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칸양 Nov 16. 2018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4)

#42-4, '미친년'이면 어때?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인 걸.


Chapter 5. 부모 맘에 드는 자식은 많지 않아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난 상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엄마는 나만 보면 시집가라고 성화였다. 가만 보면 우리 엄마 눈에 나는 상당히 맘에 들지 않는 딸임에 틀림이 없었다. 곱게 키워서 멀쩡하게 좋은 대학 보내 주었더니 월급도 쥐꼬리 만큼 버는 회사를 다니면서 날마다 밤을 세운다. 그 놈의 잘 난 회사 다니느라 스트레스 받아서 살은 푹푹 찌고 얼굴도 못나 졌다. 도대체 동네 아주머니들한테 자랑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우아하신 우리 엄마가 날 보기엔 딱 미친년이다.


나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길이 무언지 잘 몰라서 항상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많은 시도를 한다. 매번 실패하면서도 나는 언젠가는 내 앞에 내 길이 보일 것이라고 그럴 것이라고 우기면서 고집을 피운다. 그 길을 찾기 전에는 난 다른 것에 한 눈 팔기도 싫다. 시집가서 해결되는 거라면 당장에 갔을 테지만 그것은 시집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조차도 혼란스러운데 내 인생에 또 다른 혼란을 끄집어 들이기가 벅찼다. 그래 벅찼다는 표현이 나에게는 딱 맞는 표현이었다.


이래저래 나는 미친년이었다. 그 표현이 나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삭막한 니스의 겨울 바닷가에서 나는 엄마가 내게 했던 불렀던 ‘미친년’이라는 표현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누구로부터도 이해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다. 파도가 달려들고 바람이 달려 들어 정신이 없는 그 바닷가에서 나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차라리 ‘자아’가 이리 강하지 않았다면 ‘착한 딸’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 흔한 ‘착한 딸’도 되지 못하고 ‘미친년’이 되어 여기까지 흘러 온 것이다.


그 날 나는 알래스카에서 온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인류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었다. 보잘 것 없는 내 영어를 그녀는 칭찬해 주었다. 가끔 가다 내가 어려운 단어라도 쓸라 치면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곤 했다. 인류학을 공부해선지 마음이 많이 열려 있었다. 그녀는 더듬더듬 내 영어를 잘 이해해 주었고 나는 그녀와 언덕배기에 있는 마티즈 미술관에 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살아 온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 놓았고 그녀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글 쓰는 게 좋아서 인류학을 공부 했다고 한다. 집 안에선 그녀를 제외하곤 대학을 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단다. 미국도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글 쓰고 공부해서 밥 먹고 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며 게다가 수요가 많지 않는 인류학을 공부하는 것은 정말 수지 맞지 않는 장사라고 했다. 고등학교 이후엔 집 밖의 세상에 별로 관심이 없이 살아가시던 그녀의 어머니는그녀를 절대 이해 하시지 못하신단다. 돈도 안 되는 인류학이라는 공부를 죽자고 하고 그것도 모잘라 시집도 안 가고 밥도 안 나오는 글을 쓰는 그녀를 이해하시지 못한단다. 그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하다가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 눈에는 내가 미친년인 거지.”

“우하하하” 


순간 내 웃음 보따리가 함께 터졌다. 


“너 그거 아니? 우리 엄마 눈에도 나는 미친년이야.”

“그래? 너도 미친년이었어?”

“응. 하하하하, 그러고 보니 우리 둘 다 미친년이었었네.”


우린 둘 다 웃음이 터져서 더 이상 걷질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우하하…너도 미친년이었었구나”

“너도 그랬구나” 


그러고는 한참을 웃어댔다. 그 웃음과 함께 나는 미친년이라는 말 속에 담겨 있던 내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 버렸다. 


그러니까, 엄마들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모양이다. 엄마들 눈에는 그들의 세대에 하지 않던 일을 하고 다니는 딸들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아 보이나 보다. 시대는 변하고 세상도 변하고 그에 맞추어 딸 세대들의 생각도 변해 가는데 많은 부모님들은 자신의 세대를 기준으로 자신의 딸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니 엄마들 눈에는 우리가 ‘미친년’이 될 수 밖에 없나 보다.


이래저래 부모님 맘에 맞는 자식이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내 삶에 대한 해답 하나를 얻은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미친년’이 되기로 했다. 그 단어를 상처받지 말고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부모님 세대의 질서를 존중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이유 때문이다.


“나는 내 세대를, 그리고 내 시대를 살아야 하니까 그 삶을 살아내야 하니까.”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언젠가 내가 다음 세대를 바라 볼 때 나는 그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그래, 너희들의 방식으로 그러니까 ‘미친년’으로 아주 잘 살아주길 바래. 멋지게! 그게 너희들이 살아낼 수 있는 최선의 삶이야”


(끝)


                                                                            2012년  4월  5일


                                                           -- 오현정(변화경영연구소 4기 연구원) --



* 변화경영연구소의 필진들이 쓰고 있는 마음편지를 메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Chapter 1. 세상에 참으로 다양한 삶의 방식(Ep1. 아빠와 유모차, Ep2. 행복한 독신)

Chapter 2 ‘도(道)’는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

Chapter 3.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아 

Chapter 4. 어렵게 살지 않아도 된다 : 인생 뭐 별거 있나? 물 흐르는 데로 사는 거지.

Chapter 5. 부모 맘에 드는 자식은 많지 않아


사실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북유럽인이든 알래스카인이든, 몽골인이든 네팔인이든 삶을 살아간다는 큰 틀에서 바라보면 말이죠. 먹고 자고, 살아가고 그리고 나이 먹는 인간의 여정은 모두 동일합니다.


하지만 과정은 꼭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은 것 하나, 소소한 행동 하나, 거의 움직임이 없을 것 같은 감정의 움직임, 감사하는 마음, 여유를 가지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 사랑의 속삭임, 바람의 흔들림, 빵 하나의 넉넉함 등. 삶은 이런 작은 것들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에 의해 달라집니다. 여유와 배려, 관심은 그렇게 만들어 집니다.


여행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그리고 생각지 못한 것들을 사색하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여행은 일탈아기 때문이죠. 일탈은 우리의 생각을 기존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에서 보고 배운 것들이 많이 남아 있게 되는 거고요.


위 5가지 주제는 우리가 살아갈 때 꽤 소중한 키워드라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순간임을 알고, 살아가는데 있어 그리 많은 물건이 필요치 않으며, 아둥바둥이 아닌 자신의 가슴이 이끄는 대로의 삶을 살아가며, 그리고 무엇보다 내 기준대로, 내 바람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삶은 꽤나 괜찮은 삶이 될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기준에서 말이죠. 사회적 기준만을 쫓으며 살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진실된 나의 욕망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헛된 욕망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작가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가 더욱 가슴깊이 새기며 살아야 할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그래, 너희들의 방식으로 그러니까 ‘미친년’으로 아주 잘 살아주길 바래. 멋지게! 그게 너희들이 살아낼 수 있는 최선의 삶이야”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 공지사항 한 가지!

차칸양이 진행하는 '좋은 책 읽고 쓰기 습관화 프로그램' <에코독서방> 8기를 11월 28일(수)까지 모집하고 있습니다. <에코독서방>은 첫째, 좋은 책을 읽고, 둘째, 반드시 독후감을 작성하며, 셋째, 정기적인 독서 습관을 키우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목적으로 합니다. 6개월 간('18년 12월~'19년 5월) 자신이 원하는 권수만큼의 자유도서와 공통 도서를 읽게 되며, 월 1회의 오프모임을 통해 사회에서는 만들기 힘든 형/누나/동생의 관계까지 얻게 되는 특전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번 하게 되면 푹~ 빠지게 되는 에코독서방의 매력,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https://brunch.co.kr/@bang1999/430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