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아저씨의 패션 이야기 1 : 쿼터스낵스
나는 모자를 굉장히 좋아한다. 미취학 아동 시절엔 두상이 못났다는 이유로 모자 착용이 강제되었는데, 그때 익숙해진 탓인지 지금까지도 쭉 모자를 좋아한다.
중학교 땐 용돈을 모아 뉴에라 볼캡을 사서 썼다. 고삐리 땐 당시 한국에서는 찾기도 힘들던 스투시와 슈프림의 모자를 구해 썼다. 20대에 서울로 올라와 (부모님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뒤로부터는 본격적으로 모자를 사 재끼기 시작했는데, 볼캡, 캠프캡, 트러커 캡, 버킷햇, 세일러햇, 비니와 페도라에 이르기까지 소재, 형태, 색상, 브랜드, 연식 모두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소비를 즐겼다.
30대가 된 지금은 직장인이 되어 모자 쓸 일이 줄었다. 거기에 더해 필요한 모자들은 이미 구비가 되어있으니 자연히 모자를 구입하는 빈도도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에 드는 모자를 만나면 구입을 망설이지 않는데, 최근 3년간 가장 많이 구입한 모자 브랜드가 바로 "QUARTERSNACKS"다.
뉴욕을 비롯한 미 동부 지역의 스케이트보드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채널인 “QUARTERSNACKS”는 2005년에 시작된 스케이트보드 크루이자, 스케이트보드신의 소식을 전하는 커뮤니티다.
유망한 스케이터보더들이 쿼터스낵스 영상과 기사의 형태로 채널에 소개되곤 하는데, 스케이트보딩과 그들의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챙겨볼만한 정보들이 올라온다. QUARTERSNACKS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는 브랜드는 이 채널에서 만들어진 브랜디드 굿즈라고 생각하면 된다.
QUARTERSNACKS라는 이름은 “bodega”의 스낵코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이름이다. bodega란 본디 스페인어로 "창고"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지만,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의 입을 거치며 “편의점"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게 된다. bodega에서 판매하는 “quarter snack"이라고 하면, 문구점에서 파는 감자칩 정도를 말한다.
25센트짜리 스낵이 브랜드 이름이라는 것이 이상하지만, 스케이트보딩이라는 서브컬처가 가진 이미지를 떠올려본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스케이트보딩은 틴에이져의 전유물이다. 동네에서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이들을 떠올려봐도 그렇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옆구리에 보드를 끼고 돌아다니는 등장인물들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스케이트보드“와 “젊음"은 역시 떼놓을 수 없다.
쿼터스낵스의 작명엔 이러한 이미지가 투영되었다. (쿼터스낵스의 창립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스케이트보딩을 즐기기 위해산 메트로 카드와 젊은 몸뚱이, quarter-snack이면 충분하다. 과자 한 봉지와 스케이트보드면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은 청춘이 담긴 작명인 것이다.
이러한 쿼터스낵스는 서브컬처 공룡들과의 협업을 통해 스트릿 신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반스와 나이키SB, 칼하트 등 쟁쟁한 브랜드와의 콜라보를 매 시즌마다 진행하는데, 해당 제품들은 언제 봐도 군침이 돈다.
특히 저 반스는 매물이 나오면 언젠가 꼭 갖고 싶다…
제품 출시와 브랜딩을 이어가면서도 커뮤니티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쿼터스낵스의 또 다른 매력이다. 브랜드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QSTOP10이라는 이름의 정기 콘텐츠를 공개한다. 한 주간 여러 매체를 통해 게시된 스케이트보딩 영상 중 자체적으로 BEST를 선정해 쪽글과 함께 시리즈로 엮어놓은 콘텐츠인데, 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상엔 보더들의 멋진 묘기와 코스튬, 이국적인 로케이션의 열기까지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여기에 더해 게시물마다 영상의 주인공이 태그 되어 있어 계정을 타고 들어갈 수도 있다. 콘텐츠를 파고들다 보면 쟁쟁한 보더들의 문화와 일상을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것인데, 스케이트보드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문화의 재미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흥미롭다. 이렇듯 쿼터스낵스는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스케이트보딩이라는 문화를 재생산해내고 있다.
이러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는 뉴욕에서 태어나 로컬 스케이드보드 씬에 크게 관심을 두었던 창립자 SATCHEK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지역의 문화에 애정이 깊은 창작 집단은 자신들만의 개성을 바탕으로 문화 생산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가 바로 그렇다.
북뉴욕 출신의 KONSTANTIN SATCHEK은 10대 시절부터 맨해튼의 공원과 광장에서 스케이트보딩을 하던 스케이트보더였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다수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행위가 통제되었고, 지역의 스케이트보더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SATCHEK은 tompskins square park로 스케이터보더들을 불러 모았다. 뉴욕과 뉴저지를 근거지로 활동하던 스케이터보더들은 그곳에 모여들어 보딩을 즐겼고, QUARTERSNACKS 크루는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그 이후로 20년이 지난 지금, tompskin square park 현대 스케이트보딩 문화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QUARTERSNACKS 채널은 동부 스케이트보드 신의 가장 큰 연결고리가 되었다. 형태와 방법은 다르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문화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뜯어보면, 쿼터스낵스처럼 어른 아이 같은 무드가 주요한 테마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들 브랜드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십 대 시절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돈도 없고,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았지만, 그땐 함께할 친구들과 놀거리만 있으면 매일이 행복했다. 젊음을 테마로 하는 브랜드는 사소한 것에도 행복했던 그때로 나를 돌려놓는다.
더불어 이러한 브랜드는 나로 하여금 열정을 갖게 한다. 태고부터 지금까지, 젊음의 연대를 통해 태어나는 문화는 언제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우리가 사랑하고 즐기는 대부분의 문화는 젊은 세대로부터 왔다.
업계 종사자가 된 지금, 내가 가진 지위와 역할로 누구보다 빠르게 그러한 문화를 포착하고 싶다. 일종의 “문화 도선사”가 되고 싶은 것인데, 이들 브랜드를 즐기는 것은 여기에 열정을 더해준다. 그렇게 계속해서 나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머리가 새하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젊음과 문화와 사랑의 가치를 아는 열려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지 싶다.
한 때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종종 했던 말이 있다. 자신이 하는 소비와 이를 위해 지불하는 돈이 멋진 문화 생산자들의 행보에 응원이 될 수 있다면 끊임없이 소비할 거라고.
같은 마음이다. 비록 모자 쓸 수 있는 날이 일 년에 며칠밖에 없더라도, 멋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나의 소비를 통해 자신들의 가치를 자각할 수 있다면 나는 끊임없이 내가 좋아하고 응원하는 것들을 사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