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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성식 Jul 20. 2023

01. 라멘집 데뷔하기

후쿠오카 (이민) 다이어리


  이민 초기, 적응하기 어려웠던 음식을 꼽자면 당연 라멘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 같다. 라멘은 국내에서도 불호가 적은 메뉴인 데다, 일본 현지에서 맛있게 드셨던 분도 많을 테니까. 문제는 내가 거주하는 후쿠오카가 돈코츠 라멘의 발상지인 데다가, 시민들의 라멘에 대한 고집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돈코츠는 일종의 사골 국물이다. 오랜 시간 돼지 뼈와 부속을 고아 우려내는데, 우리나라의 국밥과는 달리 가축 본연의 누린내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전국의 장인들이 제각각 조리법을 발전시키며 된장이나 내장, 닭과 생선 기름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염분과 기름기가 포함된 국물을 24시간 끓이다 보니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 오래된 집은 실내를 넘어 거리 곳곳으로까지 악취를 풍긴다. 



  외지인들에겐 문화충격과도 같은 냄새이지만, 현지인들은 라멘 특유의 누린내를 거북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낡고 허름한 노포를 선호하기까지 하는데, 이런 곳은 주로 항구나 시장 같은 외곽지역에 있다.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것치곤 고객도 다양해 정장을 입은 회사원에서부터 화사한 차림의 젊은 여성들, 자녀와 노인을 동반한 가족단위 손님들까지 줄을 서서 기다린다. 에어컨도 없는 좁은 매장에서 어깨를 붙이고 면발을 불어먹는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좀처럼 나는 그들의 틈에 끼어 들어가지 못했다. 비위가 상하는 냄새 탓이기도 했으나, 사실은 나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어색함이 더 컸다. 



  냄새의 강렬함으로 치자면 청국장도 둘째가라면 서럽고, 한 번 맛있게 즐긴 음식의 향취는 오히려 입맛을 돋우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일본 이민 삼 년 차가 되도록 관광용으로 정제된 프랜차이즈 라멘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으로 북적거리는 매장, 한국어로 적힌 메뉴, 나에겐 이 정도가 딱이라고 하자, 아내는 맛없는 라멘이 800엔이나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나의 라멘집 데뷔는 이민 사 년차에 성사됐다. 주말에 처가에 들렀다가 장인과 함께 점심을 먹은 날이었다. 주택가 끝에 위치한 낡은 건물이었는데,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켜켜이 앉은 고린내가 코를 뚫고 들어왔다. 점장은 과묵하기로 유명한 후쿠오카 남자치고는 꽤나 시끄러운 편이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외국인은 면발을 다 먹지도 않고 남긴다며, 라멘의 맛을 즐길 줄은 아냐고 미심쩍어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점장은 돈코츠 중에서도 국물이 진하기로 유명한 쿠루메 출신이라고 한다. 육수에 라드를 끓여 텁텁하고 짙은 맛을 연출하는 레시피로, 다른 지방의 라멘 마니아들마저 완식(完食)을 버거워 하는 걸로 유명한 가게였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호기롭게 “카타멘(딱딱한 면)으로 넣어주세요.”라고 주문했다. 이민자로서의 짬을 어필하려는 시도였지만, 오히려 점장의 잔소리가 돌아왔다. 



  “카타멘이라는 건 설익은 면이야. 정성 없이 대충 익혀서 딱딱해진 거라고. 소화가 어려워 배가 아파지는데다, 육수와도 어울리지 않고 따로 놀게 되지. 우리는 완전히 익힌 부드러운 면만 파니까 그리 먹도록 해.” 



  고객의 취향에 면박을 주다니? 다른 라멘집들은 직원이 먼저 면의 종류를 설명해 주거나, 육수와의 궁합이 좋은 면발을 추천해 줬으며, 키오스크에서 원하는 맛의 조합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군말 없이 주는 대로 먹으라는 응대는 처음 겪었다. 장인어른의 지인이라 웃어넘기긴 했지만, 두 번 다신 찾아올 생각이 안 날 것 같았다. 



  라멘의 외관은 수수한 편이었다. 특별한 양념 없이 거품만 올라간 하얀 육수에, 고명이라곤 차슈 몇 장과 김, 식초에 절인 생강이 전부였다. 계란이나 숙주를 추가할 수도 없었고, 맛을 조절하는 타래나 라유도 비치돼 있지 않았다. 냄새는 돼지 국물의 수준을 넘어 치즈와 비계를 끓여 만든 유지방의 풍미로 변화돼 있었다. 좋게 보면 장인 정신으로, 나쁘게 보면 고집으로 팔팔 끓인 국이었다. 



  잠깐 숨을 참고 면발을 집었다. 심심한 외견과는 달리 입안에 감칠맛이 가득 차는 중독적인 맛이었다. 라드가 배인 국물이 육수의 짠맛을 중화해 줬고, 완전히 익은 면발의 감촉은 굳이 씹어 삼킬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맛 자체의 특별함보다는 국물과 면의 일체감이 입맛을 돋웠다.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나를 보며, 장인은 흐뭇해했다. 



  “방 군도 이제 후쿠오카 사람이 됐군.” 



  그러면서 사연을 하나 들려주셨다. 라멘 마니아를 위한 라디오 제보란다. 



  제보자인 Y군은 연인인 K코와 헤어지기로 했다. 이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둘은 새롭게 생긴 라멘집에 들러 허기를 채웠는데, 안타깝게도 국물도 면도 엉망인 데다 직원들의 태도도 불친절한 최악의 가게였다. 아쉬웠던 Y군은 다음 주에도 K코 양과 약속을 잡고, 이번엔 양식 코스와 진심을 담은 편지, 작은 선물까지 준비했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 



  “이 사연의 놀라운 점을 알겠나?” 



  이별의 이유를 까먹은 점? 허탈한 결말 때문인가? 역시 프랑스 음식이 최고라는 걸까? 



  고개를 갸웃대는 내게 장인이 놀리듯이 말했다. 



  “헤어진다는 남녀가 맛없는 라멘을 먹으며 싸움 한 번 안 했잖아. 그 정도면 보통 사랑이 아닌 거야.” 



  그러곤 2인분의 라멘 값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셨다. 



  “자네들도 그런 부부라서 다행이야. 우리 딸과 결혼해 줘서 고맙네.”



  별 말씀을…이라며 입을 떼기도 전에 장인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셨다. 후쿠오카 남자의 박력 넘치는 수줍음이었다. 



  어릴 적 요리 관련 만화책에서 읽었던 바로, 물에 끓여 졸이는 조리법은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단다. 음식물의 질량이 늘어나는 데다 다양한 풍미를 조합해 감칠맛을 만들어내기에도 좋기 때문이다. 한 지역의 식재료가 뒤섞이는 만큼 향토색을 대표하는 음식도 많다고 한다. 라멘이나 국밥, 쌀국수 같은 음식이 한 나라의 정체성을 담는 것도 오랜 시간 걸쭉한 국물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슷할 것 같다. 



  언젠가는 나도 이 도시의 재료가 되는 걸까? 이대로 60세, 80세까지 살아간다면 나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의식마저도 사라질 것 같았지만, 그것이 일본으로 귀화하고 싶거나 한국이라는 국적을 버리고 싶은 건 아니었고, 그렇다고 재일교포 같은 민족의 범주에 나 자신을 의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도시에게 나는, 나에게 이 도시는 무엇일까? 



  내가 이 도시에 사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돈이 아까운 라멘 체인점에 동행해 준 아내와, 나를 사위와 매부, 삼촌 등의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준 처가 식구들, 이런저런 이유로 친해진 후쿠오카의 이웃 사람들. 그들에게 나의 국적과 정체성은 부차적인 것일 테다. 어쩌면 개인의 본질은 사적인 관계 속에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품이라면 출신이 없는 무국적자라도 괜찮을 테니까. 



  집에 있는 아내를 위해 새 라멘을 포장했다. 집에서 끓이면 마당 앞 골목길에까지 냄새가 풍기겠지만, 뭐 괜찮을 거다. 이웃들도 내일 점심은 라멘으로 해야겠다며 잠자리에 들 테니까. 혹시 누가 물어본다면 오늘 갔던 라멘집을 추천해 줘야겠다. 서로를 잇다 보면 조금 조금씩 이 도시에 녹아들어 가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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