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먹는 음식엔 설렘이라는 MSG가 첨가되기 마련이다. 나는 맛대가리 없는 음식으로 유명한 영국에서도 맛깔난 걸 결국 찾아내곤 했다. 그래서 아무리 쿠바음식이 맛이 없다는 후기를 봐도 ‘에이 그래도…’ 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건 많으니까. 적어도 쿠바를 여행하기 전까진 그랬다. 쿠바를 다녀온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쿠바는 다 좋은데 음식이 맛이 없어요’.
여기에 한마디 보탠다. ‘진짜 그렇더라’.
이처럼 쿠바가 가진 문화적 명성에 비해 그들의 음식 문화는 비교적 초라하다. 쿠바 음식이 얼마나 맛이 없냐고 묻는다면, 또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웃기게도 그렇다. 아주 먹지 못하는 수준은 아니고 먹을 만하다. 다만 모든 음식에 풍부함이 없다. 자꾸자꾸 먹고 싶은 감칠맛 이라던지, 입안에 맴도는 깊은맛 이라던지, 이거 하나 더 먹어야지, 하는 그런 만족스러움이 부족하다. 오 이거 맛있겠다 하고 시작해서 음.. 하고 끝난다. 한마디로, 겉은 그럴 듯해 보이는데 속이 비었다.
쿠바에서 질리게 먹었던 음식 중에 하나인 프레스드 샌드위치(Pressed Sandwich) 얘기를 해보고 싶다. 빵, 치즈, 햄이 들어간 단촐한 샌드위치인데, 나는 한국에 오고나서야 매일 지겹게 먹었던 그 샌드위치가 바로 그토록 기대했던 ‘쿠바샌드위치’였단걸 깨달았다. 매일 먹으면서도 모르고 있었다니! 이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나의 잘못이었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American Chef)」를 통해 쿠바샌드위치에 대한 환상을 키운 나의 잘못.
그러니까 영화에선, 우선 갓 구워 따끈한 빵에 고소한 버터를 잔뜩 바른다. 빵의 아랫면이 바삭바삭하게 토스트 될 동안 옆에서는 특제소스에 숙성된 바비큐를 지글지글 익힌다. 잘 구워진 빵 위에 고기, 치즈를 넘치도록 쌓는다. 새콤한 맛의 소스를 덮는 면에 바르고 프레스 기계에 놓는다. 샌드위치 양면이 골든브라운 색으로 변하고, 치즈가 녹아 밖으로 흘러내리는 순간. 쿠바샌드위치가 완성된다.
내가 쿠바에서 먹었던 샌드위치는 약간 말라버린 빵부터 출발한다. 딱딱하진 않지만 촉촉하지도 않은 살짝 마분지 같은 식감의 빵이다. 햄은 가공육 맛이 난다. 그마저도 한 겹 정도 들어있다. 그나마 녹은 치즈와 납작하게 눌린 모양이 이것이 쿠바샌드위치구나 하는 느낌을 낸다. 촉촉함을 담당하는 소스는 전혀 발라져 있지 않기 때문에 곁들일 음료가 필수다.
쿠바의 샐러드는 오이, 토마토, 양배추, 양상추 네 가지 채소의 범위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과일은 구아바, 파파야, 파인애플 세 가지뿐인 것 같다. 크라상에선 식빵 맛이 나고 소고기 스테이크는 질겨서 씹어 삼키기가 어려울 정도다.
기대가 낮으면 실망도 없다고, 그럼에도 불평없이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쿠바가 물자가 항시 부족한 나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잘 살길 바랐던 쿠바 공산혁명의 꿈은 소련의 해체와 함께 이상으로 흩어져 버렸다. 소련의 지원이 끊기면서 배급제 체제였던 쿠바에 어려움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공산혁명 이후부터 지금까지 40년간 쿠바의 모습을 담은 다큐 「쿠바와 카메라맨(Cuba And The Cameraman)」에는 한 가족이 일주일 먹을 양으로 고작 밀가루 1kg를 배급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마저도 배급소 선반이 텅텅 비어 있는 날이 대부분이다. 동네 바(Bar)에는 맥주가 들어 온지 오래다. 살기 위해 소를 훔쳐 먹어버리는 이웃에 항의도 하지 못한다. 다들 사정을 알기에.
그들의 삶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왜 이들의 음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된다. 무언가 부족한 맛인 그들의 음식에는 쿠바인들이 겪어온 결핍이 담겨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생긴 상황에서 어떻게 맛의 여부를 따질 수 있을까. 그들은 그저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했을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온 맛의 깊이가 쿠바인들에겐 그들의 삶만큼 결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쿠바에 맛있는 음식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밀가루와 소금만 주고 왜 마카롱을 만들지 못하냐고 불만을 가지는 것과 다름없다.
다행히 지금의 쿠바는 개방 후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시련에도 불구하고 이정도로 음식 문화를 발전시켜낸 쿠바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어쨌든 맛깔난 음식도 먹긴 했다. 소스에 적신 가지라던가, 구운 가지라던가, 튀긴 가지 같은 요리.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LA 호텔에서 먹었던 요거트가 쿠바에서 3주간 먹은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던게 생각난다. 우리가 아는 맛을 쿠바 사람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쿠바의 맛이 더 깊어지면 좋겠다. 다음 여행에선 조금 더 풍부한 맛을 기대하며.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