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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Aug 12. 2021

시간도둑 회색인간을 물리친
모모처럼!

#89, 시간은, 꽃!

시간도둑회색인간을물리친 모모처럼!

어느 사과부터 먹을까?


내게 주어진 사과 상자. 상자 속, 사과는 단 열 개. 하루에 사과 딱 하나만 먹을 수 있다. 어느 사과부터 먹을까? 싱싱한 사과, 멍든 사과, 벌레 먹은 사과, 예쁜 사과, 열 개의 사과는 모두 다르다.


ㅡ 난 예쁜 거부터 먹을래.

작은 아이가 대답했다.


ㅡ 난 아무거나 먹을래. 벌레 먹거나 멍든 부분은 잘 손질해서 먹으면 되니까.

큰 아이가 대답했다.


사과를 고르는 데도 두 아이의 개성은 고대로 묻어난다. 무엇이든 예쁜 걸 좋아하는 작은 아이는 사과도 예쁜 순서대로 하나씩 먹을 거란다. 작은 아이는 맛보다는 색깔이나 모양에 관심이 더 많다. 우리 집 만능 수리공임을 자처하는 큰 아이는 사과 하나라도 자기 방식대로 손질해서 먹을 거란다. 아마도 큰 아이는 큰 칼, 작은 칼, 긴 칼, 짧은 칼 갖은 도구를 다 활용해서 때로는 검객처럼, 때로는 무사처럼 매일매일 다르게 손질해 먹을 거 같다. 큰 아이는 사과를 먹는 것보다 오히려 사과를 손질하는 기술에 더 관심이 많다.


이 간단한 질문에 머리가 복잡해진 건 엄마인 나였다. 오늘 싱싱한 사과를 먹었다면 내일 멍든 사과가 썩어 있을 수도 있겠다. 반대로 오늘 멍든 사과를 먹었다고 오늘 싱싱했던 사과가 내일도 싱싱할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매일 신선한 사과를 먹을 수 있을까? 사과가 백 개, 천 개라면? 사과의 감가상각을 고려해서 일부는 생으로 먹고, 나머지는 잼으로 만들거나, 술을 담가 두고두고 먹어야겠다고까지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현재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하며 머리를 쉴 새 없이 굴려댔다. 어쨌거나 나는 어느 것 하나 썩히지 않고 전부 먹을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이 갔다.


남편은 색다른 제안을 해왔다. 바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사과부터 골라먹을 것! 모든 사과는 한꺼번에 주어졌고, 하루에 단 한 개씩만 먹을 수 있다. 전체 사과 열 개 중 오늘 가장 맛있어 보이는 사과 한 개를 먹었다면, 남은 사과는 모두 아홉 개. 내일 아홉 개 사과 중에 가장 맛있어 보이는 사과를 먹었다면 남은 사과는 모두 여덟 개. 모레 여덟 개 사과 중에 가장 맛있어 보이는 사과를 먹었다면 남은 사과는 모두 일곱 개……., 매일 가장 맛있어 보이는 사과를 골라 먹는다면 마지막 날까지 가장 맛있어 보이는 사과를 먹은 셈이 된다. 반대로, 가장 맛없어 보이는 사과부터 먹는다면, 오늘 열 개 사과 중에 가장 맛없어 보이는 사과를 먹었다면 남은 사과는 모두 아홉 개. 내일 남은 아홉 개 사과 중 가장 맛없어 보이는 사과를 먹었다면 남은 사과는 모두 여덟 개, 모레 여덟 개 사과 중 가장 맛없어 보이는 사과를 먹었다면 남은 사과는 모두 일곱 개……, 매일 가장 맛없어 보이는 사과를 골라 먹는다면 결국 마지막 날까지 가장 맛없어 보이는 사과를 먹은 셈이 된다. 그러니까, 남편의 주장은 가장 맛있어 보이는 사과부터 먹을 것! 그것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맛있는 사과를 먹는 방법이란다.


과연, 그럴까?



아끼면 아낄수록 부족한 것은?


태어남과 동시에 누구나 일생이라는 시간을 선물 받는다. 사과 상자를 우리의 삶에 비유한다면, 사과는 곧 시간이다. 사과 상자에서 사과를 하나씩 꺼내 먹듯,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누군가 당신에게 속삭인다. 사과를 먹지 말라고. 꼭 사과를 먹어야 한다면 최대한 아껴먹으라고.



시간을 아끼면 곱절의 시간을 벌 수 있다!

시간 절약, 나날이 윤택해지는 삶!

시간을 아끼면 미래가 보인다!

더욱 보람찬 인생을 사는 법 – 시간을 아껴라!


바로 미하엘 엔데의 <모모> 속 회색인간의 속삭임이다. 회색인간들은 바로 우리가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 손에 쥐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 생겨나는 존재다.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공연히 서글픈 날, 여태 제대로 산 것 같지 않아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날, 회색인간은 찾아온다. 똑떨어지는 엉터리 계산을 해대며 왜 아까운 시간들을 낭비하고 살았냐고 질책한다. 30분이 걸리는 일이 있다면 15분 만에 끝내라고, 가족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아깝다고. 노래를 하고,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나는 데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말한다.


시간은 귀중한 것. 잃어버리지 말라!

시간은 돈과 같다. 그러니 절약하라!


회색인간들의 말을 듣고, 돈을 더 벌기 위해, 혹은 더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무언가 더 이루기 위해 1분 1초를 아껴 쓴다면, 일시적으로 돈을 더 벌고, 성적은 더 좋아지며, 무언가 더 이룬 듯 해 보일 수도 있다.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만이 중요해지므로 자신의 일을 기쁜 마음을 갖고 또는 애정을 갖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나’ 다운 것은 방해만 될 뿐이다.


<모모> 속 친구들은 회색인간의 말을 듣고 1분 1초의 시간도 아끼게 되면서, 예전의 따스한 정을 잊고 점차 차갑고 삭막한 사람들이 되어 갔다.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오히려 원래 갖고 있던 자신다운 것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시간을 아끼는 사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 갔다. 삶은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말았다.



나 하나로는 부족해? 나 하나로도 충분해!


무언가 이루고 싶고, 중요한 인물이 되고 싶다는 꿈은 누구에게나 있다.


예쁜 사과부터 골라먹겠다는 작은 아이는 ‘그림 잘 그리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한다. 아름다운 것에 끌리는 이 아이는 늘 바쁘다. 예쁜 옷을 골라 입어야 하고, 머리도 예쁘게 빗어야 한다. 방도 예쁘게 꾸며야 하고, 꽃씨도 심고, 화분에 물도 주어야 한다. ‘그림 잘 그리는 선생님’이 되려면 무엇보다 그림도 많이 그려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만능 수리공이자 오지탐험가가 되고 싶은 큰 아이는 늘 바쁘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으려면 매일매일 체력단련을 해 두어야 한다. 무엇이든 뚝딱뚝딱 고치기 위해 여러 가지 도구의 쓰임새도 익혀야 한다. 위기 상황에 대비해 생존의 기술과 응급 처치 기술도 알아두어야 한다. 수학과 과학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레오는 너무너무 바빴어.

일을 해도 해도 할 일이 넘쳐 났지.

계획표라도 만들면 도움이 될 거 같았어.

하지만 레오의 계획표는 점점 길어져만 갔어.

“나 하나로는 부족해. 할 일이 너무 많아. 내가 두 명이면 좋을 텐데.”


ㅡ 피터 레이놀즈 <나 하나로는 부족해> ㅡ

 

기다란 계획표가 산처럼 쌓여 있는 표지가 인상적인 <나 하나로는 부족해>의 레오는 마치 회색 인간들에게 들들 볶인 모모의 친구들처럼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할 일은 넘쳤다. 레오가 자신이 두 명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한 명의 레오가 나타났다. 레오가 둘이 되어도 할 일을 다 하기에 역부족! 레오는 한 명 한 명 더 늘어나 급기야 열 명이 된다. 열 명의 레오는 주어진 시간 내에 할 일을 마쳤을까? 아니. 절대 그렇지 않다. 한 명의 레오에게 부족했던 시간은, 열 명의 레오에게도 역시 부족한 법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 꽉 짜인 시간표에 따라 바쁘게 일하거나 공부하고 있다. 할 일을 보면 마치 끝이 없는 길처럼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 것만 같다. 쌓여 있는 일을 보면 볼수록 더욱 긴장하고 불안해진다. 그 상태가 지속되면 숨이 탁탁 막혀 더 이상 뭘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럴 때 회색인간이 나타나 속삭일 것이다. 1분 1초를 아끼면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물론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겠지만, “쉴 시간은 없어”, “꿈꾸는 건 계획에 없어”라 말하는 삶은 너무나 삭막하다. 한 순간 한 순간의 과정을 즐기며 목표에 이르는 길은 없는 걸까?


모모는 서두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꼭 반 시간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신기한 거북 카시오페이아처럼, 나에게 단 반 시간만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 한꺼번에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바로 지금 딛게 될 걸음, 다음 순간에 쉬게 될 호흡, 그다음 순간에 하게 될 일만 생각해야 한다. 계속해서 반 시간씩만 이어서 바로 다음 일만 해 보는 거다. 그러면 숨이 차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는다. 일을 하는 게 즐거워진다. 일이 즐거워지면 일을 잘 해낼 수 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목표에 가까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레오는 생각했어.


“다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 하면 어떨까?”

“그럼 나 하나로도 충분해.”



내 사과를 맛있게 먹는 법


우리 집 네 식구의 사과 먹는 법은 다 다르다. 예쁜 것을 골라 먹든, 잘 손질해서 먹든, 맛있는 것 먼저 먹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자신의 사과를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중요한 것은 사과를 먹는 그 순간엔 사과에 흠뻑 젖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글동글하고 빨간 그 모양에, 새콤달콤한 그 향기에, 아삭아삭한 식감에 빠져 ‘사과’를 맛봐야 한다.


사과 상자가 태어남과 동시에 주어지는 삶이고 사과가 시간이라면, ‘오늘, 가장 맛있어 보이는 사과를 먹으라’는 남편의 제안은 일리가 있다. 그 말은 또한 ‘지금 이 순간, 가장 맛있게 사과를 먹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어제는 존재하지 않았고, 내일이면 사라질, 지금 이 순간만 존재하는 꽃과 같은 존재다.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은 지나면 사라지므로 잼이나 술로 가공해서 오래오래 묵혀서 먹고 싶을 때 꺼내 먹을 수 없다. 내가 고른 사과를 가장 맛있게 먹는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사과 속으로 푹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 시간은 꽃이다. 오늘 핀 꽃은 오늘이 지나면 진다. 그리고 내일은 내일의 꽃이 핀다. 이 순간엔 지나간 과거에 매이지도 오지 않은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히지도 않고, 그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시간을 훔치는 시간도둑 회색인간을 물리친 모모처럼!



                                                                              2015년 3월 1일


                                                         -- 김정은(작가, 변화경영연구소 10기 연구원) --


* 변화경영연구소의 필진들이 쓰고 있는 마음편지를 메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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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훔치는 시간도둑 회색인간을 물리친 모모처럼!


자신의 내면이 원하는 원형 그대로의 삶을 살다간 조르바처럼!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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