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셜록 홈즈와 같은 추리 소설을 읽다 보면 안개 자욱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런던 거리가 늘 궁금했다.
잿빛 하늘, 고르지 못한 도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차가운 공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어둑한 뒷골목... 날씨만으로도 장르별 소설 한 편씩은 나올 것 같은 풍경.
어릴 때 두 손과 이불로 가리고 무서움에 눈물까지 흘려가며 봤던 '전설의 고향'은 어떤가. 귀신 등장씬만 나오면 어김없이 천둥과 번개, 폭우가 단골 날씨다. 제목에 끌려 단숨에 읽었던 '폭풍의 언덕' 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요즘 우리나라 날씨를 보면 가보지도 않은 런던 거리가 꼭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한여름 장마 같은 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만 파전에 막걸리 한잔 할 수 있는 여유와 함께라면 모를까 평일에 내리는 비는 그다지 달갑지가 않다.
일단 아침 출근길부터 몸이 무겁다. 평소 좋지 않은 관절 마디마디가 쑤시기 시작한다. 기분은 잿빛 하늘만큼이나 우중충하고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멀쩡한 우산은 아들 녀석들이 모두 가져가고 남아 있는 캐릭터 우산을 쓰고 아파트 입구를 나선다. 단지 안을 걸어가고 있는데 여러 명의 아저씨들이 짐을 나르고 있다. 하필이면 이런 날 이사하는 집이 있는 모양이다. 비를 맞아가며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분들을 보니 다들 참 부지런히 산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발걸음에 힘이 좀 들어간다.
출근하니 다들 첫마디가 날씨 얘기다.
"햐~ 요즘 뭔 놈의 날씨가 이렇노!"
"그러게요. 날씨가 미쳤네요."
"에구구... 싹신이야..."
"날씨가 이러니 일이 손에 잘 안 잡히네요."
"이런 날은 따뜻한 차 한잔씩, 어때요?"
일을 하다가도 비 내리는 창밖을 유독 자주 쳐다보게 된다. 젊을 때는 비 오는 날이면 이런저런 옛 추억에 젖고는 했는데 이제 웬만큼 나이 먹고는 옛 추억도 빗물에 다 씻겨 내려갔는지 그저 비멍이다. 식은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간 밤에 들었던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를 떠올린다.
내 안에 가시가 너무도 많아서 작은 새조차도 앉지 못하고 날아가 버리는 황량한 가시나무. 가을의 쓸쓸함과 겨울의 아리함이 더해진 날씨 같다.
청명한 가을 날씨면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조금은 둥실 떠오를까?
그러면 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눌러 앉히기 위해 다독여야 하지 싶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바람과 구름은 그저 순리대로 흐를 뿐인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만 유독 아우성인 것 같다. 비가 오면 온다고 아우성, 볕이 나면 난다고 아우성, 더우면 덥다고 아우성, 추우면 춥다고 아우성. 날씨는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까?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럽다는 말을 사람들은 자주 한다. 변덕스러운 것은 날씨일까 우리들 마음일까? 혹 날씨를 핑계 대고 싶은 건 아닐까?
날씨의 어른이들은 내일은 어떤 날씨를 기다릴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