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창.고 - 반갑다창문밖고양이
파양/재분양) 노르웨이 숲 고양이 그것도 희귀한 크림색.
출산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분양합니다.
...
8년 전
나는 인터넷에서 이 문구를 보다가
노르웨이 숲이라는 말에 혹했다.
그때 함께 사는
용감이도 꽃님이도 토비도
모두 길고양이였기 때문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뭔가 있어 보이는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며
"어때? 멋있지? 내가 키우는 고양이야!"
우쭐대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희귀한 크림색 노르웨이 숲 고양이라는 문구에
그대로 마음이 흔들렸다.
분양가가 얼마였던지 기억이 안 날 만큼
그 문구 하나만 보고
아내의 손목을 끌어 차에 태우고
5시간 거리를 쏜살같이 내달렸다.
8년 전의 내 모습.
그땐 그랬다.
그렇게 달려가 만난 로이.
나는 곧바로 후회했다.
로이는
다른 고양이와의 싸움 때문에
온몸은 여기저기 딱지 투성이었고
근육량이 적어서
침대 높이도 뛰어오르지 못했다.
어려서도 아니고
몸집이 작아서도 아니다.
그때 로이 나이 두 살.
파양 이유는 출산 때문이라 써져있었지만
막상 가보니 상황은 달랐다.
"제가 종묘로 쓰려고
크림색을 어렵게 뺀 거예요.
희귀한 색이라니까요.
분양해서 데리고 가시더라도
교배처가 나오면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로이를 파양 하는 사람들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
아내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저희는 데리고 가자마자 중성화 수술할 거예요."
그러자 그 사람의 말투가 바뀌었다.
"어쩔 수 없죠. 뭐. 하지만 알아두세요.
그 고양이 이동장 들어가면 난리 쳐요.
차 타고 갈 때도 난동 부리고 그럴 테니까
조심하는 게 좋아요."
그 말을 듣는 데 속에서 열불이 났다.
이 아이와 어떤 추억이 있었고,
그래서 이런 건 조심해주시고...
가서 잘 돌봐주세요, 하는 말이 아닌
희귀하니까 교배하지 않으면 아깝다는 둥,
그놈은 사납고, 난동 피우고,
차를 타면 난리를 치고,
다른 고양이들과 수시로 싸우고...
그런 말들로 배웅을 대신하는
그들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떠나야 했다.
나처럼 그런 문구에 끌려서
고양이를 입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로이 같이 힘들어하는 고양이들이 생긴다는 걸
알아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양이로 나를 자랑하고 싶었던
허영심은
부끄러움으로 조각나 버렸다.
그 조각들이
마음 속 여기저기를 뾰족 뾰족 찔러댔다.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로이를 생각하면 속상하고...
어리석음에 머리까지 아파왔다.
그대로 계속 운전을 하다간 안될 것 같아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깐 멈춰 섰다.
아내에겐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한 참 동안 밤바람에 머리를 식혀야 했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내 욕심으로 인연이 시작되었어도
이제 함께 살아가야 할 로이에게
미안함으로 사과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차에 올랐을 때
아내는 로이를 이동장에서 꺼내어
품에 가만히 안고 있었다.
아내가
로이를 보면서
그동안 힘들었지 하고 물었다.
로이의 커다란 눈에서
거짓말처럼
눈물이 또로로 흘러내렸다.
나는 로이에게 말했다.
"미안해. 로이야!
이제부터 우리집에서 같이 살자."
로이는 집에 가는 동안
난리를 피우지도 않았으며,
큰 소리로 울어대지도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도 다른 고양이와 싸움은 없었다.
나의 허영심은
어리석음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미안함으로 바뀌었고
이내 책임감으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그렇게 두 살짜리 로이는
용감이 꽃님이 토비 다음으로
우리 집 고양이 넷째가 되었다.
마당에 밥먹으러 오던 고양이 토비 이야기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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