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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Jun 23. 2015

삶이 풍부해지는 글쓰기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 학창시절 가장 일기를 열심히 썼던 때는 아마도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가 아니었나 싶다. 대학교 시절에는 푸념이나 뭔가를 남기고 싶을 때 부정기적으로 일기를 썼다. 그 이후도 조금씩 글을 남겼지만 그 빈도수는 점점 줄어만 갔고, 결혼 이후에는 거의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 마음 속에는 글에 대한 향수 혹은 그리움이 남아 있었나 보다. 무의식적으로 글이 땡겼다. 글은 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도구 혹은 무대장치 아니었나란 생각이 든다. 말 보다 백배는 더 좋은.

    

2007년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3기 연구원에 응시했다가 탈락의 고배를 마신 후, 글쓰기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글쓰기 능력, 즉 표현 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떨어졌다. 그러니 낙방은 당연지사였다. 트레이닝이 필요했다. 어떻게 해야할까? 그 해 9월 꿈벗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리고 완벽하진 않지만 가슴뛰게 만드는 나의 길을 찾았다. 무려 마흔의 나이에. 바로 글쓰기였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생활습관부터 바꿔야만 했다. 새벽 4시 반 기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무작정 하루 한 편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형식도, 주제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생각나는대로, 손가는대로 백지 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쓴 글의 제목들은 이러했다.

    

2007년 10월 22일 가을여행

2007년 10월 25일 가치관에 대하여

2007년 10월 27일 2002년 아내의 편지를 읽고

2007년 10월 29일 절실함에 관하여

2007년 11월 1일 친구에 대한 소고

2007년 11월 5일 미래 바라보기 현재 돌아보기

2007년 11월 5일 낙엽을 밟으며

2007년 11월 6일 무제

2007년 11월 9일 우연한 휴식

2007년 11월 10일 나의 어릴적 시기를 찾아서

2007년 11월 13일 꿈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

2007년 11월 14일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2007년 11월 19일 방황

2007년 11월 19일 무제1(회사에서)

2007년 11월 26일 일상의 시작

.........

    

정리를 하다보니 2007년 11월 14일의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이란 제목이 눈에 띈다. 한번 들여다보자.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하루가 피곤하다. 지난 주말에 야구(2001년~2007년까지 야구동호회에서 사회인 야구를 했었다)를 했기 때문이겠지만,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구나란 생각이 든다. 체력은 내가 살아가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다. 이 부분이 흔들리게 되면 정자의 주춧돌이 흔들리듯 안정감이 없어질뿐더러 제대로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없게된다. 기초란 하고 못하느냐를 떠나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얼마나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인내의 문제와 관련된다 할 수 있다. 100미터 달리기 선수와 마라톤 선수는 기초체력부터가 틀리다. 즉 근육의 위치와 발달정도가 틀리다는 것이다. 순발력이 필요한 단거리 선수는 순간적인 폭발력을 요구하는 부분에 발달된 근육이 필요한 것이고, 장거리를 뛰기 위한 마라톤 선수의 경우는 끊임없이 반복적인 움직임을 요구하는 부위의 근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운동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체력의 저하가 다시 운동부족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소위 생체리듬이라 불리우는 '바이오리듬'이 있다. 지금은 그 활용도가 예전보다는 다소 떨어졌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12-3년전에는 내가 쓰던 오디오제품에도 바이오리듬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탑재되어 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었다. 물론 인터넷상에도 매일매일의 바이오리듬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었고. 그것에 의하면 한달단위로 신체, 감성, 지성 3가지가 Maximum과 Minimum을 반복하도록 되어 있다. 즉, 어떤 날의 경우 신체지수는 peak를 향해 가고 있지만 감성, 지성지수가 Minimum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날은 실내나 실외에서 운동을 하는 등의 신체활동은 좋으나, 머리를 많이 쓰거나 감정적 행동이 필요한 일이나 활동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수치 또는 도표로써 알려주는 것이다.

    

 이야기가 다소 다른 부분으로 돌았지만 지금 나의 몸/정신 상태는 바이오리듬으로 따지자면 신체는 방향을 못잡은 최하부근 단계, 지성은 중간정도, 감성은 최하와 중간사이 정도로 3가지 지수 모두 과히 좋은 상태는 아니다. 그 이유가 체력의 저하이다. 지난 주 감기몸살의 여파도 있고 주말 야구의 피곤함도 그대로 안고 있고, 계속되는 새벽 글쓰기의 습관정착이 안된 것도 계속해서 몸이 피곤한 이유라 하겠다. 체력의 저하/계속적인 몸의 피곤함은 일상 생활을 어렵게 하는 주범이다. 나는 주범을 때려잡아야 한다. 이것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일상생활과 새벽글쓰기 2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없다. 최선을 다해 잡아야 한다. 그럼 다음 주제는 '2마리 토끼 잡기'로 정해 놓고 오늘은 글쓰는 이유로 가보자.


 일단 『뼛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의 습작을 한번 보자.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평생 동안 입을 닫고 있었지만 나의 에고는 내가 영원히 살아 있고, 사람들 또한 영원히 살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 존재가 한순간의 찰라이며 유한하다는 사실, 그리고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는 진실은 나에게 더없이 큰 상처이다. 내가 느끼는 모든 기쁨의 가장자리에도 이 상처가 기어간 번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생략) ...'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는 외롭고, 이 세상을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내 속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은 나 자신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나는 영하 20도의 날씨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히터를 켜도 얇은 벽을 통해 들려오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이 절규하는 소리를 막지 못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미쳤고, 정신분열증 환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미친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 사실을 받아 들이며, 어리석은 일에 빠지기보다는 이 사실과 관련된 무언가를 하려 한다.'

    

'나는 사람들이 잊어버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 주기 위해서, 또 한 여성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꿋꿋하게 살아가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당신의 입술과 혀에서 나온 말에 형태를 잡아 주기 위해 글을 쓴다. 또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것을 당신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나는 살아 있기 위해 노력하며,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을 알기 위해, 그리고 그 공간을 앞으로 내보내 색과 형태를 주는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는 사랑조차도 충분하지 못해서 부족한 나의 작품만이 내가 가진 전부가 되어 버리는 그런 완전한 몰이해 속에서도 글을 쓴다. 나는 이해를 받지 못할 수도 있고 게다가 책상과 노트에서 떨어져 나 자신의 인생으로 얼굴을 돌려야만 할 때도 많다.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면 내 인생을 진정으로 바라보는 방법이 오직 노트로만 가능한 그런 때가 다시 온다. 그리고 상처를 받으면서 또한 그 상처를 이겨 내는 동안에도 글을 쓴다. 그 상처가 나를 강하게 만들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지를 알기 위해 글을 쓴다. 무엇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지 나는 안다. 그때 돌아가는 집이 내가 영원히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진짜 집이 될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 그럼 지금부터 10분간 멈추지 않고 써 나갈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의 삶을 좀 더 발전시켜 미래에 아름다운 모습의 내 자신을 만들기 위함이다. 또한 내 글을 통해 내 자신은 물론 많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나눔은 내가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만 하는 일이자 사명이며 업이다. 나눔의 한가지 방법으로 나는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이다. 글 쓰기는 나의 영혼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나의 내면을 한단계씩 전진해 들어가게 될 것이며 결국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 울고 소리쳐 몸부림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은 필연적인 것으로 그것이 결국 내 영혼과 만나는 일이 될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보다 깊은 내면과의 대화를 통해 내 진실된 모습을, 목소리를 밖으로 표출해 내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며, 다른 모습으로 다른 세상을 살게 될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변화하는 것이다. 변화를 통해 아름다움을 가꿔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내 생활은 40년간 큰 변화없이 만들어진 수동적 삶이였다. 나는 변화가 필요했고 그 변화를 통해 나의 영혼, 자아, 에고와 만나고 싶었다. 아무리 내면에 대고 발버둥을 쳐도 나는 겉에서만 맴돌뿐 내 자신을 만날 수 없었다. 이제 그 방법을 찾은 것이 글쓰기이며 아직은 서툴지만 끊임없이 써나갈 것이며 내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가게 될 것이다. 글쓰기는 나에 대한 도전이며 세상에 대한 나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지금의 도전은 미미하고 보잘 것 없겠지만 앞으로 몇 달 후 몇 년 후에는 필히 창대해지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쓰기는 나를 돌아보는 작업이며 나를 만들어 가는 조각가의 행동 하나하나와 같다. 조각가가 흘리는 땀방울 하나하나가 글쓰기의 단어 하나하나가 될 것이며 그것들이 모아져 찬란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질 것이다. 모아진 땀방울 하나하나는 마지막 화룡정점을 찍듯 작품의 빛을 내주는 광택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10분 동안 무작정 써 보았다. 쓰면서도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일단 막힐 때가 그렇다. 막히면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막막하면서 어떤 판단이나 결정을 전혀 할 수 없다. 그럴 때는 손이 가는 데로 내버려 둔다. 손이 가기 시작하면 그것에 따라 뇌가 따라가고 다음으로 마음이 옮겨간다. 글쓰기가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쓰다 보면 어떠한 상황에서든 쓰다보면 나만의 글쓰기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또한 내용전개상 이렇게 진행되는 건 아닌데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그냥 쓴다. 이게 나의 모습이며, 아직은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 자위하며 그냥 가던 길을 간다. 지금의 시간은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나의 모습, 내 자신을 벗겨가는 과정이며 나의 내면, 영혼, 자아, 에고를 만나러 가는 시간일 뿐이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새벽, 그 조용함과 더불어 나를 찾아가는 작은 여행, 매일 2시간 안쪽의 짧은 여행길을 떠나는 것이다. 비록 오늘은 여행을 마감하지만 나는 내일도 모레도 계속하여 떠날 것이다. 나의 내면을 향하여. 어쩌면 이 여행은 벌써 9월 15일부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여행은 내가 눈을 감는 그 날 까지 계속될 것이란 예감이다. 행복한 예감이다.(완료 오전 6:10)



예전 글을 읽으며 2가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첫째는 『뼛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의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나는 외롭고, 이 세상을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나는 살아 있기 위해 노력하며,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을 알기 위해, 그리고 그 공간을 앞으로 내보내 색과 형태를 주는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라고 말한다. 또한 “나는 살아 있기 위해 노력하며,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을 알기 위해, 그리고 그 공간을 앞으로 내보내 색과 형태를 주는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라고도 한다. 나탈리는 글을 씀으로써 세상을 혼자서 살아가며 감당해야만 하는 외로움, 고독, 쓸쓸함, 고통을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글쓰기 작업이 곧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의 한 방법이며, 세상을 제대로 알기 위한 그리고 세상을 자신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말이 조금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다. 과연 글쓰기가 외로움을 이겨내도록 도와주고, 세상을 올바르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격하게 동의한다. 왜냐고? 그 대답을 하기 전에 이번에는 내가 2007년에 쓴 글을 쓰는 이유를 들여다보자.



새벽 글쓰기가 내게 준 변화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인 2007년 10월의 나는 새벽 글쓰기를 통해 2가지를 추구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하나는 글쓰기를 통한 변화로써,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는 여행을 통해 안쪽 깊숙이 숨어있는 진정한 나를 만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써 가식과 허울로 둘러쌓인 페르소나를 벗어 버리고 내면의 목소리를 낼 것이며, 그럴 때 현재와는 다른 아름다운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 주장한다. 두 번째는 글쓰기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글쓰기를 함으로써 작품, 즉 책을 쓸 것이고, 그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고 토로한다.

    

스스로 평가를 해 보자. 8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의 글쓰기는 어떤 성과를 만들어 내었으며, 내가 처음 생각한 부분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의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결과는 만족스럽진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듯 싶다. 일단 2권의 책이 제작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변화쪽은 어떨까? 지금의 나는 글쓰기를 통해 확실히 변화된 것일까? 더 나아가 내 삶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쎄다.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겉으로는 별로 바뀐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8년전 다니고 있던 직장에 아직도(?) 몸 담고 있고, 1인기업을 꿈꾸고 있지만 여전히 경제적 불안에 발목을 잡힌 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변화는 있었다. 과거의 삶과는 분명한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주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변화다. 즉 절대로 다시 원래의 모습과 사고방식, 가치관으로 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의 저자 파커 J. 파머는 인생에서 앞 문이 열림으로써 변화의 길을 갈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앞 문이 아닌 뒷 문이 닫힘으로써 앞으로 계속 나아가도록 삶을 이끌 수도 있다고 말한다. 현재의 내가 그렇다. 뚜렷한 변화의 모습, 더 나아가 확연한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길을 꾸준히 가고 있다. 그것은 이미 내 뒷문이 닫혔기 때문이며, 더 이상 돌아갈 수도, 또한 돌아갈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통해 삶이 풍부해지다


글쓰기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기본적인 자기계발, 자기경영을 위한 관리적 도구이자 자신과의 약속이며, 의지의 발현이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잘 떠오르지 않는 미래를 조금씩 구체적으로 계획해 볼 수 있으며, 현재의 삶에 대해 돌아볼 시간을 부여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내면 안에 감춰진 본질을 들여다 봄과 동시에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진짜 욕망을 알아볼 수도 있다.

    

어디 그 뿐이랴. 글은 기록되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꺼내 읽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이는 글을 쓴 시점의 생각은 물론 당시의 느낌, 그 감정까지 고스란히 다시 살려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것은 정말로 대단한 강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첫사랑을 시작했다고 생각해보자. 좋아하는 감정을 처음으로 고백한 날, 그리고 수줍은 오케이 사인을 받고 그녀와 꿈꾸는 시간과도 같았던, 솜사탕처럼 달콤한 첫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그 감정을 글로 남겨 놓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 아주 우연히 그 기록을 다시 보게 되었다. 어떤 느낌이 들까? ‘아... 그땐 정말 설레이고 즐겁고 달콤했었는데...’란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까?

    

글은 영상만 없는, 하지만 일반적 영상보다 훨씬 더 강렬한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파워풀한 삶의 도구라 할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해 삶은 더 풍부해질 수 있다. 나탈리 골드버그가 말한 바를 잘 되새겨 보면 그 의미를 알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을 알기 위해, 그리고 그 안의 색과 형태를 “발견”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곧, 그녀가 모르고 지나치게 되는 삶의 많은 순간순간들을, 글쓰기를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글을 씀으로써 인생을 좀 더 표면적, 형식적이 아닌, 풍부하며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꾸준한 글쓰기, 솔직히 쉽진 않다. 하지만 힘든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매일, 그렇지 못하다면 최소 2,3일에 한번 그것도 어렵다면,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글쓰기를 시도하라. 삶이 풍성해지고, 분명 삶에 자그만 변화를 불러 일으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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