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쓸채은 Jun 04. 2024

학원 보내면 다 잘할 거라는 착각

친정 엄마가 칡즙을 보내주셨다. 몸에 좋은 것도 알겠고, 매일 챙겨 먹기만 하면 되는 것도 아는데 막상 챙겨 먹기엔 귀찮고 부담스럽다. 엄마표 공부도 딱 그랬다. 아이에게 좋은 것도 알겠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도 알겠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밥 먹고 하는 일이 가르치는 일인 나도 참 부담스러웠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자꾸만 핑계를 댔다. ‘자기 애는 부모가 못 가르친다던데, 초등 교육은 초등 전문 선생님이 더 잘할 텐데.’ 하며 외면하고 싶었다.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우리 집 아이는 학원도, 방문 학습도 거부했다. 낯을 많이 가리고 시작이 어려운 아이라 처음으로 하는 공부를 엄마랑, 아빠랑만 하고 싶어 했다. 사교육을 거부하고 엄마표를 원하는 아이의 한글과 연산을 남편과 집안일 나누듯 억지로 나눴다. 초등학교 입학만 기다렸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반드시 사교육 시장에 아이를 전가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그해. 나는 00이 어머니를 만났고 결국 우리 집 아이에게 엄마표 초등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00이는 말수가 적고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다. 상상력이 뛰어났고 그 상상을 늘 그림으로 담아냈다. 공부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러던 00이가 2학년이 되자 공부에 열을 올렸다. 등교 시간보다 훨씬 일찍 와 영어 듣기 연습을 하고, 수업 시간 경청하며 꼼꼼히 필기를 하고, 점심시간에는 식사도 거르고 공부를 했다. 하지만 성적은 그 노력만큼 달아오르지 못했다. 사실 난 00이는 당연히 미술 관련 학과로 진학할 줄 알았다, 미대 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느라 공부도 갑자기 열심히 하나보다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00이 어머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학교를 찾았다.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늘 부모님들은 아이의 과거를 후회한다. 무언가를 시도하기에도, 포기하기에도 시간이 문제인 고등학교. 부모님들은 늘 아이가 더 어렸던, 더 여유로웠던 그 시간들을 아쉬워한다. 00이 어머니도 마찬가지. 그 수많은 후회 중 하나가 내 마음에 콕 박혔다.



“첫째라 기대가 컸어요. 초등 때부터 국영수 학원 많이 보냈어요. 워낙 말수가 적고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아이다 보니까 학원 선생님도 나도 잘하고 있는 줄 알았죠. 그런데 학원에 앉아서 잘 듣는 척만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걸 고등학교 입학하고 알았어요. 이제 와서 그만두자니 불안해서 그만둘 수도 없고....”



00이에 대해 내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었다. 미술 학원을 다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미술 학원이 아닌 국영수 학원을 그냥 다니고만 있었다. 2학년에 올라와 뒤늦게 제대로 공부를 해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학습 결손이 커 애쓰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00이의 공부는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어머니 말씀대로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자그마치 9년을 학원에만 맡겨 놓은 게 원인이었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 저마다의 공부 주머니를 갖고 태어난다. 그 공부 주머니에 아이들은 평생 동안 자신만의 지식과 배움을 쌓아가며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쓴다. 문제는 아이들이 쥐고 태어나는 그 공부 주머니의 질기기와 유연하기가 아이들마다 다르다는 데 있다. 아이들 각자가 지닌 공부 주머니의 특징을 모르고 지식만 무작정 쑤셔 넣다 보면 구멍이 나고 쑤셔 넣었던 지식이 구멍 난 보자기에서 깨처럼 줄줄 새어 나가고 결국 주머니는 찢어진다. 다행인 것은 지식을 쑤셔 넣기 전에 공부 주머니를 잘 연마하면 질기기와 유연하기가 높아져 지식과 배움을 무한대로 늘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엄마들은 더욱 개별 지도가 가능한 학원을 찾는데 열을 올린다. 하지만 학원에서 이걸 대신해 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제일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엄마 혹은 아빠뿐이다. 아이의 공부 주머니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은 그걸 물려준 엄마와 아빠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학원을 믿었다. 학원에서 내 아이의 실력에 잘 맞춰 잘 관리해 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학교든 학원이든 보통의 수업은 늘 잘 따라오는 중간 아이들을 기준으로 두고 그 기준을 넘어서는 상위권 아이, 그 기준을 못 따라오는 하위권 아이들에게 더 많은 공을 들이게 된다. 특히 말수가 적고 바른 수업 태도를 가진 00이 같은 아이들은 으레 잘 따라오겠거니, 알아서 잘 하겠거니 하고 믿게 된다.



상황이 이러니 수업 태도가 바르고 조용한 아이들의 상황을 알기가 어렵다. 그 사이에 아이의 공부 주머니에 구멍이 생긴다. 학습 결손이 생기는 거다. 학습 결손이 생기고 있는 데도 그걸 모르고 앞으로만 계속 나아간다. 이건 마치 깨를 가득 담은 보자기를 들고 걸어가는데 보자기 어딘가에 구멍이 난 줄도 모르고 계속 깨를 퍼담으며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거다. 그러다 막상 깨 보자기를 열어보니 깨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



전문가가 좀 더 낫지 않겠냐고? 초등 공부 우리가 해봐서 안다. 그렇게 높은 수준이 아니다. 또한 초등 시절은 공부 주머니에 지식을 한가득 담는 시기가 아니다. 공부 주머니를 연마해야 하는 시기. 아이의 학습 습관, 성취감, 자존감을 형성하고 고취하며 아이의 공부 주머니가 질겨지도록 그러면서도 유연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최우선이다.



초등공부의 핵심은 얼마나 정성 들여 아이를 봐주느냐가 관건이다. 내 아이 전문가는 엄마 자신이다. 엄마가 할 수 있는 학습 수준으로 내 아이에게 맞게 차곡차곡 쌓아주기만 하면 된다. 아이의 공부 주머니 어느 부분이 질긴지, 어느 부분이 잘 늘어나는지, 어느 부분이 약한지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더 질기게 만들지, 더 유연하게 만들지를 고민하면 된다. 뒤늦게 고등학교에 가서 공부 주머니를, 깨 보자기를 열어보고 놀라지 말고 일찌감치 들여다보자. 엄마만큼 아이의 공부 주머니를 정성 들여 연마하고 기워줄 사람은 없다.

작가의 이전글 초중등에서 잘나가던 아이들이 고등에서 무너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