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토레토의 명화를 찾아 떠나는 베네치아 그림여행
반갑습니다. 그림 여행에 오신 모든 분을 환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름철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내리 쬐는 햇살이 너무 좋아 컴퓨터를 들고나와 덱에 자리했습니다. 작년에는 너무 뜨거워 잠시 앉았다가 들어가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올해는 너무 뜨거운 기온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중세 전후 시기의 명화를 보면 어둠에 쌓인 채 완성된 작품이 있죠? 대표적인 화가가 오늘 소개하는 틴토레토일 것입니다. 그의 숨결과 작품이 남겨진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그림 여행을 떠나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시간을 만드시고 가장 편한 자세로 커피와 함께 떠나는 즐거운 문화 여행 시간이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오직 베니치아에서만 살았던 화가 틴토레토의 작품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입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강한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라 기억하는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예수를 너무 심하게 왜곡시켜 영웅시 한 작품이 아닌가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도 살펴볼 겸 어둠 속에서 약 70여명의 인물들이 움직이는 작품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먼저 화가 틴토레토를 소개합니다. 관객을 직시하는 눈의 시선이 매섭죠? 실제로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며 추진력이 강합니다.
틴토레토라는 이름은 “어린 염색공”이란 뜻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염색공 장인이었기 때문인데 본명처럼 사용되었는데요. 중세 전후 시기의 유럽 화가들에게는 이런 결과로 이름이 결정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가 색을 만들었던 과정을 보고 자란점을 감안하면 어릴적부터 미술의 기본을 체득한 셈입니다. 그기에 더해 선천적으로 그림 그리기에 뛰어난 재질을 갖추었다고 기록합니다.
베네치아 태생으로, 티치아노에게서 그림을 시작한 그는 미켈란젤로의 힘있는 드로잉(소묘)과 티치아노의 감각적이며 다채로운 채색을 자신의 작품에 접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의 스튜디오 벽면에는 그의 이러한 야망이 적혀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자신만의 인공적인 빛과 그림자, 과장된 단축법을 써서 극적이고도 순간적인 효과를 화면에 도입했습니다. 특히 그림 주제에 해당하는 극적인 드라마를 도입하기 위해 등장 인물들의 몸짓과 포즈를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폭발에 가까운 시도로 평가합니다. 오늘 감상하시는 이 작품에서도 그의 폭발적인 힘의 표현을 만나볼 수 있으니 즐겁게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초기의 대표작 <노예를 구출하는 성 마르코>에서는(아래 작품)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법을 보여 주었습니다. 1550년대 후반부터는 공간 효과와 극적 효과가 한층 더 뚜렷이 전개되어 갔습니다. 1584년 <성 마르코의 기적>을 발표하여 베네치아 파로서 그의 지위가 굳어졌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마지막을 장식한 화가로 이후 마니에리스모인 엘 그레코 등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비록 마무리가 완전하지 못한 비판은 있었지만 성경적 사건을 자신만의 화풍인 어둠 속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묘사해 남긴 그의 작품은 명작의 반열에 올라있고 현재 베네치아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건립 이후 거의 변형되지 않은 건물에 60여점이 넘는 그림이 원래 위치에 보존되어 있는 매우 특별한 곳입니다. 대표작으로는 <천국>, <최후의 만찬>, 등이 있는데, 특히 <천국>은 등장 인물 700명이 넘는 대벽화입니다. 오늘 보시는 작품 역시 한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큰 규모의 작품입니다.
무척 어둡죠? 처음 보시는 분은 이 처형 시간이 해가 떨어진 저녁에 시행된 줄로 생각할 것 같습니다. 먼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진행된 시간을 기록한 내용을 살펴볼까요?
재판 과정과 함께 처형에 관해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법정 기록에 해당합니다.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누가복음 23:44)
기록에 의하면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12시 정오쯤에 지진이 발생했고 하늘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에 예수님이 돌아가셨음을 기록합니다.
그림 속 예수 뒤의 하늘에 천둥 번개치는 광선 줄기가 보이죠? 좌우의 나무가 강한 바람에 휘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화가는 십자가 처형을 어두움 속에 진행된 낮 시간의 급격한 기상 변화와 함께 그린 것입니다.
중세 전후 시기의 그림 답게 중앙의 예수님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과 대조를 이룹니다. 인물과 동물과 의미가 담긴 상징들이 양쪽에 포진해 있습니다.
등장한 인물들이 중앙의 예수를 둘러싸고 있죠? 예수가 박힌 십자가는 이들 사이에서 하늘로 우뚝 솟아 있습니다. 화폭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입니다.
이런 예수에게 시선의 흐름을 유도하기 위해 바닥의 땅 양면의 선이 중앙의 꼭지점을 향해 있습니다. 중앙으로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전시된 방에 들어서면 문 바로 맞은편 벽면 전체에 제작된 엄청난 크기의 이 작품을 만납니다. 규격의 거대함과 색의 무거움을 전달받는 것과 동시에 인물들 모두의 몸 동작이 만들어 내는 예수 처형의 드라마를 시각적으로 전해 받습니다.
이 작품이 뿜어내는 힘인데요. 화가 틴토레토가 습득했던 미켈란젤로의 드로잉과 티치아노의 감각적인 채색의 효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결과입니다.
이런 십자가 주위는 마치 시골 장터 같습니다. 인물들의 다양한 포즈 속에 심어 놓은 힘이 움직이며 그 결과는 주제를 부각시키는 한 편의 드라마로 연출됩니다. 그 극적 효과의 정점에는 나무에 달린 예수입니다. 회화 예술을 영상의 드라마로 감상해 보시는 경험을 이 그림에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림의 중심 인물인 예수입니다. 강한 예수입니다. 미켈란젤로의 드로잉을 습득해선지 해부학에 근거한 육체가 잘 드러납니다.
이 십자가 예수의 모습은 중세 전후의 회화에서 보기 드문 매우 창의적인 표현입니다. 전시관 문을 들어서며 이 작품을 대하는 순간 화폭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수의 권능의 힘이 관객에게 쏟아붓습니다. 왜 그렇게 보일까요?
십자가에 달려있지만 광채로 십자가 나무를 가렸기에 마치 예수가 권능으로 십자가에 못박힌 상황을 이겨내고서 하늘에 떠있는 모습을 창출했습니다. 십자가 나무를 보십시오. 후광에서 뻗어 나온 듯한 무지개색 광채가 양팔의 나무를 충분히 가렸죠? 화가의 창의력인데요. 정말 기막힌 표현입니다.
십자가 아래를 보면 다양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처형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예수의 입에 넣으려고 강한 신 포도주를 나무 봉 끝에 묻히는 작업을 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마태복음 27:48)
십자가 아래를 볼까요? 이 곳에는 예수님과 가까운 친인척과 제자들이 있는 그룹입니다. 전체 화폭에서 보면 화폭을 3등분하는 구도 속에 십자가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이 공간에는 예수, 친인척, 제자들그리고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등의 핵심 인물들이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에 늘 등장하는 두 강도. 화가는 어떻게 이들을 활용해 작품을 완성했을까요? 이들을 좌우에 위치시켜 여러 인물들이 십자가 작업을 하도록 구성했습니다. 여러 인물들에게 다양한 포즈를 넣을 수 있고 움직임의 에너지를 화폭에 불어넣는 효과가 있습니다.
왼쪽 강도는 선한 강도라 얼굴을 보이고 있고 오른쪽 강도는 악한 강도라 등을 보입니다. 중세 전후 시기의 상징에 뒤모습은 미래를 알리거나 악의 상징입니다. 그들의 벗은 몸에 엄청난 근육을 넣었습니다. 곳곳에 힘이 넘칩니다.
두 강도 바로 뒤에는 말이 한 필씩 있고 타고 있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들 역시 몸의 포즈를 달리하고 있는데요. 말역시 동작이 다르죠? 한쪽은 고개를 숙이고 있고 다른 한쪽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특징인 움직임을 통한 에너지를 만드는 장치입니다.
십자가 하단 좌우에 두세명의 그룹이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왼쪽편에는 선한 강도를 십자가에 올려 놓은 후에 파놓은 땅에 세우기 위해 십자가를 묶은 끈을 잡아당기고 있는 중입니다. 힘쓰는 모습이 보이죠? 격렬한 몸 동작으로 이들 역시 에너지가 뿜어 나옵니다. 인부들 아래에는 여러가지 연장들이 놓여 있는데요. 16세기 연장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엔 우측 인물입니다. 이곳 역시 십자가 나무를 세우기 위해 땅을 파고 있습니다. 놓인 연장들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구석에 몸을 숨긴 것 같은 두 인부들은 무얼 하는 걸까요?
손을 보면 하얀 구슬 같은 것이 보이죠?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하는 하늘 청색과 붉은 의상이 두 인물들 아래 위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차지하기 위해 제비 뽑는 중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마태복음 27:35)
좌우에는 십자가 처형을 보려는 군중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멀리 있는 뒤편을 보면 마을에서 낙타를 몰며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 장소가 중동임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동물입니다. 십자가 처형을 주제로 하는 명화 중에 낙타가 등장하는 것은 더문 사례입니다.
시선을 앞쪽으로 옮기면 일반인과 부유층 사람들이 자리해 처형장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어린아이까지 함께 있는 가족도 보입니다. 맨 앞쪽에는 화려한 장식을 한 백마와 갑옷을 입은 한 사내를 발견합니다. 왼손으로 예수를 가르키며 무엇인가 지시를 내리는 중입니다. 과연 이 남성은 누구일까요?
이 남성을 짐작할 수 있는 표현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이 남성은 철갑을 입었으며 뒤편의 인물이 <S.P.Q.R>이란 휘장을 들고 있습니다. S.P.Q.R이란 이탈리아 로마에 가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약자입니다.
로마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S.P.Q.R은 라틴어 'Senatus Populusque Romanus'의 이니셜입니다. 해석하면 "원로원과 로마 국민"을 뜻하며, 고대 로마 공화국의 정부를 지칭합니다. 오늘날에도 로마 시의 공식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남성을 추정할 수 있는 또 한가지 요소는 말 발굽 바로 앞에 놓인 화살과 화살통 입니다. 외양이 너무 고급스러워 일반 병사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남성은 예수를 보며 무언가 언급하는 손짓을 하고 있으며 갑옷을 입고 있고 로마를 상징하는 깃발이 있는 것을 보면 로마군의 장군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하나님으로 고백했던 로마 장교 백부장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가복음 15:39)
그가 탄 백마가 오른쪽 말발굽으로 앞의 무기를 가르키는 듯한 묘사역시 회심한 사람이 살인용 무기를 내려놓은 듯한 표현입니다. 처형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언급한 백부장으로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엔 시선을 오른쪽편 군중들에게로 옮겨볼까요? 이곳도 왼편과 같은 구성입니다. 멀리서는 나귀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보이고 일반인들과 사회적 위치가 높은 말을 탄 인물들이 보입니다. 이 곳에는 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딱딱한 흙과 돌멩이에 부딪치는 말발굽 소리가 화폭밖으로 울려 나옵니다.
왼손을 옆구리에 대고 십자가를 쳐다보는 인물들이 있죠? 기록에 따른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일 수 있습니다. 갑자기 어둠이 몰려오며 하늘이 깨지는 듯한 울림이 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강아지 한 마리는 말 발굽 아래에 숨어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댕댕이는 어디서나 귀엽습니다.
그림 여행을 마무리하며 이 작품에 숨겨진 상징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관객들에게 가장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상징들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시선이란 주제로 살펴보겠습니다. 작품을 대충 보게 되면 이 중요한 시선이 보이지 않습니다. 두개의 시선입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화가의 메시지일 수 있는데도 말이죠.
선한 강도와 예수의 시선입니다. 멀리서 보면 예수가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이지만 자세히 보면 고개를 숙여 선한 강도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구원 받은 선한 강도에게는 또 하나의 구성을 마련했습니다. 예수와 같은 포즈의 평행선이죠? 천국에서 함께 있을 것이란 암시입니다. 중세 전후 시기의 명화에서는 제자들이나 어머니 마리아가 이같은 포즈를 취합니다.
이 작품에는 구원에 관한 상징이 두개 있는데요. 그 중의 하나가 이 시선입니다. 구원을 이루는 시선입니다.
다음으로 발견되는 상징은 사다리입니다. 높은 십자가가 있으니 당연히 사다리가 필요하겠죠? 그래서 당연히 있는 사다리라고 생각하면 이 사다리가 지닌 화가의 메시지를 발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징이 있을까요?
그림 전체에서 보면 왼편 바닥에 십자가가 놓여있죠? 보기엔 평범합니다. 그렇죠? 이 사다리는 창의적인 고급 도상에 해당합니다. 그냥 사다리가 아닙니다. 구원의 길이라는 회화적 표현입니다.
일반인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림 속으로 들어와 십자가로 올라가 구원받을 것을 권유하는 형상입니다.
사다리가 선한 강도편에 있는 놓여있는 이유입니다. 구원의 길이라는 회화적 표현으로서 오른쪽 악한 강도에는 이 사다리가 없는 이유입니다. 화가는 친절하게도 십자가로 빠르게 올라갈 수 있도록 맨 앞쪽에 사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림 여행을 마치기 전에 의문 한 가지를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왜 화가는 이렇게 강한 예수를 그리는 것일까요? 먼저 두 종류 작품을 보시기 바랍니다. 느낌이 전혀 다르죠?
먼저는 케톨릭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케톨릭에서 권능을 지닌 강한 예수를 추구하는 회화를 지향한 결과입니다. 다음으로는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외형적으로는 약한 분이지만 신적 권능을 지니신 분이므로 강한 예수로 표현해낸 것입니다.
그럼 이 작품은 어떻게 해석하면 될까요? 관객으로서는 위의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 감상하시면 되겠는데요. 이 작품에서 강한 예수로 묘사된 것은 구원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신 예수님의 외형 보다는 보이지 않는 신성 부분인 구원자 또는 권능자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원을 약속하시며 강도에게 향한 시선이 그렇고 관객들에게 자신에게 와서 구원을 받으라고 등장시킨 사다리가 그렇게 생각하게 합니다.
이 작품 하단 왼쪽 구석에 라틴어 비문이 있습니다.
MD-LXV. TEMPORE MAGNIFICA DOMINI HIROVY MI ROTAE, ET COLLEGARVM BACOBVS TINCTOREC TVS FACEBAT.
한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565년, 위대한 주군 히로비 미 로타에의 시대에, 동료들과 함께 염색공 야곱이 이것을 만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틴토레토가 아니라 야곱이라고 했죠? 비문속 Bacobus가 야곱(Jacobus)입니다. 우리가 아는 틴토레토는 예명이며 본명은 자코포 로부스티(Jacopo Robusti)입니다.
참고로 이 작품이 있는 Scuola Grande di San Rocco는 1478년에 설립된 베네치아의 형제회로, 전염병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형제회는 예술과 종교적 사명을 결합하여, 틴토레토와 같은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했습니다. 틴토레토는 이곳의 회원으로서, 형제회의 명예와 신앙을 표현하는 수많은 작품들을 제작했습니다.
작품에 당시 형제회의 신앙과 그들의 헌신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다음 세대들에게 알립니다.
예수님의 시선 속에는 회심한 "선한 강도"가 있고 그 끝에 형제회에 관한 비문이 있습니다. 구성이 치밀하죠?
이 그림은 근육질의 힘쎈 주님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서 완전히 승리하신 미래의 주님을 표현한 것이며, 그 분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찿게하는 작품입니다. 강도가 주님께 간구한 구절을 소개해 드리며 주님의 시선을 다시 확인해 봅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누가복음 23:42)
저는 다음 그림 여행을 준비해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 때까지 주님의 평안에 머무시길 기도합니다. 세상에 흩어진 명화를 찾아 세밀히 그 내용을 살펴보는 새로운 명화 소개 코너 <내 집은 미술관> 제공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