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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Aug 22. 2023

절약의 끝판왕!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리고 지금의 삶이 있도록 만들어준.



1996년 3월 31일과 700만 원,


위의 두 숫자는 제게 있어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요, 앞은 결혼기념일, 뒤는 결혼 당시 제가 가지고 있던 총 재산이었죠. 29살 동갑내기 남녀가 결혼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저는 700만 원, 아내는 혼수자금 2,000만 원이 전부였죠. 혼수를 줄여 1,000만 원을 마련하고, 회사에서 300만 원을 대출받아 총 2,000만 원에 어렵사리 경기도 송탄(지금의 평택)에 허름한 전세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한적한 지방이라 가능한 일이었죠.


만약 서울에서 신혼살림을 차려야 했다면 그야말로 지하 단칸방의 사글세로 시작하거나 아예 결혼할 생각조차 못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저와 결혼을 결심한 아내도 참 대단하네요.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저였는데 말이죠. 그런 아내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가끔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아내의 혼잣말을 우연히 듣기도 했는데, 슬쩍 외면하며 살아왔습니다. 처음부터 물러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니까요, 흠흠..


결혼 후 저는 송탄 외곽에 위치한 공장으로, 아내는 서울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대개 남편보다는 아내의 회사가 가까운 곳에 방을 얻지만, 저희는 어쩔 수 없이 그 반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죠. 제가 회사 통근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오후 5시 반, 모자란 실력이긴 하지만 서둘러 밥과 국 또는 찌개를 차립니다. 당시 매일 하던 고민 중 하나가 ‘저녁으로 뭘 준비하지?’였을 정도였죠.


그리고 7시 반이 되면 아내의 도착시각에 맞추어 집 근처에 위치한 시외터미널(당시는 광역버스란 것이 없었습니다)로 마중 나갑니다. 조금 기다리다 보면 아내를 태운 시외버스가 도착하고, 저는 버스에서 내리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일하느라 많이 힘들었지? 맛있는 김치찌개 만들어 놨어.”라며 한마디 건네곤 했지요. 돌이켜보면 순간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네요. 정말 가난하고 제대로 가진 것조차 없었지만 젊음, 청춘, 사랑, 애틋함, 행복, 소소함 등이 저와 아내의 마음속에 가득 채워져 있었으니까요.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의 시간, 꼭 한번 다시 맛보고 싶은 아스라한 순간들입니다.



시작은 보잘 것 없었으나


그래도 둘이 열심히 일해 모으면 금방 일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10개월 만에 사랑스러운 첫째를 가지게 되며, 아내는 어쩔 수없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다음 해 9월 곧바로 둘째가 태어나며 맞벌이는 완전히 물 건너 가버리고 말았죠. 게다가 둘째가 태어난 1998년은 IMF 외환위기 시절.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과연 이 어려운 시기를 외벌이만으로 넘어설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아니 아내에게는 필살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절약’이었죠. 결혼 전까지 솔직히 아내가 이토록 ‘짠순이’인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같이 살아보니 전국에서 짠순이 선발대회가 열린다면 아무리 못해도 최소 동메달 이상의 성적은 거두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지금은 아이들도 성인이 되어 그 횟수가 상당히 많이 늘어난 편이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저희 가족의 외식횟수는 1년에 딱 5번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네 식구의 생일날 그리고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 바로 외식하는 날이었죠. 예외라면, 연례행사라 할 수 없는 아이들의 졸업식 날이 있었고요.


외식 메뉴를 정함에 있어서도 암묵의 룰이 있었습니다. 보통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인 짜장면, 돈가스 등을 우선으로 하지만, 되도록 자주 접하지 못했던 음식 위주로 메뉴를 선정합니다. 왜냐하면 식구들이 함께 먹어보고, 괜찮다 싶으면 그다음부터는 아내가 솜씨를 발휘해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내는 웬만한 음식도 뚝딱 잘 만들어 냅니다. 식혜는 물론이고 수정과, 강정, 약밥, 부꾸미, 타락죽, 코다리찜, 감자탕, 닭찜, 마파두부... 심지어는 짬뽕과 베트남 쌀국수까지 집에서 만들어 먹었죠. 그러다 보니 굳이 일부러 외식할 필요가 없었고, 그 비용은 상당 부분 세이브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희 집에는 꽤 오랜 기간 동거동락하고 있는 물건들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냉장고인데요, 결혼할 때 구입한 냉장고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 나이로 27살이니 대단하죠? 가끔 심한 소음을 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무난하게(2번 정도 의사(AS 기사)로부터 치료를 받은 적이 있긴 했지만) 자신의 할 일을 잘 해내고 있습니다. 장롱과 서랍장도 굳건하게 사용 중인데, 연륜이 쌓임에 따라 이제는 빈티지 가구의 위용까지 드러내고 있네요.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교체하긴 했지만 신혼 때 마련했던 TV와 세탁기도 15년 이상을 사용했습니다. 아이들 책상과 침대 또한 친척과 주변 지인으로부터 얻어온 것을 15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잘 사용하고 있고요.


작년에 욕실에서 사용하던 작은 플라스틱 바가지가 깨졌습니다. 새 것으로 교체했는데 아내가 한마디 하더군요. ‘그거 우리 결혼했을 때 산 바가지야’라고 말이죠. 헐, 26년을 사용한 거네요.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조심해 쓸 것을.. 아, 그리고 자동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지금은 바꾸긴 했지만, 2020년까지 2000년식 누*라2(2003년에 지인으로부터 중고로 구입)를 탔었습니다. 만 20년을 탔으니 꽤 오래 함께했다 할 수 있겠죠? 사실 엔진 문제만 아니었다면 더 긴 기간을 동거동락할 수 있었을텐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오랜 친구와 헤어지던 날,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요... 하마터면 왈칵 눈물을 쏟을 뻔 했습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통 걸려왔습니다. 제 이름을 확인하고는 본론을 꺼내는데,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자신은 SBS <세상에 이런 일이> 작가이며, 현재 절약을 주제로 한 방송을 기획하고 있다. 우연히 절약에 관한 제 칼럼을 읽어보았고, 특히 아내의 대단한 절약 정신에 감동받았다. 혹시 아내를 방송에 출연하도록 연결시켜 줄 수 있겠는가?’


슬그머니 웃음이 새어나왔습니다. 드디어 방송까지 진출하는 건가? 이 기쁜(?) 소식을 아내에게 알렸습니다. 방송 섭외가 들어왔다고 말이죠. 이야기를 듣는 아내의 표정이 상당히 진지해 보였는데, 제 말이 끝난 후 아내는 딱 한마디만 하더군요.


“미쳤냐?”


이것으로 끝이었습니다. 혹여나 아내가 방송을 타면 저 또한 찬조 출연함으로써 제 얼굴을 세상에 알릴 수도 있지 않을까 은근 기대를 가졌었는데 말이죠.




사실 절약이란 것이 나쁜 쪽으로만 본다면 지지리 궁상을 떠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아내의 절약을 보며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가졌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절약은 우리가 아는 수전노나 구두쇠 이야기처럼 무조건 안쓰고 아끼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아내의 절약 덕분에 저희 가족은 외벌이 임에도 IMF 외환위기는 물론이고, 글로벌 금융위기 더 나아가 코로나 위기까지도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또 그렇게 열심히 아낀 덕에 지금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의 자산까지 모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티끌모아 태산은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티끌도 오랜 기간 모으다보니 중산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나 싶네요.


제가 생각할 때 절약은 국력이고, 위기를 넘길 수 있는 힘입니다. 많은 분들이 코로나로 인한 이 어려운 경기침체기를 절약을 통해 잘 넘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2023년 상반기 토스 공모전에 응모했다 '똑' 떨어진 글입니다.^^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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