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형주의 학식자들 중에 실제로 쓸모 있는 인물이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겠소?”
서서에게 유비가 물었다. 서서는 형주의 학자들 사이를 찾아다니며 비교적 교제가 넓은 인물이었다.
“형주에는 복룡과 봉추가 있습니다.”
복룡 또는 와룡은 가만히 엎드려 있는 용이다. 가만히 엎드려 있지만 구름을 잡으면 하늘로 비상하는 거룡이 된다. 봉추란 봉의 새끼를 말한다. 작은 새끼지만 성장하면 창공을 나는 거조가 되는 것이다. 유비는 속으로 생각했다.
‘새끼가 성장하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급하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
“봉추보다는 복룡이 필요한데.”
“아 참, 봉추는 이미 유표를 섬기고 있습니다. 예의 방통이지요. 복룡은 아직 벼슬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요. 제갈공명이라고 합니다. 제 친구이지만…”
위는 삼국지에서 유비가 자신을 도와줄 전략가를 뽑기 위해 주변의 적합한 인물을 천거받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서는 유비에게 복룡(와룡)과 봉추를 추천하는데, 이 두 사람을 일컫는 사자성어가 바로 와룡봉추(臥龍鳳雛)죠. 유비는 두 사람 중 제갈량을 선택하고,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어렵사리 자신의 옆에 앉히게 됩니다. 봉추선생인 방통 또한 나중에 제갈량의 설득으로 유비의 참모진에 합류하게 되며, 유비는 와룡봉추를 모두 얻게 되죠. 제갈량과 방통, 그들은 뛰어난 지략가들로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지만, 최종적으로 유비를 삼국통일의 황제로 등극시키는데는 실패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유비에게 보여준 충성심은 유비를 실제 그의 가진 능력보다 더 대단한 인물로 만들어주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삼국지의 와룡봉추 이야기로 서두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 있지만 항상 한가지 궁금점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내노라하는 대기업의 회장님을 측근에서 평생 모시는 분들은 과연 와룡봉추와 같은 진실된 충성심으로 그들의 오너를 섬기는 걸까요? 오너의 인간적인 면에 반해, 혹은 존경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를 평생 모셔야 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걸까요? 대답이 예스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유비의 인덕에 반한 제갈량이 강호로 나올 결심을 한 것과 진배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대답이 ‘노’라고 한다면, 왜 그들은 비리로 인해 감옥에 가는 오너조차 감싸고 보호하며 충성을 다하는 걸까요? 정말 자신의 일인 것처럼, 혹은 자신의 일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말이죠.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긴 합니다. 이들은 철저한 ‘조직형 인간’으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형 인간이란 한마디로 조직에 맞춤화된 사람을 말합니다. 조직형 인간은 다음과 같은 최소 한의 두가지 조건을 충족할 수 있어야만 하는데, 그 첫째가 조직과 개인 가치관의 동조화 여부입니다. 조직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어야 하며, 조직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됩니다. 나란 개인보다는 조직이 우선이어야 하며, 조직에 속한 나는 조직과 같이 움직이는 일심동체의 유기체란 생각을 가질 수 있어야만 하죠. 그렇기 때문에 조직형 인간의 꿈 또한 조직을 기반으로 형성되며, 조직의 관리자, 소위 임원 이상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목표이자 꿈이 됩니다.
둘째로 조직형 인간의 특징은 경쟁을 거부하지 않으며, 많은 부분에서 경쟁을 즐긴다는 겁니다. 이들은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소한 일도 승부와 연결시키며, 승부라면 당연히 이겨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내기를 좋아하고, 일단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기를 하게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이겨야만 하며, 만약 지게 되면 집에 돌아가도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타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격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경쟁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며, 경쟁에서 이길 때 매우 큰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다니는 직장에도 분명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이 이런 유형에 속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스스로 생각할 때 ‘나는 조직형 인간이다’란 결론에 도달한다면, 당신은 지금보다 더욱 현 직장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형 인간에게 직장이란 항상 긴장과 스릴, 그리고 삶의 재미와 경쟁을 통한 성취를 제공해주는 터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직장은 전운이 감도는 사각의 링, 혹은 거친 정글과도 같은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미국의 이종격투기 대회명)의 옥타곤과도 같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딱 두 단어만 머릿 속에 각인시켜야 하는데, 바로 승부와 승리가 그것이죠. 이들에게 패배는 큰 타격이며, 한 번의 큰 패배 혹은 여러 번의 패배가 이어질 경우, 다시는 무대에 설 자격조차 없어지게 됩니다. 실제로 UFC에서도 선수가 3연속 패배를 당할 경우 더 이상 대회에서 뛸 수 없도록 선수자격을 박탈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한 경기, 한 경기가 치열한 경쟁이자 생존의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직장이며, 이러한 논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불나방처럼 과감히 뛰어 드는 혹은 ‘이런 것이 바로 삶이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조직형 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기업 회장님을 평생 모시는 분들이 아마 전형적인 조직형 인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회장님의 인덕에 반해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모든 분들이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이들은 조직과 개인을 동일시하고, 조직 내에서 꿈을 찾기 때문에, 그리고 그 꿈을 오너의 측근에서 이뤄가기 때문에 평생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선택을 좋다 나쁘다 논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결국 본인의 선택이고 성향이기 때문이죠.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죠.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조직형 인간이라면, 딴 생각 품지말고 오롯이 현재 당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올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직장이란 곳은 경쟁을 즐기는 당신이 마음껏 질주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으며, 경쟁에 이길 때마다 지속적인 성취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회사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이라는 가치관은 일에 대한 집중과 몰입을 가져올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빛나는 성과 또한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은 더더욱 조직에서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며, 이것이 선순환처럼 돌아가며 당신에게 끊임없는 활력과 조력자가 되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