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편지
진아, 항상 네 이름을 부르는 게 좋았다.
내 이름에는 없는 자음과 모음, 마지막 글자 하나만으로도 어색함이 없는 너의 이름. 'ㅇ'이 많아 이름만큼이나 공허함과 공백이 많던 나를 너는 잘도 메꿔주었다.
언젠가 방문했던 교정, 너와 나란히 앉아 도란거리던 벤치는 황량한 콘크리트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여름이면 사락거리며 풍겨오던 풀내음의 여운이 아직도 코끝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꿈만큼이나 많았던 자잘한 고민들을 그 벤치에 앉아 매일같이 도시락 까먹듯 풀었다 다시 싸고는 했었다.
급경사로 기울어진 하굣길을 내려올 때면 늘 팔짱을 낀 채, 앞 발꿈치에 잔뜩 힘을 싣고 내려와 즐비하게 늘어선 분식집에 일과처럼 드나들었다. 뜨끈한 칼국수와 매콤한 떡볶이를 입에 넣으면 그 많던 고민들도 식도를 타고 함께 녹아내렸다. 그 순간만큼은 행복과 웃음만이 영원할 것 같았다. 너도 가끔씩 그때를 떠 올리는지 모르겠다.
진아, 삶의 허들을 넘을 때마다 나의 상념은 자주 그 벤치와 분식집으로 가 앉아 있고는 했다. 네가 결혼 생활로 비쩍 말라갈 때도, 어린 K를 들춰 업고 나와 햄버거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종종 얘기를 나눌 때도, 남편이 부재중인 너의 집을 방문했을 때도, 그리고... 네가 이혼을 결심했을 때도.
네가 K를 배에 품고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뉴스에서 온통 태풍으로 떠들썩했던 날로 기억한다. 네 남편이 음주운전으로 길 가던 중학생을 치었던 날이. 합의를 보기 위해 부푼 배를 부여잡고 병원에서 무릎까지 꿇었다고 너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일이 네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더는 불행한 일이 없을 거라고.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을 때, 너의 모든 것은 이미 파괴되어 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K를 물건처럼 담보 잡아 벼랑 끝까지 너를 밀어붙였던 네 남편과 시댁 사람들. 그 끔찍한 사람들에게서 물건처럼 버려질 K를 데려오기 위해 너는 전사처럼 싸우고 울부짖었다. K는 내 삶의 전부라고. K를 보내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벌레 먹은 가지를 쳐내야 건강한 새 곁가지가 나온다는 것을 사람들은 종종 잊고는 한다. 가지를 쳐내는 너의 손끝에 한치의 망설임이 없을 때가 네가 말한 그 때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결심을 하기까지 수많은 진딧물이 양분을 갈취하며 빨아대도 한치의 흔들림이 없던, 아니 어쩌면 그렇게 보였던 너의 모습에서 나는 진심으로 '존경'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진아, 이제는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버린 그 편린들이 꿈에서라도 너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으면 한다. 너와 내가 좋아했던 찰리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일 테니.
언젠가처럼 너와 다시 한번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고, 객석등이 켜지면 너의 이슬 같은 맑은 웃음을 보고 싶다. 다 큰 어른이 되어버린 K에게도 안부를 전하며, 우리가 항상 편지 말미에 주고받았던 말을 마지막으로 써본다.
'친구야, 사랑한다. 그리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