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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Aug 06. 2021

지금의 나를 정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다

#88, 나에 대한 평가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것



나의 현재를 평가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다


연말이 되면 회사에서는 인사평가가 나온다. 평가를 확인하는 절차는 기말고사가 끝나고 커다란 종이에 인쇄된 학급 전원의 성적을 한 줄씩 떼어 나눠주는 꼬리표를 한쪽 눈을 질끈 감은 채 풀어보던 기억과 연결된다. 회사 인트라넷에 평가 결과 확인하기 창을 클릭한 뒤, 숨이 멎을 것 같은 짧은 찰나의 긴장감을 느낀다. 그리고 결과를 본다.


그렇게 확인해본 평가는, 좋지 않았다. 이번 평가에 내가 예년보다 조금 더 낙담한 이유는, 이번 평가부터는 진급을 할 수 있는 문이 열리기 때문이었다. 또한 내가 딱히 나쁜 평가씩이나 받아야 할 만큼 잘못한 것이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 평가가 나쁠 수는 있다. 그러나 최소한 왜 이런 것이 나왔는지 그 배경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에 대한 고과는 한 번도 나를 평가하는 상사에 대한 나의 예감과 같은 적이 없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쁘게 평가하거나,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이 괜찮게 평가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심증만으로 남이 정한 나의 등급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저 오해만 키울 것 같았다. 나는 팀장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우리는 비어있는 상무님의 집무실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난히 푹신한 의자와 반질반질하게 닦인 큰 책상이 부담스러웠다.


팀장님은 이번 평가의 대상이 되는 업적의 크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속해있던 지난 팀에서 받은 평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새해에는 조금 더 집요하게 함께 일해보자는 이야기로 면담은 끝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평가와 나의 쓸모


‘직장 생활에서 진급은 우선순위를 낮추자’ 나는 입사할 때부터 그렇게 생각해왔다. 평가를 잘 받는 것보다 직장 안에서 내가 재미있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이 실현되는 순간을 왜 다른 사람들은 피하는지 알지 못했다. 진급은 평가와 직결되어 있다. 평가는 월급과 연결되어 있고, 월급은 나의 쓸모와 연결되어 있다. 나의 쓸모를 잃어버리는 순간, 나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나의 자리는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것이다.


불필요한 존재라는 평을 받은 뒤, 나는 어제까지 앉아있던 나의 자리가 순간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앞으로 걷고 있는데 내 발자국 밑의 땅만 남겨놓고 그 둘레를 모두 땅 속까지 다 없애버린 느낌이 들었다. 나의 쓸모가 위협받고 있었다.


면담을 끝내고 자리로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마음이 쓰리면서도 불안해졌다. 나는 내 인생의 3 분의 1을 이곳에서 적응하려고 노력했으나 그러지 못하고 결국 실패했다는 불명예를 안게 될 거다. 지난 3년이 그 증거다. 마치 한 살 나이가 먹으면 자연스럽게 다음 학년이 되었던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시간이 길러주는 나로 만족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몇 주 동안 무기력증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지쳐버렸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한 일주일만 쉬었으면(가능하면 조금 더 오래)이라는 생각을 매일 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출근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날들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지금의 나, 앞으로의 나를 만드는 것은


직장에 대한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내가 쓸 글과 내가 읽을 책들을 통해 무언가 시원한 해답을 얻고 싶었다. 아침 출근길에 나는 책을 한 권씩 뽑아 나가곤 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회사에 도착하는 동안 책을 읽었다. 이번 책은 <세월이 젊음에게>(구본형 지음)였다.


지하철이 한강을 건널 즈음,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와 무인도가 그려진 그림이 나오고, 그 옆장에 쓰여있는 구절이 마음에 들어왔다.


더 나아지기 위해 꼭 훌륭한 과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과거가 훌륭하면 과거를 딛고 올라서라. 그러나 과거가 초라하면 과거가 미래를 대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초라한 과거가 아니라 무한한 잠재력이 미래를 말하도록 해야 한다.


나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몰랐던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지하철을 탈 때 풀어서 접어놓은 목도리를 다시 둘러 얼굴을 가리고, 가방 속에서 티슈를 찾아 눈물을 닦았다. 그래, 운이 없었던 적도 있다. 늘 주어지기만 하는 일이 달갑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만으로도 머리가 꽉 차는 시간도 있었다. 무엇보다 손해보고 싶지 않았다. 그랬구나.

 

평가라는 건 내가 어디쯤 있는지 알려주는 부표 같은 것이다. 그건 쓰임의 수준에 관한 단도직입적인 숫자다. 스스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치인 것이다. 어딘가 숨겨진 퍼즐 조각이 있어 그것을 찾아 맞추어야만 내가 완성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책의 구절은 일이 나의 핵심과 닿아야만 한다는 이 세계의 법칙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은 아래의 글을 다시 곱씹으며 조금 더 강화되었다.


설혹 언젠가 그 일을 떠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 일을 스스로 모욕하지 마라. 시시한 일이라고 투덜거리지도 마라. 그러면 결국 지금의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인생의 돌아올 수 없는 한 때를 모욕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현실을 다른 사람의 평가 아래 두지 말자. 지금의 나를 결정하는 것은 나라는 것을 늘 곁에 두고 생각하자. 나의 인생, 지금의 나를 긍정하고 사랑한다면,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겉돌도록 내버려 두지 않게 될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쯤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생각하고 있던 ‘회사 가는 걸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대신 나는 바라게 되었다. 나의 오늘은 조금은 달라지기를. 오늘 어떤 필요에 의해 내가 반드시 해야 할 무언가를 찾아내기를. 온통 마음을 쏟아 멋지게 일을 해내기를. 그래서, 나의 지난 3년과 오늘이 다를 수 있기를. 내일부터는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게 되기를 말이다. 




                                                                              2015년 2월 2일


                                              -- 구해언(작가, 변화경영연구소 10기 연구원, 구본형선생님의 차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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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다닐 적에 사장님과 독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 졸저를 출간한 후 그 책을 전달드리기 위함이었죠.

사장님은 고생했다며 축하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분위기도 꽤 좋았고요.


하지만 자리에 일어서기 전 사장님이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해주신 말이 있었습니다.

가능하면 회사에서는 책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그 이유가 걸작이었죠.

책 출간을 시기하는 부류가 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회사에서 일은 안하고 (쓸데없는) 책만 썼다고 저를 평가한다는 겁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축하는 못해줄 망정, 그런 식으로 본다고요?

물론 충분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대표라는 사장님조차 그런 말을 한다는 건(물론 저를 생각해서 해주신 말이겠지만),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한 임원은 제게 경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회사를 위한 자기계발을 하지 않고,

제 개인 만을 위한 자기계발(책쓰기 같은)을 한다면

인사상 불이익이 갈 거라고 말이죠.


선택이 필요했습니다.

조직에서 오래 머물러 있고자 한다면

그 경고를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오래 머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조직을 떠난 다른 삶을 꿈꾼다면

회사에서는 필요한 만큼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그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면 되는 겁니다.



사장님과의 독대를 마치고 나오며

저는 속으로 계속 말했습니다.


'나에 대한 평가는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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