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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이끌어가는 한 문장

마음속에는 나를 이끌어가는 한 문장이 있다.

by Real Stem

'네가 이제 가장이다.' 이 말은 내가 2003년 2월 들었던 말이다. 이 말을 들었던 당시 나는 중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상태였다. 막 중학교를 졸업한 내가 집안의 가장이 된 것이다.


내가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이유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대기업에 다니셨다. 그리고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는 몇 번의 사업을 하셨고 회사를 운영하고 계셨다. 사업과 회사는 계속 어려워졌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많이 싸우셨다. 초등학교 시절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지만 점차 집은 좁아지고 경제적으로 힘들어졌다.


내 중학교 졸업식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싸우셨다. 사실 일방적으로 아버지가 화를 냈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여하튼 아버지는 내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어머니와 누나만 참석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미안한 마음에 오지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됐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계속 집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졸업여행 겸 피난시킬 목적으로 시골에 계신 이모 댁으로 여행을 보내셨다. 물론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거나 다녀온다는 말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졸업여행 겸 피난을 계획대로 보내지 못하고 새벽같이 서울로 올라왔다. 아니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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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정확히 어떤 사고로 인해서 돌아가셨는지 모른다. 나는 그 당시 함께 있지 않았고 함께 있었던 어머니와 누나에게는 지금까지도 물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식도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을 떠올려보면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처음 이야기 한 '네가 이제 가장이다'라는 말이다. 아버지의 지인 중이었는지 친인척 분이었는지 그리고 언제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 또는 그 말을 정말 듣긴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기억 속에서는 분명히 그 말이 남아 있었고 내 삶을 이끌어가는 한 문장이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대학에 가야 한다"라는 목표를 만들었다. "네가 이제 가장이다"라는 말은 "대학에 가서 성공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했다.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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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제 가장이다'라는 말은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보태거나 성적을 많이 올려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지는 못했다. 나름대로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그 노력은 부족했고 학습의 전략은 더욱더 부족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저 그런 대학교에 수시 원서를 접수했고 합격했다. 나름대로 '네가 이제 가장이다'라는 말을 책임지려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어떻게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 말을 이제 교육자로 살아온 내가 뒤돌아보면 이렇다. 그건 내 마음의 다짐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실체가 없는 이야기였다. 내 삶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책임을 내가 대신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이라는 것이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나 그건 고등학생인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그 말이 남아있었고 나를 알아갈 기회를 빼앗고 내 삶을 무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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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인이 되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알았다. 어머니는 홀로 두 자녀를 키워야 한다는 한 문장이 삶을 이끌었다. 첫째인 누나는 첫째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문장이 삶을 이끌었다. 내 삶을 이끈 한 문장은 나에게 책임감이라는 짐이 되어서 삶을 힘들게 했다.


혹시 내 삶을 이끌어 가는 한 문장이 날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이 내 기준에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에서 주어진 기준은 아닌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내 기준에서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타인의 기준, 세상이 이야기하는 기준이라면 그것을 달성하기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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