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칸양 Nov 09. 2018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2)

#42-2,‘도(道)’는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 


Chapter 2 ‘도(道)’는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 


좀 비장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한 여행에서 나는 속세의 삶을 버릴 결심을 했다. 보르도에 있다는 플럼 빌리지에서 운영되는 동안거(冬安居)를 인터넷으로 신청을 해 두고 한국을 떠났으니 말이다. 내친 김에 그 생활이 내게 맞으면 나는 미련 없이 거기서 여생을 보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 눈엔 세상이 온통 미쳐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 속세에서 더 이상 행복해 질 수 없는 것처럼 생각이 됐다. 뚜렷한 근거는 없었지만 내 눈에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힘겨워 하는 것 같았고 부정직한 사람들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세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용기 없게도 국내에서 속세를 버리는 일만은 못할 것 같았다. 그 알량한 자존심으로 하고 싶은 여행이나 실컷 하다가 속세를 버리든가 말든가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얼마 간 여행을 다녔더니 마음이 많이 가벼워 짐을 느꼈다. 어쩌면 세상이 삐뚤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삐뚤어 졌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 날 나는 어딘가로 가는 기차 안에 있었다. 옆 자리 앉은 사람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큰 소리로 하하하 웃어 대기도 했다. 제법 친해진 사람들은 내게 자기 나라말을 하나씩 가르쳤다. 포도주 종류를 가르치는가 하면 발음 기호를 써 가며 음식의 이름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별거 아닌 것을 배우면서 나는 즐거워했다. 그 순간, 난 그들과 하나가 되었고 나는 그들과 어울리는 데 몰입을 하고 있었다. ‘나는 행복한가? 나는 즐거운가?’ 더 이상 머리 속으로 스스로를 검사 하고 있지 않았다.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알량한 말들로 나를 판단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 순간 내 존재와 하나가 되었고 순간과 어우러졌다. 세계와 나 사이에는 더 이상 거리가 있을 수 없었다. 시간은 영원했고 내 존재는 무한했다. 밝음이 커다란 밝음이 나에게 스며들어 있었고 나는 내 경계를 허물고 그 밝음과 하나가 되었다. 


‘아! 이것이 바로 ‘도(道)’였구나! 그게 별 게 아니었구나. 내 존재와 하나 되어 즐거운 것, 그것이구나.’ 


순간 나에게 내 몸과 머리 속을 동시에 관통하는 깨달음이 하나 지나갔다. 그 道가, 내가 그토록바라던 그 道가 바로 지금 여기에 있었다. 이것이 道라면 그 동안 내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 삶이 ‘바로 여기’ 에 충실하지 않아서 였다. 미래를 그리면서 안달했고 과거를 후회하고 현재를 다른 이들과 비교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더 이상 플럼 빌리지에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순간순간 놓치지않고 ‘지금 바로 여기’에 충실해지는 것 그렇지 못하고 있다면 재빨리 바꾸어 주는 것 그것만이 나를 행복으로, 道로 데려다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Chapter 3.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아 


그 날도 나는 미련스럽게 너무 많은 것들을 들고 다니고 있었다. 바지도 4장, 스웨터도 5장, 면 티도 3장, 파카도 2개, 양말은 5켤레, 혹시나 몰라서 들고 온 물병도 2개, 굶어 죽을까 봐 밥 대신 먹을 수 있는 생식,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는 티백 녹차 한 박스, 얼굴엔 바르지도 않으면서 지고만 다니는 화장품들, 혹시 몰라 가져온 노트도 3권, 지난 여행지에서 맛있어 보일 것 같아 사 둔 이제는 말라버린 빵 조각, 신발도 세 켤레 기타 등등.


그러니, 큰 배낭으로도 감당이 안 돼서 오는 길에 작은 가방을 하나 사야 했다. 그것들을 모두 다 기차에 실었다가 내리고 낑낑대며 다니는 내 꼴이란 등짐 진 당나귀 같았다. 


그랬다. 나는 쓸데 없이 너무 많은 것들을 지고 다니고 있었다. 바지 2장, 스웨터 2장, 면티 2장, 파카도 하나만 있으면 된다. 가지 수를 조금만 줄여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까 불안해 하며 너무도 많은 물건들을 지고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기차 간 위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내 짐들을 두고 멀리서 보니 웃음이 킥킥 나왔다. 사실 저것들을 모두다 도둑맞는다 해도 여행을 못할 리는 없었다. 당장 내게 필요한 것은 입고 있는 간단한 옷과 신발, 먹을 것을 살 수 있는 약간의 돈, 그리고 오늘 밤 내 몸을 누일 자그마한 공간 뿐이었다. 단지 그것 뿐이었다. 


잠시 생각이 서울의 내 방으로 흘러갔다. 까만 정장 바지도 벌써 5개가 넘었고, 치마도 벌써 10개가 넘는다. 구두는 몇 켤레인가? 벌써 20켤레도 넘는 것 같다. 화려해서 내 눈길을 끌어 사둔 원피스만 해도 몇 개인지 세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사두고도 나는 매번 옷이 더 필요하다고 신발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행에 뒤떨어진 옷들을 버려두고 새로운 옷들을 사야 했고 남들의 시선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치장이 필요했다. 


아마 그것들은 내 내면의 공허함을 메우기 위한 물건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 것이고 그것들로 공허한 내 내면을 채우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많은 것들이 필요했을 것이고 더더욱 화려한 것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많은 것들을 가지고서도 나는 만족감을 얻지 못했고 삶에 대해 감사할 줄도 몰랐었다. 그리고 또 다른 것들을 바라기 시작했었다. 그리고는 그 내가 가진 소유물들에 반대로 내가 소속이 되기 시작했다. 그 치마를 입고 내가 부유하게 보이기를 바랐고 그 바지를 입고 내가 키가 더 크게 보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여기 이 조그만 기차간의 공간에 누워보니 내가 가진 소유물들이란 얼마나 과부하였던가?


실제로 살아가는 데는 필요한 게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아 보였다. 건강한 몸과 간단한 옷가지와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몇 푼의 돈과 그리고 오늘 밤 내 곤한 몸을 누일 수 있는 작은 공간. 그거라면 족했다. 


그거에 비하면 나는 너무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너무도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나니 새삼 나의 삶이 감사해졌다. 


살아가는 데 진짜 필요한 것은 별로 많지 않다. 



(3편에서 계속)




                                                                                2012년  4월  5일


                                                                -- 오현정(변화경영연구소 4기 연구원) --



* 변화경영연구소의 필진들이 쓰고 있는 마음편지를 메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