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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쓸채은 Jun 08. 2024

사교육이 명품백이 된 시대


엄마표를 굳게 결심하고 실행하면서도 순간순간 흔들리는 시기가 온다. 그건 바로 다른 엄마들을 만날 때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만나고 나면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회의감이 엄습해 온다.




친한 지인을 만나고 온 그날도 그랬다. 지인은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아이가 기어다닐 때부터 책 육아, 방문 미술, 영재 교육 등에 열성적이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야 할 무렵 지인은 당연히 유명 브랜드의 영어 유치원을 보냈고 그 외의 유명하다는 대치동 커리큘럼에 따라 아이의 하루를 채웠다.




그 당시 우리 집 아이는 학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글도 7세 올라갈 무렵에나 시작하자는 생각에 잠자리 독서와 엄마표 선 긋기 연습, 영어 동요 듣기 정도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를 지인은 걱정했다.




“채은, 아이들은 습자지야. 시키는 대로 쫙쫙 빨아들인다고. 조금 더 분발해.”




지인이 알고 있는 고급 정보들을 진심을 다해 전수해 줬다. 국어는 00 전집 시리즈를 1학년 때까지 다 읽어야 하고, 수학은 00 학원을 가야 하고, 영어는 00 어학원에서 파닉스 과정부터 밟아야 하고, 저학년 때는 현악기를 하나 해야 하고, 남자아이니까 00 축구 교실을 보내라고 했다. 도서 출판사, 학원 브랜드까지 콕콕 집어 그야말로 사교육 문외한에게 족집게 과외를 해줬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준 지인의 마음은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지인과 헤어진 후 집에 돌아온 나는 왠지 모를 씁쓸함에 기운이 쪽 빠졌다. 다른 집 아이는 이렇게나 열심히 하는데 우리 집 아이는 여유를 부리는 데서 비롯되는 불안감이 아니었다. 나를 기운 빠지게 한 그 원인은 바로 쭈구리가 된 느낌 때문이었다.




지인 앞에서 내가 하고 있는 엄마표에 대해서, 교육과 관련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대해서 한 마디도 못했다. 유명 사교육에 열성적인 엄마 앞에서 나는 뭔가 올드하고, 궁상맞고, 전문성이 없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엄마처럼 느껴졌다. 고급 레스토랑에 지인은 명품백을 들고 당당하게 서 있는데 나는 에코백 하나 메고 서성거리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소용돌이치는 여러 감정 속을 헤매다 사교육이 결국 돈이라는 생각에 정착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다잡았다. 사교육 시장이 우리나라 경제의 한 분야로 자리 매김을 헀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2023년 기준 약 27조이다. 2022년 코로나19 등으로 규모가 급성장한 우리나라 의약품 시장이 약 30조의 시장인 것과 비교해 보면 27조 시장은 작은 규모의 시장이 아니다. 학령 인구가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시장 규모는 3년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매해 발표될 때마다 역대 최고라는 기사가 뜬다.




결국 사교육을 움직이는 것이 돈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보니 학원이 기업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고, 마케팅 전략도 화려해졌다. 학원도 브랜드를 따지는 시대가 되었고 학원에도 서열이 생겼다. 비싸고 유명한 그 영어 유치원에, 대치동에서 내려왔다는 그 어학원에 엄마들은 내 아이를 보내고 싶다. 대치동에서 왔다는 그 유명 어학원에 다니면 폼 나지만 동네 보습 학원에 다닌다고 하면 은근히 무시당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교육을 하는 것이, 유명 브랜드 학원을 보내는 것이 엄마의 은근한 과시가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유명 브랜드 학원을 보내는 것은 멋지고 엄마표는 궁상맞고, 돈을 쓰는 것은 가치 있고 돈 대신 정성을 들이는 것은 가치가 낮다고 인식되는 시대. 과도한 사교육이 어느새 명품백과 같은 사치품이 되어 버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명품백이 누구나 하나쯤은 들어야 하는 필수재가 된 것처럼 사교육도 누구나 해야 하는 필수재가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과 너무도 들어맞지 않나. 사교육은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사치품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필수품이 되었고 학원을 보내지 않는 엄마는 아이를 방임하는, 자녀 교육에 최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엄마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아이의 공부를, 아이의 성장을, 아이이 독립을 위해 조금 더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점점 과해지고 있다. 엄마들은 아이가 학교에 갈 무렵이 되면 당연히 학원은 가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었고 아이들도 학원은 당연히 다녀야 하는 걸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연령은 점점 더 낮아지게 되었고 결국 학원에 의존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도 어떤 아이가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면 다른 아이들이 놀란 토끼눈을 하고 물어어본다.




“어쩌려고 그래? 괜찮겠어?”




사교육을 비롯한 아이의 교육이 하나의 소비재가 되어버린 시대.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아이 교육은 소비의 영역이 아니다. 교육은 투자의 영역이다. 아이에게 시간, 노력, 돈 등의 비용을 들여 아이의 성장과 독립을 위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비싼 사교육을 무조건 많이 소비한다고 해서 좋은 성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교육은 명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내 아이를 명품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엄마 스스로 진짜 명품을 만들어 보자. 내 아이를 명품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엄마다. 엄마가 장인이 되어 한 땀 한 땀 손수 만들어낸 한정판으로 아이를 키우자. 화려하지 않고, 비싸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다고 가치가 낮은 것이 아니다. 진짜 명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을 발하듯 엄마표로 키운 아이도 성장할수록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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