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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집은 미술관 Jul 20. 2024

세베데의 아들을 부르심

중세 명화를 찾아 떠나는 그림 여행

유튜브 <내 집은 미술관>에서 영상으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한눈에 중세 명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단과 하단의 내용을 보면 뭔가 다릅니다. 하단에는 예수의 축복이 있는 반면에 상단에는 지극히 중세적인 분위기에 죽은 나뭇가지가 하늘로 뻗어 있어 으스스한 분위기입니다. 쉬울 것 같지만 의문이 보이는 이런 중세 명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세계에 흩어진 명화를 찾아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는 새로운 유튜브 명화소개 채널. 내 집은 미술관. 지금 시작합니다.   

이 작품을 보면 여행의 즐거움이 떠오릅니다.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하늘과 땅과 물의 영역을 지나기 때문입니다. 온 나라가 유네스코에 가입된 중세를 품고 있는 이탈리아의 물의 도시 베네치아 미술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객은 미술관으로 이동하는 동안 베네치아의 물빛에 반사되는 영상과 색의 민감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덕분에 베네치아 학파의 특색인  색의 세계를 몸소 체험합니다. 


화가

화가를 간단히 소개하며 그림 여행 시작합니다. 이 작품을 완성한 “마르코 바사이티”는 주로 베니스에서 작업한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로 중세 유명 화가인 조반니 벨리니와 시마 다 코네글리아노와 동시대의 화가입니다.  그의 유작을 살펴보면 자신의 얼굴을 포함해 초상화가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과 같은 종교적인 주제에 관한 그림도 있답니다.


화가를 소개할 때 가장 눈여겨보실 부분이 화풍입니다. 바사이티의 화풍은 당시 활동했던 많은 위대한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는데요. 특별히 조반니 벨리니의 영감을 받아 자신의 배경에 넓은 풍경을 도입했고 특유의 하늘색 또한 유사한 흔적이 발견됩니다. 하늘 부분을 유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미술관(Gallerie dell'Accademi)

이번엔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을 보겠습니다. 19세기 이전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명화의 산실입니다. 미술관의 특이성은 물의 도시답게 바로 앞에 베네치아의 푸른 물결들이 춤을 추고 있어 배가 닿고 내릴 수 있는 보트 정류장이 있다는 점입니다. 방문하는 자체가 관광이며 여행인 미술관입니다. 


구도

그럼, 작품 분석을 위해 구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상하를 나누는 구도입니다. 작품 중앙에 있는 성을 기준으로 상단과 하단이 뚜렷이 다른 지역으로 나눠집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람입니다. 상단에는 인적이 없고 하단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다음으로는 대각선 구도입니다. 이 작품에서 대각선이 중요한 것은 두 사선이 만나는 곳에 베드로의 축복하는 손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 작품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데요. 그 이유는 이 축복의 손에 대조되는 죽음의 손이 이 작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에서 이 두 손에 대해 언급해 드립니다.


다음으로는 예수 주위에 있는 인물에 적용되는 부분적인 구도입니다. 수직과 수평 구도입니다. 그냥 사람만 보면 잘 보이지 않죠? 이 수평과 수직에는 작품의 제목을 상징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세배데의 아들을 부르심”이죠? 여기서 부르심이란 복음을 전해 제자를 삼는 선교를 의미합니다.

수평은 내 이웃을 향한 선교를 의미합니다.  

수직은 다음 세대를 향한 선교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입니다. 맨 앞에 다음 세대를 이어갈 미래의 상징인 아이가 있고 사람을 낚는 의미가 담긴 낚시를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

이제 작품 속으로 들어가 인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의 정체성을 알리는 하늘의 푸른 청색과 십자가 상징의 적색 의상을 입고 있습니다. 좀은 어둔 색상의 그림 속에서 예수 의상이 밝고 환합니다.  


지금 정 중앙에서 오른손을 들어 세 손가락으로 자신의 제자 됨을 축복하십니다.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되는 시기라 제자들을 부르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12제자들입니다. 곁의 제자들과 비교했을 때 밝은 의상과 얼굴을 지녔죠?  바다 사람인 제자들의 검게 그을린 피부와 대조됩니다. 


예수님 몸을 살펴보면 발에 특징을 담았습니다. 곁의 두 제자들의 발과 조금 다르죠? 몸에 부드러움을 넣기 위한 동작이기도 하지만 왼쪽 발은 이제 막 부르심을 받은 제자를 향한 마음과 관객을 향한 마음의 발걸음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먼저 부름 받은 제자

이번에는 곁에 있는 제자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미 예수의 제자가 된 두 사람과 이제 막 부르심을 받아 제자 된 인물들입니다. 조금 나이 든 듯한 왼쪽의 인물이 베드로 같아 보입니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해 있는 이 베드로는 이미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 기록에 따르면 예수 오른쪽에 있는 제자가 안드레가 됩니다. 그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림의 배경 되는 기록입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하는 시몬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태복음 4:16-20)

예수 앞에서 막 제자로 부름 받는 두 명이 보이죠? 앞에서 몸을 숙이고 있는 인물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이며 바로 뒤에 있는 젊은이가 요한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는지 궁금하죠? 이 역시 기록에 따른 것입니다. 그림을 보면 배들과 그물이 있고 아버지도 있죠? 기록에 나와있는 대로 그렸기에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당시 주변 환경과 인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림과 기록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아들 야고보그의 형제 요한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태복음 4:21-22)


제자들의 손

주요 인물들에 대해 알아봤고요. 이제부터는 인물들에 담긴 특이한 상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상징은 제자들의 손입니다. 


베드로의 손

먼저 맏형인 베드로의 왼손을 볼까요? 그의 왼손을 보면 예수의 축복에 맞춰 함께 축복하는 형상입니다. 그러나 그의 두 손에는 다른 상징도 들어있다고 해석됩니다. 왼손과 오른손의 서로 다른 표현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오른손을 보면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얼굴은 관객을 향하고 있습니다. 조금 이상하죠? 왜 관객을 쳐다보며 손가락이 자기 자신을 가리킬까요? 


이렇게 해석해 봅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에 선교 사역을 12 제자들에게 맡기고 승천하십니다. 바로 이 성경 내용을 담아 표현한 부분이 베드로의 양손이라고 해석합니다. 


베드로의 왼손을 보십시오. 베드로의 손이 야고보 머리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즉 예수의 승천 이후에는 제자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짐을 알리는 것이라고 해석됩니다. 관객들에게 나처럼 복음을 전해 제자 삼으라고 알리는 표현인 듯합니다. 


안드레의 손

이번에는 예수 오른편에 있는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입니다. 

그의 행동 역시 매우 특이합니다. 오른손은 흰 천을 감고서 반쯤 들고 있고 왼손에는 오른쪽 팔뚝에 감긴 흰 천을 당기는 중입니다. 뜬금없이 흰 천을 강하게 당기고 있는 이 표현은 어떤 의미일까요? 관객들이 이런 묘사를 만나게 되면 배경 되는 기록에 대한 지식이 없는 분에게는 그림 감상의 최대 난관이 됩니다.


팔을 걷어 올린 흰색의 소매를 볼까요? 형 베드로를 보면 양쪽 소매가 똑같은데, 동생 안드레의 양 쪽 소매는 다릅니다. 팔에 감긴 흰 천이 분명합니다. 그의 얼굴을 보면 새로 제자 되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왜 새 제자로 삼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이 끈을 보여줄까요? 이 끈의 해석은 계속 영입되는 제자들이 갖춰야 할 중요한 일이 있기에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이 역시 구절에 따른 회화적 묘사입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에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1-3)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서로 필요한 요소로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에베소서라는 책의 4장에 제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곳에 ‘지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제자들이지만 함께 사역을 하다가 보면 원죄로 인해 서로 미워하고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 결과는 온전한 제자화 사역에 큰 장애물이 되므로 주님께서 한 지체, 한 몸이 될 것을 끈으로 말씀해 주신 구절입니다. 제자를 만드는 사역에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 이므로 표현한 것입니다. 팔에 두르고 있는 흰색의 끈이 이해되시죠?


지금 부름 받는 제자

어부 야고보가 예수의 부르심에 제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한쪽 무릎을 꿇고 가슴에 손을 올렸습니다. 굉장히 정중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 뒤에 동생 요한이 형의 뒤를 따르고 있는데요. 이 요한이란 인물이 세상의 종말을 기록한 요한 계시록의 저자입니다. 12제자 중에 오직 이 요한만이 끝까지 순교당하지 않고 밧모섬에 유배되어 성경 66권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이 요한의 몸을 보면 베드로와 유사한 손동작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손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데 왼손은 뒤에 있는 배 안의 아버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묘사했는지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먼저 기록을 다시 한번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아들 야고보그의 형제 요한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태복음 4:21-22)


두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있었는데 예수가 부르자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떠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들 요한의 아버지를 향한 손가락은 예수에게 자신을 제자로 불렀던 것처럼 아버지도 제자 삼아 구원받게 하려는 마음으로 해석됩니다. 가족 안에 존재하는 수직 선교입니다. 이에 반응해 아버지 역시 제자로 나서겠다는 의지로 예수를 향해 손가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몸동작에도 적극적인 모습이 느껴지죠?


연결

세베대 가족에는 연결이라는 주제가 담겨있습니다. 예수의 축복과 함께 시작된 형 야고보의 부르심은 요한과 몸이 겹치는 부분이 있고 아버지 역시 아들과 겹치는 부분이 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겹쳐지는 부분이 보이죠? 아버지에게도 구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자녀의 마음입니다.


의문의 소년

하단에 의문의 소년이 보이죠? 전경의 어두운 색채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누굴까요? 

이 소년은 미래의 제자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이 소년 역시 지금 제자 되는 야고보와 연결이 되는 부분이 있으며, 기독교 회화에서 사람을 낚는 물고기와 연관이 있는 낚시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낚싯대가 아버지 옷깃과 접해 있기도 합니다. 소년의 오른손 바로 옆에는 화가의 서명 같은 흰색의 문자가 보입니다. 


 같은 열매들

지금 제자들이 맨 발로 서 있는 곳은 모래사장입니다. 화가는 이곳을 참 아름답게 그렸습니다. 작은 돌들과 조개들이 보석같이 모래에 박혀 있습니다. 소제목에 별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죠? 그럼 이 그림에서 별들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바로 모래입니다.


헤아릴 수 없는 하늘의 별들과 바닷가의 모래가 수많은 아브라함의 후손, 즉 하나님의 자녀로 기록된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히브리스 11:12)


예수의 공생애 사역으로 인해 구원받을 숫자가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을 것이라는 기록에 따른 해석입니다. 그림 속의 수많은 모래는 복음 사역이 대를 이어져 열매 맺는 상징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림은 한 장이지만 읽을 수 있게 해석을 하면 이렇게 이야기가 풍성해집니다. 중세 명화가 가진 내용의 풍성함과 여유롭게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게 하는 문화입니다.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이 세대에 꼭 필요한 해석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중경의 인물

제자들 뒤로 중경의 인물들이 보입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하건 말건 생업에 열중만 하고 있습니다. 당시 일상에 몰두하는 동네 사람들입니다. 화가는 이들 인물에 의상이나 모자들을 통해 당시 문화나 상업 무역의 교류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머리에 중동 지역의 터번을 쓴 오른쪽 인물에서 그런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혹은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화가 자신의 얼굴을 넣을 수도 있고 의뢰자의 얼굴을 넣어 줄 수 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중세 그림에서 종종 발견됩니다. 


중경의 상징

전경을 벗어나 그림의 중간 부분을 볼까요? 기록에 따른 표현이니 바다 같은 이곳은 갈릴리 호수가 됩니다. 이곳에 여러 가지 인물들이 등장하고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합니다. 


여러 척의 배들이 보이고 물가에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정경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지형상의 이유로 급작스러운 폭풍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침몰된 배도 물아래에 그려져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죠? 


이곳에 두 가지 특이한 광경이 있습니다. 그냥 지나쳐도 되지만 시간이 있으신 분은 해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는 오른쪽에 3명이 타고 있는 배입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으세요? 가운데 어부는 웃통을 벗으려 하고 있습니다. 화가는 왜 이런 동작을 그렸을까요? 이 배를 보면 물고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깊게 해석하면 너무 확대 해석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밤을 새워도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베드로를 연상할 수도 있고, 예수 없는 세상에서는 열매가 없음을 상기시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중세 명화라는 특별함 때문입니다. 화가가 화폭 속에 그린 어떤 곳에서도 비밀스러운 상징들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전체 화폭에서 보시면 예수의 축복의 손과 평행선 안에 들어있습니다. 

또 하나는 기암괴석 하단에 위치한 곳입니다.

왼쪽에 양 떼들에게 꼴을 먹이는 목자가 있습니다. 작품 속의 예수와 제자들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입니다. 

길 건너편을 보면 다 죽어가는 나무 한 그루가 있죠? 중간에 닦여 있는 길을 두고 마주하고 있습니다. 작품 전체에서 보면 이 길은 상단과 하단을 구분하는 선이 됩니다. 양은 예수가 있는 하단에 속하며 죽은 나무는 예수가 없는 상단에 속합니다. 죽은 나무가 세상 속 바로 곁에 들어와 있는 위치가 무척 눈길을 끕니다. 


 기암괴석?

이제 눈을 상단으로 돌려 볼까요? 괴기스러운 나무줄기가 보입니다. 암석 아래로 쳐진 물기 빠진 잎사귀는 더욱더 메말라 가는 것 같은데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습니다.


생명이 제대로 자랐고 사람이 제대로 꾸미고 살았다면 정말 멋진 뷰 포인트였을 것 같습니다. 저런 위치에서 커피를 마신다면 더없이 멋진 곳이 될 것 같지 않으세요.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맛집 카페가 될 것 같습니다. 상단 전체를 둘러볼까요?


오른쪽 상단의 능선에서 출발해 중간의 큰 성을 지나 왼쪽 끝까지 연결하면 이곳 상단의 특징이 발견됩니다. 중앙에 아직 살아있는 초록 나무가 보이긴 하지만 한 마디로 생명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성은 허물어져 있습니다.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에는 어떨지 모르나 지금으로서는 이 상단 부분이 중세라는 단어에 걸맞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화가가 성으로 만들어 하단과 분리시킨 이 상단은 어떤 곳이며 어떤 상징을 지닌 땅일까요? 


상단의 해석

상단의 상징적 의미를 간략히 줄이면, 아래 예수가 있는 하단과 대조시키기 위해 등장한 지역 같습니다. 예수의 복음이 있고 제자들의 전도가 살아 있어 생명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땅과 제자 삼지 않아 영적으로 죽은 땅의 대조입니다. 


생명의 죽음의 .

이 작품에는 특이한 두 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제자 삼는 축도의 손이 있고,  허무한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사단의 손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제자 삼는 손은 제자 되는 사람의 머리 위에 있고 죽음을 상징하는 사단의 나무 가지 손은 황폐한 성 위에 있습니다. 화가의 상상력은 끝이 없으며 막힘이 없는 중세 명화입니다. 


죠바니 벨리니의 영향

화가를 소개해 드릴 때 죠바니 벨리니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죠? 특히 하늘 부분의 묘사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저 핑크색은 죠바니 벨리니의 특허 같은 표현법으로 알려진 부분입니다. 벨리니가 개발해 즐겨 사용한 담홍색 빛으로 현재 칵테일에서 그의 이름을 붙여 판매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암석과 나무도 그렇고 하늘에 피어 있는 구름의 묘사도 수채화 화법인데 이 역시 닮은 화풍입니다. 


마치며

이제 그림을 떠나야 할 시간인데요.  생명이 없는 나무 가지가 세상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특이한 손으로 묘사된 중세 명화를 감상해 봤습니다.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며 유럽 어느 곳에서나 만나는 명화에 대해 좀 더 쉽게 접근해 감상하실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는 다음 그림 여행을 준비해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주님의 평안이 함께 머무시기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 흩어진 명화를 찾아 자세히 내용을 살펴보는 유튜브 명화 소개 채널. 내 집은 미술관 제공이었습니다.    

문을 열면 


곧 중세로 향하는

 

유럽에서


인사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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