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칸양 Feb 23. 2021

나의 장례식 10분 연설

정말 고맙고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 주의 **

이 글은 2031년 죽음을 가정하고, 사망 후 신의 뜻에 의해 딱 10분 간만 다시 살아나 나의 장례식에 오신 분들 앞에서 마지막 연설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안녕하세요, 차칸양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네요. 저 축하해주러 오신 거 맞죠? 가는 길 잘 가라고요. 네, 감사합니다.


오늘이 2031년 1월 9일 맞죠? 10년 전 이날도 무척이나 추웠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도 만만치 않게 춥네요. 더군다나 제가 죽은 줄 알고, 아 죽은 건 맞죠, 영안실에 있다 보니 더 추운 것 같습니다. 네? 지금은 바깥이 더 춥다고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게 주어진 시간이 딱 10분인데 벌써 30초가 흘러 이제는 9분 30초밖에 남지 않았네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막상 많은 분들 앞에 서니, 그리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머릿속이 엉키는 느낌이네요. 그냥 여기 오신 분들과 눈인사만 나누다 가도 그리 나쁘진 않을 듯싶어요. 저를 봐주시는 따스한 눈길 만으로도 크게 위로받는 느낌이거든요.


예순셋이면 한국인 평균 수명보다 훨씬 못 산거네요. 그래서 억울하냐고요? 아니요. 조금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잘 살았다고 자부해요. 왜냐하면 모든 게 다 고맙고 감사하거든요. 제 천성이나 성격 그리고 내세울 것도 별로 없고, 또 보잘것도 없는 제가 이렇듯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또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살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거든요. 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복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여기 오신 분들의 애정과 관심 덕분입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이곳으로 걸어 들어오니 누구보다 놀랐던 건 역시나 제 아내였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않을까요? 이제 ‘드디어 보냈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떡 하니 살아 돌아왔으니 심장이 ‘덜컥’ 했겠죠. 여차했으면 저보다 아내 먼저 보낼 뻔했네요. 어화둥둥 내 사랑 한미 씨, 그래도 내가 먼저 가는 건 변함없으니 심장을 비롯해 건강 잘 챙겨요. 아이들과 함께 명 다할 때까지 즐겁게 살아야지. 비록 내가 없어 빈자리가 아주 가끔은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당신이 하고 싶은 것 다하며 맘껏 즐기다가 천천히 오길 바랄게요. 위에는 내가 먼저 가서 터 잘 닦아 놓고 있을 테니 당신은 남은 시간 잘 보내다 오길 바랄게요.



아내를 처음 만난 건


1995년 화창한 5월의 어린이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뭐가 그리 급하다고 6개월 만에 약혼하고 그리고 다음 해 3월 말에 결혼했으니 11개월 만에 우리는 부부의 연을 맺었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항상 급했네요. 첫째 효빈이를 결혼한 지 1년 만에 낳고, 둘째 해빈이의 울음소리를 다음 해 가을에 들었으니까요. 해빈이를 갖고는 고민도 많았어요. 1998년이 딱 IMF 외환위기가 터진 해라 과연 잘 낳아서 기를 수 있을까 걱정이 컸기 때문이죠. 그래도 낳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안 그랬으면 복덩이이자 한때는 사고뭉치(!)였던 딸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어요, 그렇지 해빈아? 시간을 돌이켜보면 1995년 아내를 만나 다음 해 결혼하고, 그다음 해에 효빈이 낳고 또 다음 해에는 해빈이까지 볼 수 있었으니 우리 가족은 3년 만에 완성된 셈이네요. 둘 다 성격은 느긋한 편인데, 이런 면에서는 참 급했네요. 하하.


저는 참 철없는 남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진짜 남편, 즉 아내의 편이 아닌 남의 편이었습니다. 물론 남이란 것이 부모나 형제였지만 그럼에도 아내의 마음을 몰라주는, 아 모르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냥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리는 나쁜 남편이었습니다. 시월드 덕분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아내가 조금만 불만을 이야기해도 제가 불끈했거든요. 아니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고 그냥 외면하려고만 했지요. 그러다 보니 아내의 마음은 상처 투성이가 되었고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내가 둘째 해빈이를 낳고 몇 년 간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병원도 가고 한의원에도 다녔지만 계속 몸이 아팠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마음의 병, 소위 화병이었습니다. 이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한미 씨, 정말 미안해요. 당신의 외로움, 상처, 고통, 슬픔을 제대로 어루만져주지 못해서요. 아니 제대로 바라봐주지도 못해서요. 이제 가는 마당이니 부디 다시 한번 용서해 주길 바래요.



부족한 제가 정신적으로 


조금 성장하게 된 계기는 2007년 구본형 선생님을 알게 되고, 이후 다음 해에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이 된 것이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때 연구원이 되지 않았다면, 구본형 선생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면, 그리고 연구원들을 알게 되고 이들로부터 또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다면 저는 여전히 부족하고 나약하며 철없는 한 남자에 불과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2008년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물론 고생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잘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책 읽고 서평 쓰고 또 생전 써보지도 않았던 칼럼까지 써야 했으니까요. 그걸 1년 내내 반복해야만 했고요. 하지만 이런 과정이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어떻게 하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보다 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어주었어요. 여러분도 잘 아실 거예요. 인생 여정에 정답은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방향을 잡도록 도와주고, 그 길에 한 걸음씩 발걸음을 내딛게 만들어 주는 용기를 주었어요.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니 생긴 대로, 소명대로 살아보라는 구본형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었지요.


이후 제 삶은 조금씩 바뀌어 갔습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생각이 바뀌니 행동도 변하게 된 거지요. 이러한 생각과 행동이 쌓임으로써 에코라이후라는 커뮤니티도 만나게 된 거고요. 에코라이후는 요즘 용어로 플랫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류의 장이지요. 단 무엇을 사고파는 상업적 용도가 아닌, 아 사고팔 수도 있겠네요. 단, 돈이 거래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과 온정이 나눠지는 그런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뛰어나거나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곳에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성이 보석처럼 빛이 나 다른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 거라고 말이죠. 맞아요. 우리는 모두 빛나는 별입니다. 다만 치열하고 냉정한 사회에서 그 빛을 발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별일뿐이죠. 빛은 빛을 만나 발하게 됩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빛이 다른 사람의 빛까지도 함께 비추도록 만들죠. 그래서 에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제 빛이 약해지고 꺼지려 할 때 다시 힘을 얻고 보다 밝은 빛을 낼 수 있도록 마음을 추스르고 행동할 수 있었으니까요.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은 저의 힘이자 빛이었습니다. 용기를 낼 수 있는 원천이었고, 제가 인생을 지지치 않고 걸을 수 있게 도와주는 스승이자 친구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해야겠네요.


사랑하는 한미 씨. 당신을 만나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아내이자 연인 그리고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친구였어요. 내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는 약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인생 대부분에 있어 당신만큼 강한 사람은 없었어요. 당신이 옆에 있었기에 내가 철부지처럼 이리저리 마음대로 살아올 수 있었네요. 정말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그리고 미안해요. 더 잘할 수 있었고, 또 더 행복하게 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요. 우리 다음 생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지금 못했던 것 그 갑절 이상으로 더 잘할게요. 당신을 더 아끼고 더 소중히 여기며 많이 많이 사랑할게요. 안녕, 내 사랑.


나의 분신 효빈과 해빈아. 아빠가 너희들에게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너희들 배필 만나 결혼하는 걸 못 보고 가는 거다. 물론 결혼이 꼭 필수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의 하나로 본다면 한번 결혼은 해볼 만한 거라 생각해. 상대에 대한 사랑, 책임감, 배려, 이해, 그리고 2세를 낳고 키움으로써 부모의 마음까지 겪어볼 수 있기 때문이지. 만약 내가 살아있을 적에 우리 딸이 결혼했다면, 신부 입장할 때 딸과 함께 식장을 걸어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못해 본 게 아쉬움으로 남네. 별게 다 아쉽지? 아마 그게 내 로망이었나 봐. 사람들에게 내 딸을 자랑하고 싶은 그런. 우리 딸 이쁘쥬? 하는 그런 소소한 마음. 이제 아빠가 없더라도 효빈이 해빈이 모두 좋은 배필 만나 건강한 가정 만들기를 바랄게. 하늘에서 아빠도 축하 많이 할게.


형과 형수님, 그리고 처남, 처형님들. 모두 감사하고 또 미안합니다. 두 집안에서 제가 막내인데 분위기도 못 띄우고 그렇다고 연락은 물론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으니 어쩌면 막내로서의 본분을 잘하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그게 생각보다 잘 안되더라고요. 제가 좀 더 싹싹하고 유들유들했더라면 집안 분위기도 조금 더 좋아졌을 텐데 말이죠. 다음 인연이 또 이어지며 그때는 조금 더 씩씩하고 활발한 분위기 메이커로 행동할게요. 그때까지 건강하게 남은 시간들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에코분들, 또 저의 가는 길을 축하해주기 위해 몸소 여기까지 와주신 모든 분들. 정말 다시 한번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눈길 하나하나가 제겐 힘이 됩니다. 열심히 잘 살아왔음을 느끼도록 만들어줍니다. 아쉬운 건 이 넘치는 애정에 제가 조금이라도 보답을 해야 한다는 건데 이젠 더 이상 그렇게 못한다는 거네요. 하지만 여러분들도 안타까운 제 마음 이해하시죠?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이곳에,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 한편에 제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씩 나누고 가겠습니다. 언젠가 머리를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살짝 불어오고, 그 순간 마음 한편이 찌르르 해진다면, 차칸양이 숨겨놓은 작은 마음 한쪽이 반응하는구나, 말을 걸어오는구나 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맞아요. 영화 대사 흉내 내 본 겁니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면 저는 이곳에서의 아쉬움은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과 마음으로 대화하며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 시간이 다 되었네요. 정말 마지막으로 감사, 또 감사합니다. 제 인생은 제가 아닌 여러분이 만들어 주신 겁니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차칸양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좋은 인생을 만들어가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 덧붙임

이 장례식 연설문은 2021년 1월 9일 작성된 내용이며, 2008년 이후 2번째 버전입니다.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