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여행가방을 읽다가
오르한 파묵의 '아버지의 여행 가방'을 읽다 울컥했습니다.
아버지의 고독을 어린 나이에 읽을 수 있었다니...
'아버지는 때로 서재 앞에 있던 긴 의자에 누워 손에 들고 있던 책이나 잡지를 내려놓으시고는, 긴 사색과 공상에 빠지곤 하셨습니다. 그럴 때면 농담, 장난, 말다툼으로 일관했던 가정생활 속 아버지의 얼굴은 사라지고 평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이 드러나곤 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평온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 걱정을 하곤 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저는 이 내적 혼란이 작가를 만드는 기본적인 자극들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날의 어느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미루나무에 바람이 불면 그 잎사귀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지요. 마루에 앉아 그 소리를 듣다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엄마가 없는 나는 아마도 외로울 것이고 이제 혼자라는 막연한 생각이 열 살 그즈음에 들었으니까요. 지금도 미루나무를 보면 어느 곳에서든 그날의 어렴풋한 풍경이 어른댑니다. 나는 그때 성큼 성숙하지 않았을까요, 비록 외로웠을지라도.
어느 어린 소년의 독백이 생각납니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 어느 날 아들은 엄마와 긴 산책을 나섰습니다. 엄마가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한없이 걷고 온 날 아들은 그제야 고통이 이런 것이 아닐까... 알았다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오르한 파묵과 밀란 쿤데라의 사색에서 나는 나를 읽습니다.
집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설만 들입다 읽다 '아, 지금 좋다... '
슈베르트를 치다가 안되어도 '아, 지금 좋아...'
지금의 이 시간이 오래오래 내 곁에 지금처럼 머물기를, 더 이상 바랄 게 없구나 싶은 순간을 사랑합니다.
책 속에 푹 빠져 자신을 잃을 때, 음악회에서 곡이 너무 좋아 가슴을 쓸었던 그 순간의 기억들, 손자가 말을 막 배워 마구 단어들을 쏟을 때... 진짜 살아있는 순간이지요.
나는 다시 책으로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