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금리, 그 이중압박의 괴로움
코로나 팬더믹이 엔데믹(풍토병)으로 바뀌고 이제 거의 6개월여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코로나만 끝나면 원래대로의 평온한 일상이 돌아오고, 다시 여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작은 희망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은 힘들기만 합니다. 아니네요, 오히려 더 어렵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네요.
지난주 경기도 하남으로 강의를 갔는데 수강생 한분께서 ‘지금이 경제침체 맞나요?’라는 질문을 하시네요.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경기침체, 맞습니다. 다만 방송이나 언론에서는 생각보다 이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 경기침체일 수도 있고, 그냥 경기가 일시적으로 조금 안 좋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코로나로 인한 경기하강이 지금껏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고요.
경기침체, 즉 불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시기는 단순히 한, 두 계층이 어려움을 겪을 때 쓰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될 때 사용되는 것으로, 지금이 바로 경기침체기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물가 때문입니다. 사실 물가는 매년 조금씩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 경향인데,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스레 물가는 오르는 것이라는 상식에 익숙해져 있죠.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겁니다. 그리고 약간의 물가상승은 체감적으로 그렇게 티가 나지 않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고 상당부분 누적이 되어서야 비로소 물가가 제법 올랐구나, 실감을 하게 되죠. 그러나 단기적으로 물가가 폭등하게 되면 체감효과는 바로 나타나게 됩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으로 그야말로 안 오른게 없을 정도이고, 어떤 때는 탄식을 넘어 체념까지 하게 될 정도입니다.
저 같은 경우 식당에 갈 때마다 물가폭등을 실감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벽에 걸린 메뉴판 때문입니다. 메뉴판에는 메뉴뿐 아니라 가격까지 적혀 있는데, 이 가격이 계속해서 오르다보니 대부분의 식당 메뉴판에는 가격의 앞자리만 바꾼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습니다. 물가가 급격히 오르니 메뉴판을 새 것으로 바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겁니다. 어차피 또 교체할 거 그냥 땜빵식으로 쓰자는 거죠. 씁쓸한 현실입니다.
물가가 오르게 되면 보유한 돈의 가치가 떨어지게 됩니다. 1만원주고 사야할 물건이 이제는 1만 5천원을 줘야하니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런 물가상승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돈 혹은 소득이 더 많아져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내 돈이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특히나 물가폭등기에 제일 고통받는 사람들은 연금생활자분들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은 물가상승률이 반영되어 매년 연금이 조금씩 오르긴 하지만, 그럼에도 실질적 물가상승을 반영하진 못합니다. 숫자보다 체감 상승률이 더 높기 때문이죠. 게다가 사적연금의 비중이 높으신 분들은 더 괴롭습니다. 연금저축이나 퇴직연금의 경우 물가상승률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며, 내가 물가상승률 이상의 수익을 내야만 내 돈의 가치를 보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가가 오른다는 것, 특히나 단기간에 많이 오른다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동시에 가난해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떨어진 상황에서 물가가 오르게 되면 서민들이 보유한 알량한 자산가치는 더 하락함을 뜻하기 때문이죠. 얇아진 주머니 사정에 여기저기 구멍까지 뚫리게 되는 겁니다. 게다가 물가는 한번 오르면 거의 떨어지는 않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의 점심 한끼로 가장 인기 많은 김치찌개 가격이 8~9천 원이 되었는데, 내년이 되면 다시 6~7천 원으로 내리게 될까요? 장담컨대 그런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물가는 서민들의 생활에 직격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경제적 삶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요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금리입니다. 금리란 한마디로 ‘돈의 가치’라 할 수 있습니다. 금리가 높으면 (저축 기준으로) 보다 많은 이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돈의 가치’ 또한 높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돈의 가치’가 높으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요?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3.5%입니다. 2021년 7월에 0.5%였던 기준금리는 약 1년 6개월 만인 2023년 1월에 3.5%까지 오른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무려 3%p라는 수치만큼 돈의 가치가 오른 겁니다. 금리는 경제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금리의 변동에 따라 모든 경제상황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금리가 오르게 되면 저축이나 대출금리가 오르겠구나, 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경기가 좋다는 말은 곧 돈이 잘 돈다는 의미와 같은데, 금리가 오르게 되면 돈이 잘 돌지 않게 됩니다. 돈의 가치가 높아지니 사람들은 돈을 쓰기보다는 아끼려 할 것이고, 기업들 또한 투자를 늘리기 보다는 대출부담 때문에 오히려 현금을 쌓아두려 노력하게 됩니다. 금리가 높을 때는 현금부자가 최고이기 때문이죠.
돈이 잘 돌지 않고, 또 사람들이 소비까지 줄이게 되니 기업들은 장사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현금을 많이 보유한 기업들은 이런 시기를 어떻게든 잘 넘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은 구조조정, 나아가 도산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런 기업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 또한 돈을 떼일 수도 있게 되니 위태위태해지는 거고요. 위기의 기업과 은행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들의 사정은 어떻게 될까요? 명예퇴직을 당할 수도 있고, 버티더라도 연봉이 깍이거나 잘해야 동결될 겁니다. 회사가 안 좋은데 당연히 종업원들의 처우가 좋을 수 없는 거죠.
이런 경기침체를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금리를 낮추거나 시중에 돈을 많이 공급(양적완화)해 돈의 가치를 낮춰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강제로 금리를 낮출 경우 돈의 가치는 낮아지겠지만 그로 인해 다시 물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급격한 금리 상승을 통해 간신히 고공행진하던 물가상승률을 떨어뜨려 놓았는데, 금리인하를 할 경우 물가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인 겁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물가와 금리, 2가지만 살펴보았음에도 경기침체는 벗어나기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경기침체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커보입니다. 마치 우산장수 아들과 벽돌공장 아들을 둔 엄마의 심정처럼 비가 와도 문제, 안와도 문제인 겁니다. 이제 개인들도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개인경제를 챙기고 단단하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마땅한 답이 없으니 버텨야 하는 거죠. 이기는 사람이 강자인 것처럼 지금은 어떻게든 버티는 사람이 승자라 할 수 있습니다. 긴 호흡으로 지금의 경기침체를 잘 견뎌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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