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칸양 Nov 15. 2018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3)

#42-3, 물 흐르는 대로의 가슴을 따라 사는 삶 



Chapter 4. 어렵게 살지 않아도 된다 : 인생 뭐 별거 있나? 물 흐르는 데로 사는 거지.


인생엔 무언가 성취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늘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늘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문제는 무언가를 이루려고 제대로 된 노력은 취하지도 않으면서 그것들을 부러워 하기만 하는 나의 태도에 있었다. 그게 나의 불행의 근원이었다. 달성하지 못한 목표만을 나는 잔뜩 늘어 놓고 늘 스스로 자괴감에 빠졌었다.


그 때 나는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 폴리스가 등 뒤로 보이는 유스 호스텔에 머물고 있었다. 겨울인데도 지중해의 햇살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 따뜻한 햇볕에 누워 잠이라도 자고 싶었다.


나는 별로 의욕이 없는 여행자였다. 아크로폴리스도, 시내 구경에도, 수니온 곶도, 시내에 있다는 박물관에도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유스 호스텔을 어슬렁 거리며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어딘가 내가 낄 곳이 없을까 유심히 사람들을 바라 보고만 있었다.


유스 호스텔 데스크에는 잘 생긴 호스텔 지기들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영어가 안 통하는 그리스에서 그들은 아주 명확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잘 생기기 까지 했다. 근육이 약간 있는 건장한 체격에 어디 한군데 나무랄 데 없어 보이는 이목구비. 나는 그가 연극배우 같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유스 호스텔을 드나들면서 그에게 어떻게든 말을 걸어 보려고 노력했다. 여기 저기 관광지에 가는 방법들을 그에게 물었고 거실에 놓인 유료 인터넷 이용법을 그에게 물었었다. 그리고 또 근처에 슈퍼마켓에 가는 길을 그에게 물었다. 그가 몇 번이고 설명을 했는데도 나는 잘 알아 듣지 못했다. 그건 언어의 문제라기 보다는 나의 길 찾기 감각의 문제였다. 


내가 몇 번이고 물어 본 길을 또 물어보자 그의 얼굴에는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밤에 유스 호스텔에 필요한 빵을 사러 갈 예정이니 시간 맞추어 자기를 따라 오라고 했다. 


그의 사연이 있어 보이는 눈과 매우 멋진 런던식 영어 발음이 나를 재미나는 이야기로 이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밤이 왔고 나는 그를 따라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슈퍼마켓 가는 길에 내가 슬쩍 그에게 물었다. 


“근데, 원래 고향이 어디야? 너 그리스 사람은 아니지?”

“영국”

“영국 어디?”

“런던 근처”

“그랬구나.”


나는 그에게 이야기를 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그에게 자꾸 이야기를 해달라는 텔레파시를 보냈다. 


“우와, 근데 여기까지 와서 사는 구나!” 

“그렇게 됐어. 어찌하다 여기까지 와서 사는 거지.”


그는 피우던 담배를 끄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몇 년 전에 내가 유태인 여자 아이와 사귀고 있었을 때였어. 참, 난 런던에서 연극 배우를 했어. 그리 잘 나가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무대에 섰었어. 그 때 그 아이를 만난 거야.”

“진짜? 우와 내 예측이 맞았네. 난 너를 보자 마자 연극 배우처럼 생겼다고 생각했었어.”

“그 여자 애랑 몇 년 같이 살았는데 그 아이가 갑자기 그리스를 오겠데. 그래서 특별한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랑을 따라서 여기 온 거야.” 

“근데 넌 연극 배우 다 그만두고 온 거야?”

“응, 뭐 그리 잘 나가지도 않았쟎아.”

“근데?”

“그 아이랑 여기 와서 살기 시작했어. 그래서 여기 온 거야. 뭐 특별한 이유도 없어. 날씨가 정말 좋더라. 그냥 그게 좋았어. 그러다가 여기 유스 호스텔에서 이 직업을 얻었지 뭐야. 그런데 이 직업이 싫지 않았어.”

“응. 근데 너 그리스 말 못해도 살기에 불편하진 않아?”

“아니, 전혀.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유스 호스텔에선 늘 새로운 사람들을 볼 수 있으니까. 내 적성엔 잘 맞았어.” 

“그렇구나.”


나랑 그 아이는 빵을 몇 봉지 사고 맛있어 보이는 그리스 오렌지를 몇 알 샀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다시 말을 꺼냈다. 


“여기 와서 몇 년 살다가 그 아이랑 헤어졌어. 그래서 이제는 혼자야. 그 아이 땜에 여기 오긴 했지만 난 여기서 새로 얻은 직업이 좋고 그래서 여기 사는 게 좋으니까. 그냥 여기 사는 거야.”

“너 여기 유스 호스텔 일이 재미있구나?”

“응, 여기 일은 재미있어. 전세계에서 오는 사람들을 모두 만날 수 있으니까.”

“그렇구나.”


사실, 태어나 30년 정도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온 나에게 그의 이야기가 처음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왠지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쓸데없는 책임감 같은 것들이 스르르 나를 떠나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삶이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한 번에 하나씩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정말 물 흐르듯이 특별한 목적 없이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행복한 얼굴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그야말로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명예, 돈, 지위, 목적 따위는 놓아 버리고 자유롭게 자신의 가슴을 따르다가 나름대로의 자신이 제일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을 찾은 것 같아 보였다. 


그 아이를 보면서 아마 내 속엔 히피가 자라기 시작했을 거다. 인생 그리 어렵게 살지 않아도 된다. 물 흐르듯이 가슴이 말하는 데로 살아도 된다. 다만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우리네 삶은 왜 이리 힘든거지? 아마 가슴의 말하는 소리를 잘 듣지 않고 살기 때문이 아닐까? 머리에서 지저귀는 그 많은 소리들을 놓아 버리고 가슴을 따라 사는 삶.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그 아이를 보면. 




(4편에서 계속)




                                                                             2012년  4월  5일


                                                                -- 오현정(변화경영연구소 4기 연구원) --



* 변화경영연구소의 필진들이 쓰고 있는 마음편지를 메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 공지사항 한 가지!

차칸양이 진행하는 '좋은 책 읽고 쓰기 습관화 프로그램' <에코독서방> 8기를 11월 28일(수)까지 모집하고 있습니다. <에코독서방>은 첫째, 좋은 책을 읽고, 둘째, 반드시 독후감을 작성하며, 셋째, 정기적인 독서 습관을 키우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목적으로 합니다. 6개월 간('18년 12월~'19년 5월) 자신이 원하는 권수만큼의 자유도서와 공통 도서를 읽게 되며, 월 1회의 오프모임을 통해 사회에서는 만들기 힘든 형/누나/동생의 관계까지 얻게 되는 특전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번 하게 되면 푹~ 빠지게 되는 에코독서방의 매력,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https://brunch.co.kr/@bang1999/430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