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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성식 Nov 05. 2023

03. 레빗 키스

후쿠오카 (이민) 다이어리



  처음부터 토끼를 키울 생각은 아니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전에 살던 곳은 반려동물이 허용되는 맨션이 아니었다. 집을 옮길 때만을 벼르고 있던 나는 몇 년 전 이사를 하면서 2층으로 된 다세대 주택을 골랐다. 내부 구조와 입지, 임대 비용까지 적당했던 것은 물론,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도 가능한 건물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받은 입주 안내서에 이상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동물을 키우는 것은 괜찮습니다만 이웃의 생활을 우선해 주세요>


  한국이었다면 읽어보지도 않을 항목이었으나, 일본에선 보험에 가입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라도 일단은 두드려보는 것이 상책이다. 주택관리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네, 일단은 키우셔도 되는데요. 관련된 문제로 신고가 들어가면 지금 거주하시는 집에서 퇴출되실 수도 있거든요. 악취나 소음, 뭐 그런 것들이요.” 


  생각지도 못한 험악한 응대였다. 나는 약간 긴장해서 물었다.   


  “키우는 게 금지도 아니고, 조금 애매하지 않나요?” 


  직원은 계약서 내용을 확인해달라고 했다. 반려동물과는 별개의 항목에 ‘경찰이 출동하는 분쟁 유발 시 계약 취소가 가능하다’라는 조항이 붙어 있었다. 그는 특별한 의미는 없는 공통 양식이라면서도 ‘기본적으로’ ‘일단은’ 조심해달라고 했다. 책임을 피하는 직원의 태도가 답답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동물을 키우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었고, 민폐로 인한 계약 취소도 상식적으로는 당연한 조치였다. 나는 구시렁대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 PET OK라고 쓰면 안 되는 거 아냐?”


  아내가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소음이라는 게 정확한 기준이 있나?” 


  찾아보니 일본 환경청에서 정해둔 기준이 있었다. 낮에는 55데시벨 이하, 밤에는 45데시벨 이하가 적정선이라는데, 고양이 소리는 보통 25에서 70데시벨 사이였고 기네스북 상의 최고 기록은 90데시벨을 훌쩍 넘겼다. 아슬아슬한 편차였다. 


  “그렇다면 거북이는 어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조용한 동물은 거북이 이외에도 많다. 친칠라와 페럿, 기니피그 같은 소동물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배변 훈련이 불가능하다거나 체취가 너무 심하다는 등의 이유로 후보에서 제외됐다. 햄스터는 이전에도 키워본 적 있었지만 수명이 고작 2년 밖에 안 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너무 빠른 이별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토끼였다. 조용하고 수명도 길며 냄새가 나지도 않는 동물…이라지만, 반려동물로서는 꽤나 생소한 편이었다. 먹이나 습성, 사육법 같은 사전 지식은커녕 입양 후에 토끼가 보일 반응에 대해서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친해지면 애교를 부리려나? 우리들의 말을 알아듣기는 하려나? 아니, 당초에 사람을 따르는 동물이기는 하나? 


  우선은 정보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관련 유튜브와 블로그를 구독하고, 토끼 사육법에 대한 입문서를 주문했다. 검색해 보니 반려 토끼를 키우는 인구는 (정확한 통계는 없었지만) 개와 고양이 다음으로 많다는데, 그럼에도 사육법에 대한 정보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나마 일관된 내용은 토끼가 반려동물로서 까다롭다는 점뿐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챙겨야 할 것들이 많은 동물이었다. 


  우선은 집안 전체에 카펫을 깔아줘야 했다. 발바닥에 젤리가 달린 다른 반려동물들과 달리, 토끼의 발엔 충격을 줄이거나 미끄러짐을 막아주는 조직이 없다. 앞뒤 발바닥 모두 체모로만 덮여 있어 강마루나 타일 바닥은 사고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워낙 전광석화 같은 동물이라 관절 질환에 걸릴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했다. 안전한 환경을 갖추려면 카펫이나 러그, 적어도 타일 매트 정도는 깔아줘야 했다.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거실을 덮는 데만 5만 엔, 한화로는 약 50만 원 정도의 비용이었다. 엄청난 거금까지는 아니었으나, 충동적으로 질러버리기엔 부담 되는 액수였다. 


  ‘키울까? 키우지 말까? 일단 깔아볼까? 토끼부터 구해볼까?’ 


  우유부단하게 영상만 시청하기를 몇 달째, 나는 어느새 라이브 영상마다 댓글을 다는 랜선 집사가 되었다. 세상에는 귀여운 토끼가 차고 넘치도록 많았지만 그들을 키우는 유튜버들은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야박한 평가를 내렸다. 가구와 문지방을 갉아놓거나, 끝없이 날리는 털 때문에 비염과 알레르기가 유발되기도 하고, 토끼 전문 병원조차 부족하다며 개나 고양이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간다고 했다. 워낙 현실적인 조언이라 지금처럼 눈 호강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체념하고 있던 때쯤, 갑작스럽게 결정의 순간이 찾아왔다. 구독하던 블로그 주인의 토끼가 아기 토끼 열 마리를 출산한 것이다. 입양처를 구하는 게시글엔 이제 막 기어다니기 시작한 새끼들의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나와 아내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이건 너무 사랑스럽잖아?”  


  이후의 전개는 일사천리였다. 우리는 그동안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했던 사육장과 화장실, 건초와 식기 같은 용품을 한꺼번에 주문했고, 입양 전에 깔아둬야 했던 바닥재는 가구점에서 트럭까지 빌려 수송해왔다. 바닥을 새로 까는 일은 녹록하지 않았다. 장식장과 선반, 테이블과 소파 등의 가구를 옮겨야 했는데, 그동안 수집했던 수백 종의 포켓몬스터 피겨가 난관이었다. 최대한 조심조심 옮겨봤으나 결국엔 문지방과 부딪히며 와장창 무너져 버렸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짜증이 나기는커녕 토끼를 데려온다는 실감에 걱정되기만 했다. 


  “토끼는 우리랑 사는 게 행복하려나?” 


  우리 집은 예전부터 개를 키웠지만, 지방의 기숙학교를 다녔던 나는 집안 어른들이 키웠던 개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고, 그들이 행복한 견생을 보냈는지 자신할 수도 없었다. 어른들의 개를 다루는 태도가 불만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충분한 사전 준비도 없이 개를 데려왔고, 그들의 품종과 혈통을 자신의 자랑거리로 삼았다. 그런 반면에 사료의 종류나 사회화를 위한 훈련의 방식, 산책의 에티켓을 가르치는 과정에는 무관심했다. 충동적으로 데려온 강아지들을 감당하지 못해 파양했던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런데도 개들은 화를 내지 않았고, 낯선 이에게 넘겨지는 순간에도 자신을 포기한 주인을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그들의 무조건적인 애정과 헌신, 숭고하면서도 애처로운 시선에 죄책감을 느꼈다. “한 번쯤 저항이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읊조리기도 했다.  



  우리는 블로거의 집에서 토끼를 받아왔다. 민들레 씨앗 같은 털을 가진 장모 품종이었는데, 초식동물인데다 털색도 베이지라 베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줌이 묻은 발바닥은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홉 마리나 되는 형제자매들과의 화장실 쟁탈전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란다.  케이지에 집어넣자 뒷다리를 쭉 편 채로 배를 깔고 누워버렸다. 


  “애 하나도 쫄지 않는데?” 


  아내가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실제로 베지는 대범한 토끼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알아서 철망을 열고 나오더니 현관과 침실, 주망과 드레스 룸 곳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좁은 틈과 구석 공간까지 들락거리다가 나와 아내의 무릎 위로 뛰어올라오기까지 했다. 친지들이 집에 찾아올 때면 방문 근처까지 나와 기웃거릴 정도였다. 경계심이 많고 외부 환경에 민감하다는 설명과는 고래와 비둘기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고 인간에게 친근한 것은 아니었다. 좋게 말하면 독립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까칠한, 어떻게 보면 다혈질이기도 한 성격이었는데, 발목 근처에 붙어 치근대다가도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주먹을 날리기 일쑤였다. 토끼가 때려봤자 얼마나 아프겠냐며 가소로워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토끼도 엄연히 땅을 파는 동물이다. 발톱에 긁힌 상처가 남은 것은 물론 몇 번은 앞니에 물려 피가 나기도 했다. 내 손엔 아직도 ⊓와 ⊔모양의 흉터가 남아 있다. 두 겹으로 나는 토끼의 치아 구조 그대로였다. 


  고민하던 나는 블로그 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토끼의 기분을 모르겠어요. 자꾸만 저를 때리기만 하네요.>


  구질구질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토끼의 감정이 거의 5분 단위로 달라지는 것 같고, 얼굴이 무표정해서 어떤 기분인지도 모르겠고, 섣불리 불렀다가 얻어맞기만 하고… 이러다 토끼에게 미움을 받을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라는 등의 징징거림이었다.  


  며칠 뒤에 블로거가 사진을 보내줬다. 얼기설기 엮인 흉터가 굳은살처럼 박힌 손이었다. 


  <힘들 땐 인스타그램에서 토끼 영상을 보세요. 토끼들은 본래 길들이기 어려운 동물이지만, 가끔씩은 축복받은 집사들도 보이더라고요. 그런 영상을 보면 희망이 생기거든요.> 


  인플루언서들의 토끼는 오히려 강아지 같았다. 이름을 부르면 달려오기도 하고, 다리 틈에 머리를 묻고 애교를 떨기도 했으며, 얌전하게 품에 안겨 잠을 자기도 했다. 나와 아내는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어째서 베지는 저렇게 해주지 않는 걸까, 우리는 맥없이 유추해봤다. 


  마트에서 사는 건초가 맛이 없나? 우리한테서 싫은 냄새가 나나? 암컷이라 호르몬 변화에 민감해서 그런가? 혹시나 우리를 얕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하게 성격 탓인 걸까? 


  혹시 몰라 병원을 찾아갔지만, “건강하네요.”라는 심상한 진단을 받았을 뿐이었다. 수의사는 침울해하는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베지가 선생님을 핥아준 적 있나요?” 


  그런 적은 없다고 했다. 수의사는 레빗 키스를 기다려보라며, 토끼에게는 최고 수준의 애정 표현이라고 했다. 


  “토끼를 개처럼 생각하시면 안 돼요. 애들은 친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집사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베지의 반응도 달라질 거예요.” 


  그것만큼 무서운 조언도 없었다. 만약 베지가 우리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는데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라면 어쩌나? 우리야 몇 대 얻어맞으면 끝이지만, 베지는 나에게 자신의 일생을 강탈당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화내지도 못하고 꼬리만 흔들던 개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도 집안 어른들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키울 형편이 안 되잖아. 저분들이 우리보다 행복하게 해 줄 거야.” 


  가슴 언저리가 섬뜩해졌다. 베지를 위해서라는 나의 말도 사실은 이기심을 감추려는 포장이 아니었을까. 어깨를 찍어 누르는 죄책감이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의사는 자연스럽게 베지의 귀를 매만졌다. 


  “지금처럼만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토끼가 건강하다는 것은 지금 사는 환경에 만족한다는 의미거든요. 워낙 예민한 동물이니까요.”


  결국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오랜만의 외출에 긴장했었는지, 베지는 귀가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오줌을 누고 나왔다. 몸단장하는 베지의 발바닥은 새로 자란 흰 털로 덮여 말끔해져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해줄 것도 없었다. 더러워지기 전에 화장실을 치워주거나, 건초와 사료가 모자라지 않도록 관리해 주고, 겁먹지 않도록 조용한 환경을 마련해 주는 정도. 그밖에 동물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게 해주는 정도가 전부였고, 베지도 우리들에게 그 이상을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토끼들에겐 허영심이라는 것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일 년쯤이 지나자, 베지가 이전에 없던 응석을 부리기 시작했다. 고양이나 개처럼 애교를 피우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의 발등에 자신의 머리를 올려두거나, 쓰다듬어 달라며 이마 언저리를 밀어붙이거나, 턱을 비벼 냄새를 묻히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게 뭐야, 싶을 정도의 애정표현이겠지만, 나와 아내에겐 그것만으로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베지 안에서 우리들의 의미가 변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베지의 키스를 받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도 새벽까지 무언가를 쓰는 중이었는데, 베지가 나의 발치께로 와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꾸욱 꾸욱, 목뒤로 딸꾹질을 삼키는 듯한 울음소리였다. 베지는 좀처럼 의사 표현을 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나는 그것이 토끼가 친구를 부르는 신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거야?”


  발끝을 세워 베지를 쓰다듬었다. 한참을 뒹굴뒹굴 대던 토끼가 나의 발을 붙잡고 핥아주기 시작했다. 촉촉하고 말랑말랑하면서도 산뜻한 촉감의 혓바닥이었다. 나는 감동에 젖어 데스크 밑을 내려다보았다. 베지를 데려온 지 이 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나는 여전히 토끼의 생각을 알지 못한다. 베지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에 화내고 무엇에 즐거워하는지, 나와 아내가 마련한 70제곱미터의 세상에 아쉬운 점은 없는지. 사실은 서른 마리쯤 되는 남자친구들과 밀회를 즐기고 싶은 건 아닌지… 질문해 봤자 토끼는 언제나 무표정으로만 일관한다. 그래서 나는 헛된 희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베지가 나를 의존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생명체로 사랑해 주길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나 기만일까? 


  꾸욱 꾸욱 


  내가 모르는 행복에 빠진 베지에게 물어본다.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는 거니?”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나도 토끼를 향한 질문은 그만두기로 한다. 사랑을 증명하고 증명받길 원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집착도 없을 것이었다. 나와 베지는 각자 쓰다듬고 핥아주는 것밖에 못하는 관계이지만 그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독립된 세계의 벽을 허물어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지속하기로 한다. 궁금하지만 확인하지는 않기로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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