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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 Feb 23. 2022

발뒤꿈치에 유통기한 지난 로션을 바르는 마음으로

얼굴 외의 다른 곳에 뭔가를 챙겨 바르는 일은 영 서툴다. 기온이 낮아지면 하얗게 각질이 지는데도, 갈라져서 쓰라리기 직전이 되어야 그제사 하루 이틀 로션을 바르다 또 잊는다. 관심을 두지 않으니 발이 눈에 띄는 일도 드물다. 그러다 최근 발목을 다쳐서 몇 달 동안 물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치료를 받으려면 양말을 벗어야 하는데, 물리치료사 선생님 앞에서 나의 허연 각질을 마주하고 말았다. '로션 좀 발라야겠네'. 그 생각을 하고 따끈한 전기매트 위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홀랑 잊어버리기를 여러 번. 반복에 반복을 하다 겨우 발에도 관심이 조금 생겼다.


얼굴에는 각종 페이셜 크림을 바르고, 손에는 핸드크림을 바른다. 그런데 어째 풋크림을 내 돈 주고 사는 건 왜 이리 내키지가 않을까. 내키지 않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인가, 마음이 없어서인가. 하긴, 핸드크림도 적극적으로 바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깝다'는 생각 때문이다. 도대체 아껴서 어디다 쓰려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작정 아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렇게 아끼다 똥이 된, 아니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로션은 발뒤꿈치의 차지가 되었다. 미리 따로 챙겨두고 샤워 후에 발과 다리에 바른다. 가벼운 마사지도 겸하며 온종일 나를 지탱한 발을 돌본다.


 몸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한 발바닥을 손으로 정성껏 어루만지며,  마음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한 것들을 떠올린다. 다른 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생각,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을  밑바닥에 감추어두었다. 그리고는 미소로 덮어버렸다. 관심이라는 볕도 들지 않는 곳에서, 하얗게 각질이 일어나진 않았나. 유통기한 지난 로션을 발뒤꿈치에 바르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하고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다정함을 마음의 꿈치에 바른다. 여전히 촉촉한 로션처럼, 부스러기로 남은 다정함에도 여전히 온기는 남아있었다.


오직 발꿈치만을 위한, 유통기한이 넉넉한 풋크림을 사야겠다며 활기차게 글을 마무리하면 좋겠으나, 나는 여전히 그럴 여유가 없다. 기꺼이 자연스럽게 풋크림을 살 수 있는 때가 되면, 오직 나를 위한, 나의 못난 마음들을 위한 다정함도 마련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오늘 밤에 바를, 유통기한 지난 로션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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