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al Stem Nov 22. 2020

여느 젊은 여교수의 죽음

죽음은 인생을 또렷하게 만든다

 토요일 저녁. 나는 전공 수업의 팀 프로젝트 과제를 위해서 SNS에 접속했다. 그런데 대화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수업의 담당 교수가 죽었으니 과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교수님이 죽었다고? 더욱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수업의 교수님은 너무나도 젊은 분이었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팀원들과 의미 없는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예상할 수 있는 죽음도 있지만 대부분의 죽음은 이처럼 갑작스럽다. 



 그 젊은 여교수님은 나에게 특별한 배려를 해주셨던 분이었기에 그 죽음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 교수님 수업을 듣던 학기에 사랑니를 발치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지방에 있었고 어머니의 의견으로 서울에 있는 치과에서 사랑니를 발치했다. 나는 이미 사랑니를 발치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니 발치한 다음날 여유롭게 대학교 인근 자취방으로 내려갔다. 


 그때는 일요일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그 교수님 담당 과목의 시험을 포함해 오전 오후 2개의 시험이 있었다. 시험 준비를 하는 중 뭔가 예전에 경험했던 사랑니 발치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 느낌은 확신이 되었다. 꿈속에서 점차 현실로 나오는 찰나 나는 베개가 침으로 흥건해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 정신이 좀 더 또렷해졌을 때 그것이 침이 아니라 피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일단 어떻게든 정리를 하고 학교에 있는 의료실에 가서 응급 처치를 했다. 그리고 1교시 시험을 치렀다. 다음 시험까지 공백시간이 4시간 정도 있었다. 이후 시험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했다. 일단 먼저 시험을 치르고 치과를 가는 것이 가장 베스트였다.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갔다. 전후 사정을 말씀드리고 먼저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상황을 배려해 준 그 교수님에게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나를 배려해 준 그 교수가 죽었다. 난 그 교수의 배려로 시험을 볼 수 있었고 그 감사한 마음에 좀 더 잘 보이고 싶었다. 팀 프로젝트도 다른 전공보다 더 열심히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잘 보이고자 하는 대상이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너무나도 허망하다. 모든 것이 소용이 없다. 모든 것이 흐트러진다. 그러나 죽음은 흐트러트림과 동시에 무엇인가 또렷하게 만든다.



 교수님이 이미 이 세상에 없는 그 순간에 교수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잘 보이고자 했던, 인정받고자 했던 내 마음은 의미가 없었다. 이미 이 세상에 안계시기 때문에. 그리고 분명히 성공했다고 인정받았을 젊은 여교수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타인의 인정, 기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깊이 경험했다. 이 갑작스러운 죽음의 소식을 통해서 내 삶이 더욱 또렷해졌다. 죽음은 무엇인가 사라지는 것, 떠나는 것이지만 그곳에 또렷함을 남긴다. 특히 나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죽음일수록 나에게 생기는 또렷함은 더욱 분명해진다.


 죽음이 나에게 또렷함을 선물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중학생이라고 하기도 고등학생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시간. 중학교 졸업식과 고등학교 입학식 그 사이 짧은 시간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죽음이 그랬다. 졸업식을 마치고 나는 친한 친구와 대구에 있는 이모 댁을 방문했다. 이모 댁에서 며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친구와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잠든 나를 이모가 급히 깨웠다. 아직 어두운 새벽녘이었다. 이모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갑작스럽게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아직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남은 가족들에게 각자의 또렷함을 주었다. 그 당시 어머니와 누나에게 아버지의 죽음이 어떤 또렷한 메시지를 주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나에게 전해진 또렷한 메시지는 이랬다. “내가 이제 이 집의 가장이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실제로 듣기는 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에게는 이 또렷한 메시가 남았다. 그리고 나름대로 노력해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첫 번째 죽음이 주는 또렷한 메시지는 100% 이해하지 못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너무 어렸다. 그 또렷함은 오히려 내 삶에 무게만 무겁게 했다. 대학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 없이 그냥 들어가야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 무게가 무겁게 느껴져 깊이 있게 고민조차 하지 못했다.


 나름대로 나이가 들어서 경험한 두 번째 죽음이 주는 또렷한 메시지는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삶,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지 말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내가 경험한 첫 번째 죽음의 경험에서는 타인의 기대, 인정을 받기 위해서 내가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두 번째 죽음으로 알게 되었다.


 죽음이 주는 또렷함을 통해 나는 내 삶의 진로를 더욱 깊이 고민하고 탐구하게 되었다. 타인의 기대, 세상의 기준에 인정받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더욱 탐구했다. 그리고 나는 중학생, 고등학생 때 이런 고민을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다. 학생들이 좀 더 타인의 기대,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내가 경험한 여느 젊은 여교수의 죽음이 준 또렷한 메시지가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도록 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가 독재국가에서 수업받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