품격을 세우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