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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Jul 07. 2015

직장인의 안정 VS 유한성

#5



앞의 칼럼에서 우리는 ‘잘 산다’는 개념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잘 살기 위해서는 첫째, 무엇보다 건실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켜줄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기준’이 확보가 되어야 하며, 두 번째로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대로 ‘건강하고, 빚이 없으며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즉 마음의 평정을 잘 유지할 수 있다면 ‘잘 산다’고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추가적인 경제적 부는 크게 요구되지 않습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부가 축적되면 될수록 더 잘 사는 것, 더 나아가 행복한 삶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더 많은 재산이 반드시 행복의 척도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폴 새무얼슨과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증명해왔으며, 실제로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더불어 애덤 스미스는 부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허영일 뿐이라 단정짓고 있고요.



직장인의 안정에 대한 딜레마


자, 이제부터는 인간으로서 ‘잘 산다’는 개념에서 범위를 좁혀 직장인으로써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현 직장인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보죠. 앞에서 직장인이란 자가 생산력(Self-Productive forces)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 자본가에게 고용됨으로써 의식주와 같은 최소한의 경제적 기준을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말은 곧 직장인의 삶을 선택하게 되면 최소한의 경제적 기준, 즉 경제적 문제로 인해 고통받을 가능성이 확연히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꾼다면 ‘잘 산다’고 확언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못 살지 않는다’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즉 직장인의 길을 걷게 되는 순간, ‘못 산다’고 하는 가난과 빈곤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2가지를 의미하는데, 첫째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삶이 가능해진다는 점입니다. 직장인은 거의 대부분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는데, 월급이란 월마다 주어지는 돈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고용한 회사에서 재정적 혹은 회사가 흔들릴 정도의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월급은 매월 정해진 날짜에 직장인의 계좌로 입금되죠. 월급은 최소한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위 밥줄이라 할 수 있으며, 밥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는 경제적 두려움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 안정은 직장인의 가장 큰 덕목이자 혜택이라 할 수 있죠.


다만 여기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직장인의 유일한 수입인 월급이 경제적 안정은 줄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욕망을 채우는데는 턱없이 모자른다는 것이죠. 즉 ‘못 산다’는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이상의 영역에서도 한 단계 위로 올라서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잘 산다’는 영역에서의 직장인은, 비록 상대적 비교의 측면이라고는 하지만 ‘못 산다’는 축에 속할 수 밖에 없으며(물론 회사에서도 임원급 이상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죠. 하지만 임원으로 재직할 수 있는 기간이 매우 짧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직장인의 숙명이자 영원한 딜레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직장인의 유한성에 대한 딜레마


둘째로는 직장인의 안정적인 삶이 유한적이며, 과거와 비교했을 때 심각할 정도로 짧아졌다는 겁니다. 노동법상으로 직장인의 정년은 대개 58세에서 60세 정도로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나이까지 꿋꿋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직장인은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만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죠. 더군다나 요즘처럼 대기업은 물론 중견, 중소기업까지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이 값싼 유행처럼 밀려오는 시기에 직장인은 그저 회사의 인건비를 줄임으로써 재정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하나의 옵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조금 심하게 표현해, 과거 산업화 시대의 직장인이 조직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품으로써 사용가치가 떨어지면 저렴한 새로운 부품으로 갈아치우는 경우였다면, 현재는 아예 두, 세 개의 부품을 동시에 빼버려도 조직이 돌아가는데 있어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팽만한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IT를 비롯한 첨단 기계의 발달이 과거 3~4명이 할 수 밖에 없었던 업무를 혼자서도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며,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전문가들이 지금은 단순히 기기를 조작하는 오퍼레이터(operator)로 전락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를 읽어보시죠.


'컨테이너 수송'으로 98.5%의 노동력을 절감하다



런던 부두의 노동조합장을 지낸 노인이 내 동료 리처드 킹(Richard King)에게 이런 말을 했다. 1970년에는 목재 수송선에서 짐을 모두 내리려면 108명이 달라붙어도 족히 5일은 걸렸다는 것이다. 1명이면 540일을 뼈 빠지게 일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다가 새로운 방식인 ‘컨테이너 수송’이 등장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었고, 어느날 런던 부두에 목재 수송선이 도착했다. 그때 다시 노인이 리처드에게 말했다. 8명이 하루만 고생하면 짐을 모두 내릴 수 있다고. 이번에는 1명이 8일동안만 고생하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더 놀라운 사실 : 부두에서 일하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이제 대부분 컴퓨터 제어 장치를 이용해 ‘화이트칼라’ 일을 하고 있다) 결과는? 실제 업무에 필요한 블루칼라 노동력이 98.5%나 줄었다. 

                                                                --  <미래를 경영하라> 톰 피터스 지음,  중에서  --



어떤가요? 108명이 5일 걸려하던 일을 8명이 단 하루만에 할 수 있다니! 1명으로 환산하면 8일이면 일이 끝난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수치입니다. 이 데이터가 나오고 약 15년 정도가 흐른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정확한 수치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아마도 1명이 2~3일 이내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준까지 올라서지 않았을까요? 설사 하루 안에 처리된다 할지라도 전혀 놀랍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생기는 한가지 의문점. 1명으로 모든 일의 처리가 가능하다면 일자리를 잃은 나머지 107명은 어디로 갔을까요?




이처럼 IT의 발달, 생산성의 증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구조조정 등으로 더 이상 직장인의 고용 안정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법적으로 보호장치를 해 놓는다 할 지라도 환경에 대한 급격한 변화에서 생존하기가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한가지가 있습니다. 108명 중의 한 명으로 남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고용지속에 대한 절대적 권한은 고용주에 있다는 점입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것처럼, 회사가 싫으면 직장인이 떠나야 합니다. 들어오긴 상당히 어렵지만, 나가는 것만큼은 자신의 선택으로 가능한 곳이 바로 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계속 회사에 머무르고 싶다면 반드시 고용주의 관용적 허락이 있어야만 합니다. 회사라고 하는 집의 주인은 고용주이며, 집에 머무는 것에 대한 허락은 전적으로 집주인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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