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1,000억을 번 남자의 3가지 비결
예전 2박 3일 일정으로 회사에서 진행하는 부서장 교육, 정확히는 ‘부서장 리더십역량 향상과정’에 다녀온 적이 있다. 뭐, 짧은 교육기간을 통해 나의 리더십역량이 확연히 늘었다!(솔직히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교육을 받다보면 무언가 도움이 되는 몇가지는 확실하게 건질(?) 수 있기 때문에 나름 좋은 시간이 된다.
교육에서 건진 몇 가지 중에 연세대 철학과 김형철 교수님이 해준 이야기 하나는 그동안 알고 있었고 또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대함과 효과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흘려듣고 지나치기만 했던 이야기였다. 귀와 눈과 가슴이 번쩍 뜨였다. 아, 맞다! 그러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부자가 된다는 것, 아니 꼭 부자가 아니더라도 인생을 더 잘 살 수 있겠다란 생각이 절로 드는 이야기였다.
강의 중 김형철 교수님은 말하길, 우연히 40대에 천억(!!)을 번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까이 접근(?)하여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냐고. 나 또한 몹시 궁금했다. 천억이라. 10억 혹은 100억을 번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언론과 책으로 본 적이 있었지만 천억이라니!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는 더도말고 딱 3가지를 비결로 꼽았다고 한다. 순간 집중에 집중이 더해졌다.
에게... 단지 약속을 지킨다는 것만으로 천억을 벌었다고? 물론 도움은 되겠지만 이것만으로 비결이라 할 순 없겠지. 일단 첫 번째는 패스!
헐... 신용이라고? 상식선에서만 이야기를 하네. 약속 잘 지키고, 신용을 얻으면 천억을 벌 수 있다? 그건 아니지. 이건 부차적인 이야기일 뿐이야, 분명 세 번째는 그 사람만의 특별한 비결이 있을거야!
마지막으로... 침이 꼴깍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과연 무슨 대단한 비결이 나올까...
응? 무슨 얘기지? 파트너의 성공? 나의 성공이 아니고? 가만가만, 잘 생각해보자. 파트너를 성공하게 만들 수 있을 때 나의 성공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이야기? 한창 생각에 빠져 있는데 교수님이 말을 이었다. '탐욕(貪慾)인 것'과 '탐욕 아닌 것'을 정의 내리고 구별할 수 있느냐고? 응? 탐욕? 탐욕이란 것은 욕심이 과해 남의 것까지 자신의 것으로 취하려는 나쁜 마음 아닌가? 하지만 그가 내린 ‘탐욕인 것’의 정의는 다음과 같았다.
탐욕인 것 : 내가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도달했을 때 나만 좋은 것
헉. 어렵다. 내가 정한 목표에 도달했다면 당연 나만 좋은 것 아닌가? 그럼에도 이것이 탐욕이라고? 다시 고민에 빠질 찰나, 교수님이 이어 ‘탐욕 아닌 것’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
탐욕 아닌 것 : 내가 스스로 설정한 목표 안에 다른 사람의 행복이 포함되어 있는 것
아... 그제서야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40대 천억번 사람이 왜 파트너의 성공만을 바라보라고 했는지.
교수님이 말씀하신 탐욕은 엄밀한 의미의 탐욕은 아니다. 그저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룬 개인적 차원의 성공에 대한 기쁨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욕이라 정의한 것은 그 안에 ‘관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즉 탐욕이란 오로지 목적만을 보고 뛰는 것이며, 그로 인한 성공에는 타인을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깊은 함정이 있다는 것이다.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개인적 관점으로만 성공을 추구할 때 필연적으로 경쟁이란 놈이 따라오게 마련이며, 이는 더 나아가 생각지 못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경쟁이란 승리와 패배라는 이분법적 논리의 룰이 지배하는 체계를 말한다. 한쪽이 승리하게 되면 반드시 다른 한쪽은 패배하게 된다. 즉 위에서 말한 탐욕은 경쟁을 전제로 한 승리를 의미하며,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나만 잘되면 돼!’와 다름없는 이야기가 된다. 사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서양에서 유래된 ‘존재론’, 또는‘개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철저한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 생활을 하며 수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서양문화가 ‘존재론’적인 사상에 입각하여 철저히 개인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반면, 동양의 문화는 관계가 우선이며, 관계 안에서 정(情)을 나누며, 성공을 공유하고 더 나아가 함께 성장하는 것을 추구한다. 즉 관계가 곧 성장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올해 초 유명을 달리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 故신영복 교수는 <강의>에서 이러한 ‘사회적 관계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存在論)‘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존재론적 구성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實體性)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 원리를 갖습니다. 그것은 자기 증식을 운동원리로 하는 자본 운동의 표현입니다.
근대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자본의 운동원리가 관철되는 체계입니다. 근대 사회의 사회론이란 이러한 존재론적 세계인식을 전제한 다음 개별 존재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에 존재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배타적 독립성이나 개별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관계성을 존재의 본질로 규정하는 것이 관계론적 구성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자본주의란 철저히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처럼 자본은 필요악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의 자본은 곧 선(善)이나 다름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아무리 외쳐도 자본을 추구하는 사람의 생각이 존재론적 사고에 물들어 있다면, 그 사람은 탐욕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신영복 교수님의 말씀처럼 사회적 관계론에 기반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성공도 중요하겠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과 관계된 사람의 행복까지도 염두에 두게 두며, 더 나아가 함께 성장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된다.
40대 천억을 번 사람의 비결은 결국 ‘관계론’을 기반으로, 그 위에 약속과 신용이라는 실천까지 얹어놓은 확고부동한 원리이자 원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구나 천억을 벌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돈을 까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선(善)의 실천은 돌고 돌더라도 마침내는 자신에게로 혹은 자신과 관련있는 사람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삶이 오랜 역사를 통해 말해주고 있는 지혜이다.
내 인생이 보다 풍요로워지길 바란다면 나와 관계된 사람들, 즉 가족에서부터 시작하여 친척, 친구, 직장동료, 선후배, 거래처 사람들을 대할 때, 이들을 행복하게 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고 베풀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행복해 할 것이며, 그로 인해 나 또한 즐겁고 행복해 질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쌓일수록 인생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며, 결국 우리는 인생의 부자 --꼭 돈이 아니더라도 선한 관계를 부자처럼 소유한 —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40대 천억 번 사람의 3번째 비결을 문구만 살짝 바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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