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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Mar 22. 2023

천국과 감옥, 그 한 끗 차이

이청준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지난 1월에 써 놓은 독후감인데, 이제야 올리네요. 평소 읽고 싶었던 책 중에 하나인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지음) 리뷰입니다.     



작년 12월 


원고 작업 관계로 바빴던 이후 연초에는 조금 숨 돌리며 쉬는 중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강의 시장 또한 1, 2월은 비수기라 할 수 있어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조금씩 그동안 잘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고 있죠.


저는 보통 2종류의 책을 동시에 읽는 편입니다. 한 권의 책을 읽다가 조금 지루해지면 다른 책을 손에 잡죠. 이렇게 읽기 위해서는 필히 장르가 달라야 합니다. 보통 한 권은 경제나 경영 혹은 자기계발과 같은 정보나 지식 습득을 위한 책이고, 다른 한 권은 대부분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나 에세이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눌 수도 있겠군요. 각각 좌뇌와 우뇌를 자극하는 책으로 말이죠.


소설, 에세이류는 아무래도 책장이 빨리 넘어가는 편입니다. 논리적이며 진지한 생각보다는 감성에 자극하는 글들이 많다 보니 그 느낌만 캐치하면 바로바로 넘어갈 수 있죠. 덕분에 12월 말과 1월 초에 벌써 3권의 책을 읽었네요.


절망의 구(김이환 지음)

레몬(권여선 지음)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지음)


3권 모두 한국소설인데, 그중에서 『절망의 구』와 『레몬』은 각각 2009년, 2019년에 출간된 현대 소설입니다. 음... 두 권 모두 흥미진진하게 재밌게 읽긴 했는데, 뭔가 다소 아쉬움이 남네요. 작품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가슴을 두드리는 (저만의) 감동이 부족했던 것 아닐까 싶네요.





『당신들의 천국』은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제목만큼은 익숙하게 다가오죠? 네, 저도 그래서 고른 책입니다. 한 번 읽어보고 싶었어요. 이 책은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데, 사실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게다가 소위 문둥병이라 하는 한센병의 주 무대인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첫 장을 펼쳤죠. 다 읽고 난 지금, 이 책 덕분에 한센병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게 되고, 소록도란 곳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섬 중앙에 위치한 중앙공원의 조경이 왜 그리 잘되어 있는지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참으로 가슴 아픈 역사가 담겨 있었네요.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1세대 병원장으로 등장하는 주정수 원장이나 조백헌 원장, 그리고 중 후반에 등장하는 이정태 기자까지 모두 실명은 아니지만 실제 인물들로, 이 소설을 끌어가는 중심인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현실적이며, 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들이 더 절절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나무위키에서는 이 책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배하는 자와 이 지배를 받는 자와의 관계를 다룬 장편소설로, 문둥병 환자들의 거주지인 소록도를 배경으로 소록도 병원장으로 취임한 의사와 나환자들 간에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작품. 단순히 질 나쁜 독재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다룬 작품이 아니라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면이 개입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한 상태로 동시에 권력을 독점하는 형태의 권력자는 결국에는 당신들만의 천국을 만들고 만다. 이청준의 대표작이자 한국 현대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명작이다. (나무위키 - 이청준)



이 책의 메인 프레임은 


역시나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소록도의 병원장이란 직위는 이 섬에서만큼은 국가의 원수인 대통령(어쩌면 더 높을 수도...)의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죠. 더군다나 1970년대라면 사람을 죽인다 할지라도 얼마든 은폐가 가능한 그런 시대였다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일반 민간인도 아닌, 사회적으로 가장 천대와 멸시를 받던 최우선 기피 대상이었던 문둥병 환자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을 겁니다. 병원장의 말 한마디에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정도였죠.


단, 문둥병 환자들이라도 정치적으로는 쓸모가 있었습니다. 바로 선거 때였죠. 그들에게도 1장의 투표권이 있었기 때문에 정치가들은 소록도의 원생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물론 딱 선거철에만 그랬죠. 나머지 새털과 같은 수많은 시간들 속에 그들은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병원장들의 성과를 내기 위한 도구로 활용될 뿐이었죠.


병원장들은 소록도를 원생들을 위한 천국으로 만들겠다 강조합니다. 주정수 원장도, 조백헌 원장도 그런 의미에서는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천국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점이었는데, 주정수 원장이 자신을 위한, 자신만의 천국을 목적으로 했다면, 그래서 스스로를 높이기 위한 시설로써 천국을 만들고자 했다면, 이에 반해 조백헌 원장은 진심으로 원생들을 위한 천국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들이 이곳, 소록도에서 멸시와 차별을 받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쓰고 실제 적극적으로도 행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섬의 장로였던 황희백 노인은 그를 향해 ‘신이 보낸 사람’이란 표현까지 하죠.


천국은 하늘나라를 의미합니다. 누구나 걱정과 고민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가슴 아픈 출생의 과거를 묻고 사는 보건과장 이상욱은 천국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소록도의 천국은 천국이 될 수 없다고 말이죠.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아무리 전염력이 약하다 할지라도 정상적인 사람들은 귀, 코, 입이 문드러지고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지는 한센병 환자들을 무서워하죠. 또한 완치되었다 할지라도 흔적이 남기 때문에 환자들은 어디로 가지 못한 채 그저 소록도란 공간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생들에게 있어 소록도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죠. 이런 곳을 천국으로 만든다고? 감옥을 아무리 잘 꾸며 놓는다 할지라도 그곳이 천국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이유로 이상욱은 천국 프로젝트를 반대합니다.


선의로 일을 시작한 조백헌 원장은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오마도를 간척함으로써 원생들에게 논과 밭을 제공하고, 그곳에서 나오는 소출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우려 했던 그의 천국 프로젝트는 수많은 방해와 제지 속에 멈춰 서고 맙니다. 힘을 모았던 원생들 또한 흘렸던 피와 땀의 노력이 허사가 되고 말았죠. 조백헌 원장 또한 다른 곳으로 전출됨으로써 결국 천국 프로젝트는 흐지부지 되고 말죠.


그러나 이야기는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비록 완연한 봄날은 찾아오지 않지만 소록도에 조금씩의 변화가 이어지며 원생들의 삶 또한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적 상징적 사건이 바로 한센병을 앓았던 윤해원과 정상인으로 알려진(하지만 완전한 정상인은 아닌) 서미연의 결혼입니다. 이 둘은 소록도의 새로운 변화를 상징합니다. 한센병 환자들끼리만 결혼할 수 있었던 이곳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맞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천국이라 할 수는 없지만, 비로소 원생들의 자유의지에 의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의 변모의 싹이 비로소 굳건했던 땅을 뚫고 그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더 확실히 알게 되었죠. 문둥병을 앓고 있는 원생들 치고 구구절절한 사연 없는 사람들이 없다고 하지만, 황희백 노인의 이야기는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 5천 원생들의 정신적 지주로 활동한다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정상적인 삶이 가능할까? 황희백 노인의 이야기는 직접 책으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책 뒤쪽에서 김태환 문학평론가는 이 책과 이청준 작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이죠.


이청준은 자본주의적 세계에서 내버려진 자들마저 이 세계 안의 질서 속에 통합시키려는 조백헌의 시도를 회의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또한 그러한 비판을 하는 자기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도 다시 회의한다. 세계의 질서와 그것을 작동하게 하는 권력에 대해 회의하고 또 그 회의를 회의하는 이청준의 태도에서 하나의 위대한 대화적 소설, 조백헌이라는 근대적-시민적 주체와 이상욱이라는 비판적-예술가적 주체 사이의 끝나지 않은 논쟁이 탄생하였다.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강의, 칼럼 기고 및 재무컨설팅 문의 : bang19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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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의 흐름을 읽는 습관(https://cafe.naver.com/moneystreamhabit) -- 경알못 탈출 100일 프로젝트


※ 공지사항입니다~!

1. '좋은 책 읽고 나누기' <에코독서방> 12기를 모집합니다. 2015년부터 약 5년간 운영되며 좋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던 <에코독서방>이 포스트 코로나를 넘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재개됩니다. 이번 12기에서는 세계적 석학 유발 하라리의 '인류 3부작'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6개월간 함께 읽음으로써 삶의 통찰과 함께 인생의 방향성을 찾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https://brunch.co.kr/@bang1999/932


2. 차칸양의 7번째 신간 『여유로운 퇴직을 위한 생애설계』(정도영/차칸양 지음, 청년정신)가 출간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2가지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하나는 퇴직 이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은퇴 이후의 삶입니다. 이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을 생애설계라 부릅니다. 생애설계는 결코 돈 문제 하나가 아닌, 일과 인생의 문제까지 얽힌 복잡한 과정입니다. 또한 나무 하나 만이 아닌, 숲을 보는 넓은 관점이 필요합니다. 생애설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리고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배우고 싶다면 연 200회 이상을 강의 현장에서 뛰고 있는 커리어 컨설턴트(정도영), 재무 컨설턴트(차칸양)가 친절하게 알려드리는 『여유로운 퇴직을 위한 생애설계』를 먼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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