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칸양 Jun 16. 2020

갈비탕 그녀

#70, 갈비탕에서 우러나는 옛상사 그녀와의 추억



그녀는 

나의 상사였습니다. 그녀의 남편도 나의 상사였어요. 나는 그들의 회사에서 사회초년병으로 일을 시작했지요. 작은 회사에서 어쨌거나 대장인 사장님은 참으로 유능하지만 ‘네가티브’한 리더십을 휘두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너무나 명석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그는 사람에 대한 이해나 공감능력은 제로인, 눈을 들여다봐도 도무지 생각이나 감정이 읽히지 않아 무시무시한 사장님이었지요. 신입을 뽑아놓고 훈련은 없이 실전에 투입시켜 깨지고 구르면서 배울 수 밖에 없는 '도전! 실전빡침'의 현장을 늘 연출하다 보니 매일 크고 작은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좀 눈치가 있는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이직을 해버렸기 때문에 사무실에는 허리 노릇을 할 중견직원 한 명 없이 대부분 근속 연한 1년 미만의 신입들로 밀려드는 프로젝트를 감당해야 했고요. 일은… 한도 끝도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프로젝트가 한창일 때는 석 달간 주말도 없이 일하며 매일 10시까지 야근을 하는데, 직원들이 넘 시간에 쫓기고 피곤에 쩔어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고 몰래 시켜먹은 치킨을 가지고 얼마나 뭐라 하던지…. 뭐 프로답지 못하다나요? 아 젠장, 프로는 밥도 안 먹고 일하냔 말이지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지쳐 쓰러지겠다 싶은 순간에 격려와 지지는 커녕, 주구장창 ‘너는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인데 나니까 참아 준다. 그러니까 잔말 말고 일해!’ 라는 식의 메시지를 우아하게 쏟아 부으니 사무실에는 늘 모멸과 좌절의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일보다 

맘이 더 고달픈 나날 중에 또 한 가지 스트레스가 그 사장님의 부인이었습니다. 역시나 능력있는 팀장이었지요. 일은 똑부러지게 잘 하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일하기가 특기였습니다. 사장님같은 공감불능자는 아니었으나, 갈굼질의 달인인데다 무엇을 하든 혼자 일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계속 끌어들이면서 ‘나 지금 이런 일 해, 잘하지?’라는 식으로 그 좁은 사무실에서 생중계하듯 떠들면서 일을 하는 타입이라, 지속적으로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괴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리숙하고 실제로 많이 어린 직원들은 염라대왕과 마녀가 만난 것 같은 이 조합 아래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투닥거리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뭐, 우리는 실은 사장님은 무서워했지만 팀장님은 흥, 여직원들 특유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용해 은근따를 만들어 버리기도 했지요. 그녀가 겉으로는 까칠 잘난척 마녀였지만 실은 맘이 꽤나 약한 사람임을 눈치채고 있었거든요. 밥도 우리끼리만 몰래 먹으러 가고요. 어느 날은 아침부터 또 얼마나 사람을 약 올리던지 너무도 열이 받아서 점심 시간 카페에서 마주 쳤는데도 팀장님을 아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녀가 사무실에서 나를 불러내 한 마디 하는 거였어요. 당연히 막 혼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나를 바깥에서 그렇게 모른 척 해서 너무 맘이 아팠어. ” 그냥 그러는 거예요. ‘너 그러는 거 아니다. 다음부터 그러지 마라’ 그런 말도 없이 그냥 자기가 마음이 아팠다가 끝. ‘어… 이건 뭐지.’ 처음에는 의아하다가 나중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져서 다음부터 너무 은따시키지 말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녀와 조금 늦게 퇴근을 하게 됐습니다.  8시 좀 넘어서인가,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데 같이 일어서던 그녀가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갈래? 하는 것이었어요. 밥? 왠 밥? 얼릉 집에 가야 되는데 싶었지만 우리 집은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고, 그녀의 집은 아주 가까웠거든요. 그날은 식당밥이 먹기 싫어서 참고 허기를 참으며 집에 가려던 참이었는데 그녀가 집밥을 준다니까 또… 밥에 약한 저는 그럼 그럴까요? 해버린 거죠.



그녀의 집은 

소박한 아파트였습니다. 어린 두 딸이 기다리는 작은 집. 아마도 낮 동안은 베이비시터가 봐주었을 그녀의 집은 장난감과 아이들의 흔적으로 조금 어수선했어요. 늘 깔맞춤 정장으로 차려입은 모습이 시크했던 팀장님은 목 늘어진 면 원피스를 갈아입고 나오더니 커다란 냄비에 끓여뒀던 국을 덥혀 제게 작은 밥상을 차려주었습니다. 집에서 손수 푹푹 끓인 갈비탕에 밥, 김치 같은 밑반찬이 조금, 뜨끈한 국을 떠먹는 데, 으아… 이거 진국인 거예요. 국물의 여왕답게 저는 사양도 안 하고 맛있다고 한 그릇, 시원하다고 두 그릇을 청하여 신나게 밥을 말아 먹었습니다. 국 먹을 줄 안다, 어쩜 사양도 안 하고 이렇게 잘 먹냐며 밥공기를 채워주던 그녀는 알고 보니 저와 마찬가지로 대단한 탐식가였습니다. 밥을 차리고 치워내는 와중에도 간간히 손이 가는 아이들을 돌보며 저와 이야기까지 하느라 그녀는 바빴습니다. 조금 있다 들어온 사장님은 생각지도 않았던 직원이 집에 와있는 걸 보고는 불편한 양복을 편한 추리닝으로 갈아입지도 못하고 다시 빳빳한 카키 면바지에 잘 다린 셔츠를 갈아입고 소파에 정자세로 앉아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상황에도 제 눈길은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나머지 한 손으로 분주하게 부엌을 치우는 팀장님에게 머물렀습니다. 에효… 참.  



그렇게 마녀처럼 일하고

회사에서 돌아온 그녀가 집에서 돌아와 다시 살림을 하는 후줄근한 엄마로 주방에 서는 모습을 보며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아주 많이 외로웠을 거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집에서는 돌봐야 할 가족에 둘러싸여있고, 사무실에서는 관리하고 함께 일할 직원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녀와 눈높이를 맞춰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아이들은 그녀의 손길을 일방적으로 기다리고 그녀가 관리해야 하는 책임의 대상이고, 회사에서는 마녀 같은 팀장이자 사장의 부인으로 환영 받기 힘든 포지션에서 죽어라 일만 하는 그녀에게 어떤 위안이 있었을까요. 친구를 만날 시간 따위 있기 힘든 살인적인 스케줄의 회사였거든요. 안타깝지만 무뚝뚝하고 무시무시한 사장님이 고단한 그녀를 살뜰하게 챙기는 다정한 남편일거라는 상상은 안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녀에게는 뭔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그나마 사무실에서만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심 먹을 시간도 아껴가며 미친듯이 바쁜 사람들, 한 마디 말을 걸기도 힘든 사무실 분위기인데도 그녀는 끊임없이 말을 걸고 나 이거 한다고, 나 보아달라는 듯 큰 소리로, 때로는 혼잣말로 자꾸 말을 하는 이유가 어쩌면 외로워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죠.



그날 이후 

저는 그녀에게 다소 다정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팀장님은 지병인 목디스크에, 워낙 무리를 하다보니 구안아사까지와서 잠시나마 몸을 못 쓰는 지경에 처해 결국은 회사를 휴직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전직과 결혼으로 그 회사를 떠나고 나서 팀장님의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 직장에서 친했던 동료들은 역시 고생을 같이한 처지라 그런지, 이후 장장 17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며 내내 좋은 동지가 되어 주었지요. 그런데 첫 회사를 떠난 지 2-3년쯤 되었을까? 문득 팀장님이 궁금하더라고요. 그때는 저도 첫아이를 낳으며 나름 고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녀에게 해줄 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사실 모든 직장동료들의 비호감이었던 그녀에게 제가 전화를 한다고 하니 기가 막혀 했습니다. 야… 너 그 마녀한테 진짜 연락하고 싶어? 웬일이니?



전화를 받은 그녀는 

반가워했습니다. 몸은 괜찮아졌고, 다른 시작을 위해 전에 하던 일은 때려치우고 새로운 공부를 하고 계셨는데요. 수년 만에 전화해서 무슨 할 말이 있었을까 궁금해하지도 않고 그녀는 그냥 반가워했고 저는 그냥 전화하고 싶어서 했어요, 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다고 말씀 드렸죠. 그 애를 낳고 나니 왠지 팀장님 생각이 났다고. 그때 많이 힘드셨지요. 제가 너무 몰랐어요. 그랬더니 암 말도 안 하시다가 그냥 고마워. 알아줘서 고마워…라고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고 또 시간이 흘러 그녀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유학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우리가 회사에서 만나고 

또 헤어진 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그녀와 저는 가끔 소식을 주고받습니다. 얼굴을 보기는 쉽지 않지만, 그녀는 전화만 해도 별다른 안부 따위 주고받을 필요도 없이 곧장, 속마음 털어놓기가 가능한 몇 안 되는 비밀의 창구가 되어줍니다. 저 역시 부족하지만 외로운 그녀에게 안심할 수 있는 비밀 금고가 되어주려고 합니다. 그녀와는 아무 이야기나 합니다. 그 어떤 이야기도 합니다. 그녀와 다시 일하라고 하면요? 절대 안 할 거예요. 일할 때 그녀는 진상 마녀거든요. 하지만, 저는 그녀의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속마음을 만져 보았습니다. 그녀도 시크한 척 센 척 노력하는 제가 얼마나 헛똑똑이인지 아주 잘 아는 언니지요. 저는 그때 먹은 갈비탕 한 그릇에 일하는 엄마이기 전에 소통하고 싶은 다정한 언니의 마음을 녹여낸 그녀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먹고 견딘다는 생각을 합니다. 말 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그녀의 호들갑이 보고 싶은 날입니다. 그녀와 따끈한 갈비탕 한 그릇을 나눠 먹고 싶습니다. 아, 그녀가 무슨 공부를 하러 떠났는 지 알려드릴까요? 유능한 홍보우먼이던 그녀가 택한 제 2의 직업은요. 지중해의 햇살을 듬뿍 담은 맛깔진 음식을 차려내는, '요리사'였답니다.



                                                                             2020년 5월 31일


                                                                   -- 강종희(변화경영연구소 10기 연구원) --


* 변화경영연구소의 필진들이 쓰고 있는 마음편지를 메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이 칼럼을 쓴 강종희 연구원은 2014년 <어이없게도 국수>라는 책을 낸 작가입니다. 국수 책을 낼 만큼 그녀는 국수 광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신에 대해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죠.


냉면의 고향 평안도 출신 조모와 그 유전자를 이어받은 부친 덕분에 ‘혈관 속에 냉면 육수가 흐르는’ 뼛속까지 진정한 모태 면식수행자다. 국수가 있는 곳이라면 세상 어느 곳이라도 수행의 장소로 삼으며 하루 한 끼는 반드시 국수를 먹는 투철한 면식 수행의 길을 걸어온 끝에, 고단한 삶의 위안으로 ‘좋은 사람과 국수 먹기’의 임상적, 심리적 효과를 홀연히 깨닫고 국수로 책을 쓰게 되었다.


저는 강종희 연구원의 글이 좋습니다. 음식과 함께 사람과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여간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그녀의 글에는 음식에 대한 '맛있음'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더 구수하고 진합니다. 진국이 따로 없죠.


식욕은 삶의 의지고, 미래에 대한 기대이자 뭔가를 먹는다는 것은 찰나를 가장 깊숙하게 즐기는 원초적인 경험이다. 삶의 어떤 순간에나 존재하는 음식의 추억은, 그 사람의 소소한 일상에서 나아가 한 일생을 담아낼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기억의 창고다.


위의 표현처럼 그녀에게 식욕, 즉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원초적인 경험이며, 더 나아가 사람과의 관계를 진한 추억으로 만들어주는 매력적인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의 재료인 갈비탕 또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담겨있네요. 그녀에게 있어 갈비탕, 특히나 집에서 만든 갈비탕은 마녀와도 같았던, 하지만 언제든 전화해 수다를 떨 수 있는 젊은 시절 옛상사를 떠오르게 하겠네요.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www.sisterkitchen.co.kr/official.php/home/info/2690)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차칸양 아지트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매거진의 이전글 후외없는 선택을 위한 3가지 결정의 법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