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와 맞짱 뜨려던 인간 이야기. 중세 명화 속 탐험. 새로운 해석
필자가 시도하는 글쓰기는 명화에 관한 설명이다. 이미 이전에 읽어봤던 그런 내용이 아니라 배경을 근거로 새로운 도상을 발견하고(미술사 최초) 최대한 정밀하게 또 세밀하게 작품 내용을 분석해 설명하는 작업이다.한 작품 만이라도 온전하게 화폭 전체를 이해 시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 무척 의아했다. 이 작품의 중요성이 커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다른 작품들과 함께 너무나 평범하게 전시된 것에 서운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얼마나 유명한데 이렇게 평범하게 전시해 놓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는 작품 속 바벨탑 부분에 생각보다 노란색 계열의 안료가 많이 사용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미술책과 여러 매체 들에서 본 것과 실제로 본 작품 간에 그 차이가 컸던 그림으로 기억한다. 또 하나는 작게 묘사된 탐 안에 있는 사람들을 확대해 볼 수 없었기에 외관만 보고 온 느낌이 든 작품이다. 만약 확대경을 소지하지 않은 채 방문하게 되면 외관만 보고 오게 되는 작품이다.
수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나는 것은 이 작품을 본다는 기쁨도 컸지만 대리석으로 꾸며진 계단을 오를 때 느꼈던 그 설렘이 여전히 느껴지는 미술관이다. 작품과 함께 중세 미술관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le Vieux, 네덜란드, 1525~1569)은 16세기 플랑드르 지방을 대표하는 북유럽 최고의 화가이자 농민화가다. 그의 출생과 어린 시절에 관한 기록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다만 농민 자녀인 것으로 추측한다. 그의 화풍은 북유럽 특유의 세밀하고 섬세한 표현과 웅장하고 깊이 있는 구도 및 구성과 인간미 물씬 풍기는 인물 묘사로 농민들의 생활상을 잘 표현했던 작가이다. 그래서 그를 “농민 브뤼겔”이라고 부른다.
그의 화폭을 좀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든 것은 남쪽으로의 여행이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유학을 했는데 이 때 르네상스의 명작들을 대했고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북유럽에서 볼 수 없는 거대한 건축물과 건축 공학의 힘을 볼 수 있었다고 기록한다.
특별한 것은 거대한 알프스를 지나며 자연과 풍경의 영감을 얻은 것으로 평가한다. 그의 여러 작품에서 이 때 경험한 산세 높은 지형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음을 본다. 그의 종교화를 살펴보면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다른 장르들과 함께 절묘하게 혼합해 발표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이 바벨탑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옛 사회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브뤼겔이 살던 시대의 사회 상황에 비춰보면, 바벨탑 그림은 서양 문화사에서 유럽의 한 도시가 경제적 사회적 변화 속에서 느끼는 거대한 위협을 나타내는 회화적 상징물이다.
필자가 느낀 그의 가장 큰 특징은 작품에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화가 자신의 가장 큰 메세지를 담은 사람이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소수 인원에 집중하는 점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의 작품을 대하게 되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사람을 끈질기게 관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도 특별한 장비를 구입했다. 확대경이다.
작품을 분석해 보니 이 작품 만이 지닌 특이성이 발견된다. 매우 기이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이미 종말을 맞이한 오래된 탑이지만 여전히 보수와 건설이 진행 중이며 그 속에서 정착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화가가 농민 화가였기에 가능한 묘사라고 본다.
또 하나는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작품이다. 역사화, 종교화, 풍경화와 민속화 등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다.
마지막으로는 구약에 등장하는 바벨탑의 영향으로 성경 속 구약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듯하지만 화가가 전하는 중심 메시지는 신약에 기반하고 있다. 이 신약으로 해석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독자들이 처음 설명 듣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중세 기독교 그림은 두 가지가 들어 있다. 의뢰인과 시대 배경이 깔려 있다. 시대 배경을 논할 때 언급되는 것은 종교와 경제와 인구 분포가 주를 이룬다.
브뤼겔이 살았던 시기는 종교 격동기였고 작품 의뢰인은 부유한 금융인이었다. 그림 제작을 의뢰받고 사회에 던진 메세지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작품이다.
말 그대로 종교 전쟁과 후유증으로 물들어 있던 혼돈의 시대였다. 남부 이탈리아는 르네상스로 인본주의가 발생해 그 실체의 영향이 사회 모든 분야로 최대한 전해지고 있었고 독일에서는 종교 개혁으로 신구교가 대립전을 치르던 중이었다. 특히 저지대 북유럽에 속한 현재의 네델란드와 벨지움에서는 캐톨릭과 개신교로 갈라져 싸우던 때였다.
빽빽한 도시로 그려진 좌우 그림 속의 당시 저 엔터워프란 도시는 무역업의 성황 속에서도 이 같은 종교적 충돌이 발생했는데 여기에 더해, 세계에서 몰려든 외국인들간의 문화 및 언어 소통 문제와 세금 문제들로 사회적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던 시기다. 그야말로 날마다 어두운 뉴스가 쏟아져 나왔었다.
화가는 이 같은 시대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그림의 모티브를 창세기 바벨탑으로 정한 것이다. 지금 그림 중앙 도시 한복판에 이미 노후해 종말을 맞은 듯한 바벨탑이 서 있는 이유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참고할 것이 있다. 식민지 국가로서 겪은 화가의 체험이다. 화가는 현재의 네델란드 출신이다. 당시 네델란드는 종교개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있었는데 캘빈주의 개신교가 캐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 독립의 저항을 높이던 때였다. 결국 네델란드는 두개의 종교를 가진 국가 형태로 나눠졌다. 남부 네델란드는 캐톨릭을 지지했고 북부 네델란드는 개신교를 지향했다. 이 때의 탄압과 국가의 강권력을 화가가 몸으로 체험했었다. 당연히 스페인에 대한 악감정이 화폭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 감정이 왼쪽 하단의 채석장에 도상으로 숨겨져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그림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당시 엔트워프 도시의 시대 배경이다. 이 시대 배경을 감안하고 작품을 분석하면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작품 분석으로 들어가 보자.
이 작품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할 것은 작품을 내용별로 나눠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중앙의 탑을 다시 지역별로 나누어 그 곳에 담긴 내용을 정밀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빠른 작품 이해는 물론이며 다른 바벨탑 그림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차이점은 이 작품 만이 지닌 특이성이 된다.
그림 안에 하늘과 땅과 바다가 보인다. 넓은 자연을 등장시키는 화가의 대표적 화풍이다. 이렇게 하늘과 땅과 바다와 도시가 보이는 것은 이 작품이 당시 화가가 활동한 엔터워프라는 한 도시에 관한 내용이면서 동시에 전 지구에 흩어져 살아가는 인류 전체의 이야기임을 알린다. 이렇게 해석이 되면 관객들은 이 작품을 이해할 때 등장 요소들을 작게는 한 도시의 이야기로 이해해야 하며 또 한편 크게 확장해 전 지구적인 이야기로 해석해야 한다. 도시와 지구 전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중세 당시 모든 도시들은 전쟁을 대비해 성곽과 함께 도시가 건축되었다. 그 흔적들을 그림으로 확인한다. 동시에 성 밖과 성 안의 차이를 대조시켜 당시 엔터워프의 밀집된 현황을 기록했다. 이런 묘사로 인해 역사화 장르가 된다.
화가는 이 주택 문제를 빼곡히 들어선 가옥들로 만 표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화풍이기도 한 넓은 자연 속에 담아 전했다. 집들 위로 보면 만리장성 같은 길다란 성벽이 보인다. 이 도시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데, 성밖과 성안의 차이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성 밖은 더 넓은 대지에 강도 흐르고 그 위로 배도 다니며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빽빽한 집들로 구성된 도시 속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성벽을 등장시켜 성밖과 성안의 대조를 통해 묘사한 당시 엔트워프 도시라는 인구 문제의 표현이다.
성곽 밖을 보면 더 넓은 대지가 보인다. 들판 가운데 풍차가 있어 화가의 고향임을 알린다. 화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 풍자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어떤 작품에서는 고향이면서 중요한 성경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흐르는 강에 배도 있고 크게 난 대로에 사람들의 통행이 보인다. 바로 아래의 성 안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당시 엔트워프를 묘사한 그림 속 도시다. 돈은 이 도시로 몰려들었지만 그에 역비례해 발생한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인간이 사라진 도시들로 묘사했다.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은 대표적으로 발생한 인구 과포화 상태를 알리고 있다.
아름답게 채색된 중세 도시의 집이지만 겨우 사람을 찾아보면 왼편에 있는데, 그것도 수레를 끌고 가는 노인과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들 두세명이 전부다. 생기와 인간미가 사라진 도시의 상징인 셈이다.
직접 눈으로 살펴보기 어려운 부분들이라 이 부분만을 확대해 살펴보고 그림에 대한 설명을 붙여본다.
한치의 여유도 없을 것 같은 곳에 그나마 풍경이 보이는 곳이다. 도시를 흐르는 강물에 건물의 비친 모습까지 놓치지 않고 담았다. 확대해 볼 때 이렇게 화가의 세밀성이 드러난다. 전체 그림에서 이 부분의 비율을 확인해 보면 그저 감탄이 나온다. 어쩌면 화가가 실제로 강변에서 가옥과 물의 반사를 살펴 보며 그렸을 수도 있겠다. 관객의 눈이 중세 속 한 도시로 들어가 오래 머물게 한다.
집 하나 하나가 대충 그린 것이 아니라 온전한 가옥임을 확인한다. 건물 아래에 설치된 아치형 묘사는 압권이다. 자동차로 비교하면 주차장인 셈인데 그 작은 아래에 배를 몰고 나오는 인물이 보인다. 이 작품에 물이 있다면 그 물에 반사된 물체나 인물이 있다. 1mm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화가다.
바벨탑 아래 부분 3곳에 서민들 삶에 관한 묘사가 있다. 인물들이 개미같이 작지만 인물들의 행동이 묘사되어 있다. 띄엄띄엄 떨어져 있지만 무얼 하는지 일상 생활이 담겨있는 귀중한 곳이다.
왼쪽에 낡은 가옥이 몇 채 보인다. 공터 중앙에 있는 것은 당시 지렛대를 이용해 물을 퍼 올렸던 우물이다.
그 옆으로는 이제 막 바벨탑에 올라가는 두 사람들이 보이고 계단 옆에는 지하로 땅을 파 길다란 자제를 보관한 장소가 보인다. 이런 구성을 보면 화가가 이 바벨탑을 계획하기 위해 대형 건축물을 찾아 연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마 로마에 머물 때 이런 자료들을 연구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대장간을 확대 봤다. 안에 불이 피고 있으며 밖에 있는 화로에도 불빛이 보인다. 완성된 주물을 나르고 있는 인부도 보인다. 작지만 전형적인 풍속화 장면이다.
서민들의 풍속화가 담긴 바벨탑 하단 중앙 부분이다. 바벨탑 하부인데 보수 공사가 진행중이며 들판인 듯한 곳에는 인부들이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중간 부분에 물이 흐르고 있다. 이 물을 경계로 왼쪽에는 삶의 거주 지역을 나타내고 있고 오른쪽에는 작업 지역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열심히 돌을 깍고 나르고 중장비를 활용해 무거운 돌을 올리는 작업 과정을 담았다.
바벨탑 오른편 하단은 그야말로 눈에 익숙한 시골 풍경이다. 소가 끄는 수레도 보이고 길가에 지어진 시골 농촌집이다. 구조는 다르지만 성문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라 여러 대의 마차가 줄지어 가고 있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소달구지가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공사 현장으로 향하는 재료들이다. 집 뒤에 자란 나무는 이 곳이 오래된 바벨탑 입구에 정착한 가옥임을 나타낸다.
바벨탑 우측에 있는 항구 모습이다. 당시 엔터워프 도시의 최대 강점이 이 항구를 활용한 국제 해상 무역이었던 점을 강조한다. 거대한 범선도 보이고 통나무를 이어 만든 뗏목에 노를 달아 저어며 이동하는 사람도 보인다. 뗏목과 거대 상선이 비교를 이룬다.
이 곳 항만의 특징은 출입을 관리하고 전쟁시를 대비한 성루가 보인다. 이 성루의 등장으로 매우 조직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국제적 규모의 항만임을 알 수 있고 붉은색 석재를 내리는 것으로 자재가 수입해 전달되고 있음도 추측할 수 있다. 확대한 모습으로 작품의 정밀성을 확인한다.
그림의 한 부분을 잘라 확대한 곳인데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성루 꼭대기에 배치된 대포가 확인된다. 그런데 왜 포대의 방향이 바다 쪽이 아니고 도시 쪽인지 의문이 든다. 대포를 쏴야 할 곳이 도시임을 알리는 것인가? 적군이 도시에 있다는 의미다? 해안가 바로 곁에서 추수하는 농부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바닷물에 들어가 있는 나무 수레도 이상하고... ...
해골의 형상이 있다. 어쩌면 이 바벨탑이 이미 실패한 인간의 욕심임을 알리며, 정치적으로는 네델란드를 식민지 했던 스페인왕 필립2세의 권력이 곧 멸망할 것임을 상징할 수도 있겠다.
넓게 보면 인류의 모든 일이 성경 전도서에 나타난 것처럼 “헛되고 헛됨”(전도서 1:1)을 알리는 성경적 메시지일 수도 있다고 본다. 전체 그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며 기초가 되는 바벨탑 바닥 부분에 묘사되어 있어 모든 것의 허망함으로 해석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조금 더 확대해 보면 이 곳에 신기한 부분이 발견한다. 붉은 석재를 하역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인물들이 흰색으로 묘사된 유령 같아 보이는 부분이 있다. 왼쪽에도 있는데 왜 이런 표현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청색원 안에 투명하게 그려진 것이 있다. 색을 미처 칠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돌을 다듬는 채석장이다. 현재 이 탑에는 붉은색과 흰 색 두 종류의 석재가 제공된다. 그 중에 흰색 돌이 이 곳에서 공급된다. 화가의 천제적인 구성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며 신약으로 해석하는 것 중에 일부분은 미술사 최초의 설명일 것이다. 이 곳에 성경의 신약적인 표현이 들어가 있는 것은 당시 의뢰인이 개신교였던 것 같다. 이것 외에도 에피소드가 많은 부분인데 정밀하게 분석해 보면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채석장의 현재 상황을 한 줄로 언급하면 “왕의 행차”라 할 수 있다. 화폭 속의 인물들을 비교해 보면 이 곳 채석장의 인물들이 비교적 실제모습으로 등장한다. 바벨탑에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크게 그렸습니다. 뭔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중앙에 중심 인물로 묘사된 왕을 보면 왕관과 고귀한 신분의 가운을 걸치고 있고 오른손에 황금봉을 쥐고 있다. 왼쪽에 있는 측근 보좌관 인듯한 사람이 두 손을 사용해 공사 진척 상황 등을 설명하고 있는 중이다. 그 뒤로는 붉은 색 옷을 입은 병사들이 창과 칼로서 호위하고 있다. 이 그림 전체에서 유일하게 나타나는 창과 칼이다. 왕이 가진 강한 힘의 권력을 나타내며 무력을 행할 수 있는 군사력의 표현이다.
실제로 이 같은 묘사대로 1565년에 무력을 행해 당시 엔터워프 국민들 약 8000여명을 죽였던 역사도 있다. 그런 역사와 정치 관계 속에서 바벨탑을 해석하면 결국 무너져 실패할 스페인의 식민 정치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다시 채석장의 왕에게 집중해 보자. 이 왕은 당시 네델란드를 통치하던 스페인 국왕 필립 2세다. 이 왕의 등장으로 당시 네델란드가 스페인의 식민지였음을 관객에게 알린다. 통치를 받던 식민 지배령의 국민 입장에서는 죽이고 싶은 원수로 보였을 것이다.
화가는 재치있게 이 인물을 바벨탑과 연관시켜 나쁜 왕으로 회자되는 니므롯으로 묘사했다. 니므롯이란 인물은 바벨탑이 세워지던 당시의 인물로서 함의 아들 니므롯(Nicrot)이다. 바벨탑은 창세기 11장인데 니므롯이 등장하는 구절은 창세기 10장의 족보 속에 등장한다. 족보를 올라가면 노아의 세 아들 중에서 아버지를 욕보여 저주를 받은 것으로 기록된 함의 아들 계열에 속한 핏줄입니다. 참고로 그 구절을 한 줄로 전해 드린다.
“함의 아들은 구스와… … …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창세기 10:6-10)
그러니까 화가는 바벨탑이란 성경적 모티브를 화폭으로 끌고와서는 신을 대항했던 나쁜 인물의 니므롯을 등장 시켰고, 스페인의 왕 필립 2세를 상징하게그려놓았다. 화가로서는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창작성을 유지할 수 있는 창의적 표현 방법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한 번더 필립 2세를 대놓고 욕한다. 어떤 방법을 사용했을까요?
똥입니다. 그에 대한 불쾌함을 똥싸는 행동으로 묘사했습니다. 아래 평지에서 똥사는 인물이 그런 상징을 지녔습니다.
엉덩이를 내리고 적나라하게 똥싸는 모습이 보이죠? 이 특이한 표현은 화가의 다른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다른 그림에 나타난 필립 2세 국왕의 모습을 볼까요? 두 인물을 비교해보니 어떤가요? 비슷한가요? 가까운 친인척 간의 혼인 관계로 발생한 길쭉한 얼굴이 인상적입니다.
살짝 살짝 끊어 그린 흔적들이 보이며 저 작은 물 병에 반사되는 빛을 넣어 도자기 재질의 특성을 살렸고 굴곡도 넣었습니다.
채석장
민중 화가였던 브뤼겔이 민중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부분이다. 당시 유럽에서 석공이 받는 일당을 찾아봤다. 오늘로 계산하니 약 14,000원이라고 한다. 임금 상승률을 생각하면 이 보다는 많이 받을 것이다. 이 채석장에는 3부류의 석공이 있다.
왼쪽 그룹은 일하는 중이고 중앙 그룹은 왕 앞에 바짝 엎드려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리고 채석된 돌을 운반하는 그룹이 오른쪽에 있다. 지금 돌을 등에 지고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다.
채석장에 이런 내용만 있을까? 이 화폭에서 가장 중요한 도상 해석이 남아있다. 성경의 신약적 표현으로서 예수의 죽음과 죽음 이후에 제자들이 기념할 성만찬에 관한 해석이다.
화가는 바벨탑이란 구약의 대표적 건축물을 등장시켜 바벨탑의 위엄과 기이함과 실패한 상징성을 활용했으나 정작 화가의 메시지는 바로 이 곳에 도상으로 숨겨놓고 신약의 메시지인 예수를 전한 것이다. 이 부분 가장 중요한 해석이다.
어떤 기독교그림에서든지 3이란 숫자나 대못 등을 보면 즉시 십자가와 연관시켜 그림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 오른쪽 하단의 붉은색 원 안의 3개 대못은 십자가 예수의 상징이다. 왜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 그 옆의 다른 못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이곳 대리석장에 못이 3군데에 나눠져 있다. 왼쪽에 못이 3개인데 하나가 놓여있고 하나는 석공이 사용중이다. 중앙을보면 4개의 대못이 있는데 3개가 놓였고 하나는 석공이 들고서 돌을 깍고있는 중이다.
오른쪽은 어떤가? 왼쪽과 달리 나무 망치와 못 3개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무엇이 다를까? 우선 십자가에서 예수의 몸을 꿰뚫고 들어가 박힌 대못은 3개다. 이 숫자가 십자가를 알리는 숫자다. 2개도 4개도 아니다. 여기에 화가가 도상으로 숨긴 힌트가 들어있다. 화가는 이곳의 인부들이 왕에게 엎드려 인사를 하게 구성해놓고 3개의 대못과 나무 망치를 돌 위에 놓게 구성했다. 화가가 꾸민 이야기 장치다. 화가는 이 망치와 3개의 못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변환 시킨다. 같은 석공의 못인데 왜 이렇게 해석될 수 있을까?
대못 3개가 놓여있는 이 돌이 지닌 특이성과 왼쪽 끝에 있는 항아리와 바구니에 담긴 도상과 자연스럽게 산약적으로 연관이 되기 때문에 석관으로 해석된다. 그리스도의 석관이며 그리스도의 죽음이다.
그래서일까? 중세 화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기록했던 방법대로 브뤼겔 역시 이 돌 한구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화가가 구성한 이야기 장치가 놀랍다.
이렇게 해석될 때 관객은 이 그림 속에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그 분의 죽음을 대한다. 구약의 바벨탑과 신약의 석관이 만나 온전한 성경인 구약과 신약을 이루게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바벨탑을 강조한 구약적 작품이 아니라 빈 무덤의 죽음인 석관을 강조한 신약적 작품인 셈이다. 회화사 최초로 설명하는 새로운 해석이라 믿는다.
화가는 관객으로 온 여러분들이 직접 망치와 대못을 들고 작업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관객들이 쉽게 손에 쥘 수 있도록 여러분 쪽으로 손잡이를 놓았다. 인부를 위한 손잡이 방향이 아니다. 관객을 위한 손잡이 방향이다. 이 미세한 표현은 화가가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도록 만든 장치다.
중세 회화는 미묘한 차이 속에 깊은 상징이 들어있다. 쉽게 중세 그림이네 하고 지나칠 수 없는 고급 문화다. 필자는 이런 고급문화가 주위로 많이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석공들이 있는 이 장소에서 관객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상징인 석관의 도상도 찾아 살펴봤다. 도무지 보이지 않을 것 같던 바벨탑에서의 십자가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런데 예수 죽음 이후에 시작된 성찬식에 관한 도상도 있다. 맨 구석에 있는 바구니(빵=예수의 몸)와 물병(포도주=예수의 피)이다.
채석장에 음식을 담은 이런 바구니와 물병이 등장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중의 하나로 이해된다. 화가가 이 점을 노려 상징을 숨겨놓았다.
성찬이란 예수의 죽음 이후에 교회권에서 행해지는 기념 행사다. 물론 이 역시 성경 기록에 따른 것이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5-26)
채석장을 분석할 때 잘 살피지 않는 주제가 높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전체를 한 번보자.
바벨탑이 가장 높지만 사실은 관객의 시선은 훨씬 높은 곳에 있다, 바벨탑 뿐만 아니라 더 넓은 대지와 하늘까지 보인다. 그 속에 채석장의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보면 채석장의 높이가 바벨탑도 전체를 쳐다볼 수 있는 곳이며 엔터워프 도시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화가가 이렇게 채석장을 높은 곳에 구성한 것은 이 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 즉 바벨탑 공사, 스페인의 네델란드 식민지화, 인구 문제와 그에 따른 각종 사회 문제들 … … 그 모든 것들이 성경 전도서에 있는 “헛되고 헛되다”라는 것을 알리며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예수를 기념하며 말씀인 성경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는 의뢰인의 요구일 것 같아 보인다.
진한 녹색 숲으로 둘러 쌓이게 해서 채석장을 구분시킨 후에 석판과 바구니와 물병과 나무 망치, 못 3개 등으로 신약의 예수를 드러냈다고 본다. 이들 단어는 모두 신약의 아이콘들이며 이 장소가 높이 배치된 것의 중요성이다.
지금까지 바벨탑 주위를 살펴봤다. 이제 가장 큰 주제되는 바벨탑을 중점으로 살펴보자. 단순히 거대한 탑으로 보이지만 다양한 주제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을 볼 때 가장 큰 의문이 든다. 왜 화가는 이 거대한 탑을 도시 중앙에 두었을까? 우선은 관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끌기 위함이며 다음으로는 당시 네델란드를 식민지로 통치하고 있던 스페인에 대한 항거의 상징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는 바벨탑의 성경적 상징인 인류의 원죄로 인한 여러 문제는 예수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알리기 위함으로 보인다.
이제 가장 중점 되는 탑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탑을 세분화 시키면 이 탑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화가가 작품을 이야기로 이끌어 나가는 장치로서 관객들이 작품 앞에서 오랫동안 있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바벨탑은 크게 5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곳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개미같이 작게 묘사되어 있지만 확대하면 그들의 삶이 구분된 지역에 맞게 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가의 정밀성과 작품에 대한 극도의 장인 정신이 확인된다. 회화 거장인 이유가 확인된다.
이 탑을 바라보면 로마의 콜로세움이 떠오른다. 우연일까? 북유럽에 살면서 활동했던 화가가 콜로세움이 분명한 것 같은 거대 건축물을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실제로 관찰했기 때문이다. 남부 유럽으로의 여행이다. 특히 로마를 방문했기에 가능한 묘사로 인정한다.
이런 여행의 경험은 그의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화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거대한 산맥과 솟아오른 봉우리들은 알프스 산맥을 지날 때 관찰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 탑을 사람으로 생각해 보자. 탑을 사람으로 보면 색의 역할이 눈에 들어온다. 외관의 연한색은 인체의 피부 같다. 상단의 붉은색 구조물은 사람의 내장처럼 보이고 연결된 적색 돌들은 뼈이며 혈액을 운반하는 핏줄 같아 보인다. 중간 중간에 있는 붉은색 벽돌 구조물은 살이 벗겨지거나 찰과상으로 살짝 피흘린 상처같다.
중간에 밖으로 솟아난 거대 바위는 몸에서 터져 나온 큰 내장이나 장기 같아 보인다. 그림에는 이 자연산을 깍아 거대탑의 일 부분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화가의 구성과 이야기 전개 방식이 참으로 신기하며 기이하며 창의적으로 보인다.
이 바벨탑 그림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새로 꽃잎을 피우는 연한 싹이 생각난다. 그리고 화가가 바벨탑 이후에 출생할 바벨탑 후예들에 대해서 표현해 놓았음을 발견한다.
이미 멈춘지 오래된 바벨탑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탑을 지어올리기 위한 건설 현장이 맨 위층에서 진행된다. 분명히 오래된 꽃잎에서 새로운 어린 꽃잎이 피어나는 형상이다. 이 표현은 악이 바벨탑의 실패와 함께 사라지지 않고 세상에 흩어진 곳에서 여전히 바벨탑을 지어 올리고 있음을 알리는 묘사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의 세계와 똑같음을 확인한다. 구름 위의 건설 현장은 악의 활발한 성장점이다. 저 바벨탑의 가장 무서운 점은 끝이 없는 나선형의 길이다. 죄악에는 인류 역사가 있는 한 끝이 없음을 알린다.
최 상층부에 구름 한 점이 걸려있다. 놓은 하늘이기에 당연하다고 보겠지만 이 상징은 배경인 구절에 따른 것이다. 화가가 배경인 성경 구절에 따라 충실하게 묘사한 것이다.
이 구절에 바벨탑의 목적이 기술되어 있다. 인간의 이름을 내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 이름 보다 더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였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세기 11:9)
이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위엄있게 시도하기 위해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았지만 결국 언어를 혼란케한 창조주에 의해 실패하게 된다. 언어가 통하지 않자 곧 바벨탑은 멈춘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아담과 이브의 첫 아들이며 첫 살인자였던 가인의 후예인 바벨탑 공사자들은 창조주가 보실 때 처음부터 실패작이었다. 화가가는 이 부분을 명확하게 바벨탑에 담아 그렸다. 기울기이다.
좌우의 기울기가 기울어져 있고 공사에 가장 중요한 기초되는 바닥도 기울어져 있다. 화가는 애초부터 완성이 불가능하게 건축을 올린 것이다. 기울기라는 사소한 묘사 역시 배경인 성경 구절에 맞추어 표현해 낸 것이다.
이 그림에는 크고 작음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 일반 관객들은 이 의미를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작품을 설명하는 미술 전문가들도 별로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이 부분 꽤 중요한 요소로 볼 수 있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화가의 강한 메세지로 본다. 그렇게 해석하고 풀어봐야 할 사항이다.
그림 속에서 바벨탑은 실로 거대하고 웅장하다. 이와는 반대로 그 속의 인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은 듯 너무나 작게 존재한다. 바벨탑을 만든 장본인인데 정작 자신의 존재는 너무 작아 미미한 모습이다.
이 점은 당시 브뤼겔이 살던 중세 시대에 깨달은 사회 시스템의 현상으로 본다. 오늘 날에 16세기의 도시를 바라본다면 오늘날의 시골에 불과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당시 엔터워프는 세계 최대로 발전된 무역과 경제 도시였다. 이 속으로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엔터워프라는 도시 속에 매몰되어 거대한 그 도시를 이루는 작은 부품 역할을 한 것에 대한 경고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원래 사회나 한 나라가 타락해 갈 때 문학가는 글로서 이를 표현했고, 조각가는 돌을 다듬어 표현했으며 시인은 한 줄 글에 담아 사회에 던졌었다. 화가는 그림으로 이렇게 표출했다고 본다. 당시 시대와 도시에 대해 빗댄 폭로성 작품으로도 볼 수 있는 점이다. 거대한 수레바퀴를 제작하고서 굴렸는데 종국에는 스스로 그 바퀴에 깔려가는 모습이다.
이 작품에서 특별히화가가 관객들에게 이곳은꼭 봐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곳이 한 군데 있다. 상단 왼편의 하늘이다. 하늘에 흰 구름이 깔려 있는데 특이한 검은 구름이 보인다.
필자가 기상학자는 아니지만 저렇게 대비되는 구름이 생기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서 눈길이 가며 마치 이 곳을 보라는 손짓 같다. 그 곳을 따라가면 구름이 손짓하는 바로 아래에 한 무리의 새 떼가 횡을 이루며 비행하고 있다.
인간은 살 수 없는 땅인 바벨탑에서 억지로 살고 있지만 자연 속의 새들은 창조의 규칙에 따라 창조주가 허락하는 곳에 가기위해 날아간다. 바벨탑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에도 신경을 쓴 화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여행의 세계화 시대라고 합니다. 오스트리아를 방문하시게 되면 꼭 이 미술관 방문을 권해드리며 이 작품 앞에서 감상해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이 곳을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동안 명화라고 생각했던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림 감상 후에 꼭 한 번 앉아 보셔야할 카페가 이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카페라고 생각합니다. 진한 커피와 함께 감상의 즐거움을 나누시길 기대합니
막상 설명을 마치려고 하니 화가의 대단한 열정을 다시한번 실감합니다. 작품 앞에서 조금이라도 뒤로 물러서면 큰 바벨탑 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저렇게 작은 규격에 그 많은 사람들을 묘사해 놓았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됩니다.
화가로서 열심히 살았던 브뤼겔이라는 분을 떠 올려보게 됩니다. 무엇이 그의 삶에서 저런 열정이 나게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나도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정말 열심히 명화를 분석하고 새로운 도상을 찾아 설명해 놓아야 겠다는 결심을 해 봅니다. 죄가 여전히 많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이유를 찾게 하는 중세 명화 그림 여행이었습니다.
저는 다음 그림 여행을 준비해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평안에 머무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세계에 흩어진 명화를 찾아 세밀히 그 내용을 살펴보는 새로운 명화해설 <내 집은 미술관> 제공이었습니다.
"문을 열면
곧
중세로
발길이 옮겨지는 곳
중세 명화의 관문
유럽에서
인사 전합니다."
*부탁합니다. 제 글에는 처음 발견한 도상에 대한 설명이 있어 저작권이 요구됩니다. 필요시에는 먼저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ark353v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