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마르코 수도원 No, 1 방"
*산 마르코 수도원에는 43개의 수도사 독방에 프라 안젤리코의 벽화가 원작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살아있는 미술관"입니다. 미술사 최초로 각 방에 그려진 작품을 시리즈로 찾아봅니다. 많이 응원해 주시고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채널 <명화 속 상징>에서 영상으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첫번째 방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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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리 메 탕게레 (Noli Me Tangere)
600여년 전, 한 수도원 원장이 수도사들을 위해 각 방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살아있는 미술관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 각 방에 원본 그대로 보존된 명화들을 소개합니다. 첫 순서인 1번 방 작품입니다.
"나를 만지지 말라"라는 원어 “놀리메 탕게레”(Noli Me Tangere)는 영어로 'touch me not', 또는 Don't hold on to me”로 번역됩니다. 이 성경 구절은 호세 리잘(José Rizal)의 소설 제목으로 사용되었고, 미국 엘라바마 깃발에도 쓰일 만큼 세상의 문학과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구절이 주는 종교적 해석과 의미는 매우 큽니다. 슬픔에 잠겨 빈 무덤을 찾은 제자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 마리아는 너무나 반가워 주님을 붙잡으려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오늘 그림 제목인 “놀리 메 탕게레” (Noli Me Tangere)입니다.
‘“놀리 메 탕게레” 문구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는데요. 번역에 따라 “나를 만지지 말라” “나를 붙잡지 말라”고 적고 있어 이 상황이 만지기만 했는지, 붙잡았는지, 만지려고 행동만 했는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날 이후의 기록을 살펴보면 8일 후에 도마에게 나타나셨을 때는 손가락을 넣어보라고 하셔서 만져도 됨을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인 마태복음 28:9절에는 붙잡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막 28:9)
이렇게 해석이 까다로운 구절을 아래와 같이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붙잡지 말라' 또는 '만지지 말라'는 번역의 차이가 있지만, 이 말은 '만지면 안 돼'라는 벌칙이나 거절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어서 "아직 아버지께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나는 이제 너희와 예전처럼 지낼 육체가 아니라, 곧 하늘로 가야 할 새로운 존재가 되었으니, 나를 붙잡고 여기에 머물게 하려 하지 말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막달라 마리아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과 이전처럼 함께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제 부활하신 주님으로서 곧 승천하여 구속 사역을 완성하셔야 했던 시기였기에 이런 결정을 하셨다고 봅니다.
이 상징의 의미를 뒷받침하는 것이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는 다음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우리가 영원히 있을 처소를 예비하셔야 하며, 그래야 보혜사 성령님이 오실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땅에 대한 집착을 끊고 더 큰 계획을 깨닫게 하시려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화가는 이 만남을 수직과 수평의 구도로 시각화 했는데요. 마리아는 땅에 몸을 낮춘 수평적인 자세로 인간적인 애착을 보이고, 예수님은 똑바로 선 수직적인 자세로 하늘에 근간을 둔 소명과 부활의 권위를 보여줍니다. 이 땅과 하늘, 두 차원의 시각적 대비야말로 이 그림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런 해석을 반영하듯, 대부분의 그림에서 화가들은 마리아의 손과 예수님의 몸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성경 지식뿐 아니라, 신앙적 고백이 바탕이 되어야 그림의 영적 메시지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번엔 이 벽화에서 발견되는 미술적 요소를 살펴볼까요?
예수님의 겉옷에서 흘러내리는 주름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에서 보는 상아빛 물결로 묘사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에 번져갔던 그리스 예술의 재발견, 즉 고전주의 양식의 영향을 볼 수 있죠.
흥미롭게도, 부활하신 장소는 중동 지역이 아니라 이태리 토스카나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싱싱한 꽃들이 있는 평범한 일반인 가정의 정원입니다. 이는 그림이 그려진
곳을 암시하는 동시에, 생명이신 예수님이 계신 곳이 곧 생명이 충만한 곳임을 뜻합니다.
무덤은 돌을 굴려 막는 방식이 아니라, 직사각형의 문으로 그려졌고 아예 다시 닫을 수 없도록 문짝도 없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사망의 문을 완전히 승리로 뚫고 나오셨다는 화가의 강력한 성경적 표현이 됩니다.
빛은 오른쪽 위에서 쏟아져 들어오며, 마리아의 가슴과 예수님의 몸에 음영을 만듭니다.
그런데 신기한 부분이 발견됩니다. 예수님의 몸을 자세히 보시겠습니까? 예수님의 몸과 발은 편안한 신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관람객 쪽을 향해 정면으로 그려졌는데요. 이는 “스티그마”(Stigma)로 불리는 십자가 상흔을 분명히 보여주려는 메시지 전달 우선의 이전 미술 기법이 사용된 흔적입니다. 초기 중세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을 혼합해 제작한 결과입니다.
울타리 뒤에 울창한 푸른 숲이 보이죠? 울타리가 쳐진 것은 “닫힌 정원”으로서 인간 스스로 들어갈 수 없는 낙원 즉 천국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나에게 집착하지 말고 저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라고 암시하십니다. 중앙의 야자수 나무는 순교의 상징이며,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순교와 연결됨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초과학 시대에 사는 우리는 그림의 가격과 투자 그리고 미래에 보상받을 타당성으로 작품을 평가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중세 사람들은 마음과 신앙으로 작품의 메시지를 보았습니다. 우리도 그림이 전하는 영적 메세지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이번 그림여행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저는 다음 그림여행을 준비해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주님이 주시는 평안에 머무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 흩어진 명화를 찾아 세밀히 그 내용을 분석해 소개하는 브런치 그림여행. <명화 속 상징>제공이었습니다.
"발길 돌리면
곧
중세로 향하는 길목
유럽에서
인사 전합니다."
*공지사항: 카카오톡 채팅방을 오픈했습니다. 오셔서 그림을 분석한(40페이지)PDF도 선물로 받아가시고 함게 그림 감상을 할 수 있도록 교제를 부탁합니다. 이름은 거창하게 '연구소'라고 지었지만, 사실은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과 가볍게 수다 떨고 싶어 만든 공간입니다. 여러 친구들과 함께 편하게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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