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의력이 약한 사람이란 걸 부정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저녁에 갑자기 정전이 됐다. 다른 방은 그대로인데 안방 쪽의 TV와 공기청정기가 켜지지 않아서 의아하던 참이었다. 집엔 아무도 없었고 고양이와 나 둘 뿐이었다.
알고 봤더니 두꺼비집이 내려간 거였다. 컵 안에 있는 물이 콘센트 틈 사이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난 그걸 그걸 2시간 뒤에나 알았다. 뒤늦게 약속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예비 신랑이 그걸 발견했다. 자동으로 두꺼비집이 내려가지 않았다면 집이 불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협탁 위에 있던 컵을 고양이가 떨어뜨린 것 같았다. 떨어진 건 떨어진 거고, 당연히 그 후에 내가 보고 치웠어야 하는 건데 이상한 억울함이 몰려왔다. 그래서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한 거 아니야. 왜 나한테만 그래?"
그리고 한참을 싸웠다. 그냥 주의하겠다는 한 마디만 했어도 될 일을 괜한 자존심에 고집을 부렸다.
생각해 보면 이전에도 그랬다. 내 부주의로 친구들과 같이 간 여행에서 숙소 바닥 전체를 물바다로 만들어 놓은 적이 있다. 그때도 "왜 나한테 그래?"가 나의 첫 번째 반응이었다. 그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그냥 인정하기가 싫었던 거다.
이 사건을 통해 깨달은 건 (알고는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 많이) 나는 주의를 잘 못 살피는구나라는 사실이었다. 켜지지 않는 TV와 공기청정기 쪽에 과몰입해서 근처에 있던 콘센트를 못 봤다. 이 정도면 거의 앞을 못 본 거나 다름없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제야 '내가 ADHD인 건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부정하고 싶었구나'를 깨달았다. 누군가는 약을 먹으면 해결이 될 일이 아닌가 싶을 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아직까지 약은 먹고 싶지가 않다. 고집일 수도 있고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 수도 있다.
엄마의 잔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던 것도 "왜 나한테 그래?"라는 마음이 컸었던 것 같다. 최근에야 그걸 깨달았다. (엄마에게는 이미 나의 ADHD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많은 대화를 하며 최근에는 엄마와 사이가 유해졌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간혹 남들이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딴생각을 자꾸 하게 돼서 대화를 놓친다. 그런 후에 "근데 이건 이야기했었나?" 하며 뒷북을 자주 친다. 챙길 걸 다 적어놓고 나서도 급하게 나간다고 놓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큰 힘이 된다. 최소한 뭔가를 놓칠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완전히 어그러지는 일은 적을 것이라 믿는다. 실제로 싸운 뒤에 더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그런 나 때문에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지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부족한 나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거치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것도 그 여정의 일부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가진 단점이 생각보다 별거 아닌 것으로 바뀌는 과정도 겪게 될 것이다. 그때의 나는 좀 더 성장해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