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 보면 '선배가 없다'같은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런데 재밌는 건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또 다른 말을 한다는 점이다. 애들이 모르는데도 묻지를 않는다고 한다.
난 그 이유로 '대가족이 핵가족이 되고, 현재는 가족이란 개념이 파괴되는 지경에 이르러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애초에 시작은 가정 내에서의 작은 일이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세대를 거듭하며 국제적인 사회 문제로 번졌다는 의미이다.
우리 부모 세대, 아니 이제 막 마흔이 된 내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한 가정에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경우가 흔했다. 나를 기준으로 내 부모, 삼촌, 고모, 조부모 이렇게 말이다. 게다가 형제도 많았다. 이건 동네를 둘러봐도 비슷했다. 그래서 옆집에 가서 놀다가 뒷집에도 가서 놀며 그 집의 부모, 삼촌, 조부모님과 마주치는 일도 잦았고, 친구네 집에서 밥도 먹고, 놀다가 그 집 어른들에게 잔소리도 들으며 자랐다. 자연스럽게 여러 세대, 다른 집의 문화와 생활 습관에 노출될 일이 많았다는 의미이다.
자, 2023년인 지금은 어떠한가?
일단 미성년자를 벗어나면 부모님과 같이 사는 일이 잘 없다. 대화가 안 통한다며 일찍부터 자취를 한다. 심지어 미성년자일 때부터 혼자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결혼 자체를 안 하기 때문에 1인 가구가 많고, 결혼을 했어도 출산을 안 한다. 출산을 해도 한 명 정도다. 옆집, 뒷집에는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살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네이버를 열어서 물어본다. 답변의 신빙성 여부는 중요치 않다. 내가 듣길 원하는 답변이 나오면 검색을 끝낸다.
이는 아이를 양육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내 엄마나 시엄마가 하는 얘기는 그냥 옛날 사람들의 올드한 방식일 뿐, 2023년에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과는 맞지 않다고 치부한다. 그래서 궁금한 게 생기면 맘카페에 물어보고 다른 엄마들이 해주는 말을 더 믿는다.
맘카페에 올라온 댓글을 보면 참 놀랍다. '이런 질문을 왜 여기다 하고 있어, 빨리 병원에 가야지.' 하는 글에도 답변이 무수히 달려있다. 난 그들이 전부 무슨 아이 양육 전문가 혹은 소아과 의사인 줄 알았다. 그 정도로 답정너 같은 답변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나를 낳아준 내 부모가 하는 말은 그저 꼰대가 떠드는 말이라고 치부하면서, 생판 얼굴도 본 적 없는 남이 달아준 댓글을 더 믿는 걸까?
최근에 이런 생각이 정리되고 업계 선배와 내 부모님과도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내가 팔로잉하고 있는 미국에 계신 분께서 좋은 사례를 올려주셔서 공유한다. 포스팅 중 2번에 쓰여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파티를 끝내고 다 마시지 않은 보그 드링크 통을 저렇게 아무렇게나 버리고 가는 건 어릴 때부터 '청소하는 사람 따로 있다'는 생각을 심어줬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국 초중고교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청소하는 일이 없어서 저런 태도가 몸에 배는 거. 이래서 나는 아이들이 교실과 교정을 청소하게 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
생각해 보니 나도 초중고 때 교실 청소를 우리가 직접 했다. 초등학생 때는 마룻바닥이라 왁스질도 하고 말이다. 그때는 그저 그게 하나의 놀이인 것처럼 대했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청소의 난이도가 올라갔어도 학급 친구들과 함께 하니 그걸 노동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게 교육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냥 선생들이 시키니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로 대했다.
문화라는 건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과거엔 괜찮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불법이 되거나 하면 안 되는 일인 것이 있다. 아마도 학생들에게 청소를 시키는 일도 지금은 그렇게 된 것 같다.
아마도 처음엔 아이들에게 교실 청소를 시키는 것이 교육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을게다. 하지만 그 시절엔 청소 노동 자체가 돈을 지불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시켰던 이유도 분명 있었을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학교의 청소 노동을 왜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해야 하냐는 물음으로 번져갔을 테고, 시대의 흐름에 있어서 청소 노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도 생겼으니 더 이상 그 일을 학생들이 할 일이 아니게 되는 수순을 밟았을게다.
인간은 성인이 되면 스스로 의식주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아이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가는 발달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케어하고, 자신이 머무는 곳을 정리 정돈하며 사는 것을 배우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데, 어릴 때부터 자신이 어지른 것을 스스로 치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치운다는 게 당연해지면 성인이 되어서도 그게 당연한 사람이 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옛말은 과학이다)
지금 시대에 아이들에게 청소를 시키지 않는 이유는 해당 일자리를 창출하여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기 때문일 테지만, 저 사진 속에 드링크 통이 잔디밭에 널려있는 걸 보면 한 명만 그렇게 버린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나도 버리고 쟤도 버리고 걔도 버리고 너도 나도 다 그렇게 버렸다는 건데, 그들이 안팎에서 다 그렇게 배웠다는 말이며, 그 세대에서는 다 그렇게 배운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내가 어질러도 뒷정리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라고 은연중에 주입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로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에게 Gen Z라는 이름을 붙였다.
회사에서 자꾸만 MZ는 어쩌고 하는 말들을 한다. 정작 MZ들은 그에 대해, 꼰대 같은 베이비 부머 세대가 뭔 말이 많아...라고 하기도 하고, 밀레니얼과 Gen Z는 전혀 다른 세대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Gen Z의 특성이 분명히 있긴 하다.
그리고 그렇게 도드러진 차이를 보여주는 이유가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는 가족이란 개념이 파괴되는 지경에 이르러서'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내 조부모와 부모, 삼촌, 고모에게서 말과 행동으로 배울 수 있던 것들에서 모두 단절되어 비롯된 현상.
가정에서 그런 가르침을 받고 자란 작은 사람은 공교육의 범위 안에서도 그게 당연하게 행동하고, 그들의 부모 또한 그렇게 자신의 아이를 대하라고 공교육에 요구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자란 작은 사람은 그게 자신에게 너무 당연하니 사회에 나와서도 그렇게 행동하고, 그들 중에 또 누군가는 공교육을 책임지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작은 사람들을 자신처럼 길러낸다.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당신에게 일이란 뭐냐?"라고 물어보면 일은 그저 돈을 버는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졌다. 즉, 위에서 교실 청소를 그저 노동이라고 생각하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고 썼는데, 실제로 직장에서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내가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돈을 버는 노동>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그 와중에 애자일코치인 내가 집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항상 궁금하고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애자일코치는 '일'이라는 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일이라는 건 사람의 인격을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고,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 전반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즉, 일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일의 본질이 사실 이렇게까지 철학적이라는 데까지 닿을 수 없는 건 일을 전문으로 보는 사람이 아니니 그렇다 쳐도, 각자가 자신의 일을 하는 와중에 '내가 잘하고 있나?'라는 물음이 생길 때 대답해 줄 사람이 없고, 보고 배울만한 사람도 없고, 그래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뭔지 알려줄 사람도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그들이 보고 배울만한 사람이라 함은 나보다 한두 단계 정도 더 나은 수준의 사람들일 텐데, 그런 사람들이 없다는 뜻이다. 이걸 업계에서는 '허리가 없다'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그렇다. 중간에서 주니어들을 보살펴서 한층 성장하게 도와줄 사람들이 없다.
이건 내가 있는 IT업계 전반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게 우리 업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는 걸 더 나이 든 사람들 MZ의 특성이라고 퉁쳐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배경에는 대가족이 핵가족이 되고, 결국엔 가족이 파괴되는 수순을 거쳤기 때문이라고 본다. 본인들은 개인주의라고 말하고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한 말은 '사람은 사회와의 연대를 위해 일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인데, 현대 사람들이 말하는 개인주의는 더 이상 개인주의라기보다는 이기주의에 가까운 행동으로 보이기도 한다. (*피터드러커, 매니지먼트)
전통적인 대기업이 단단한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갖추고 그 안에 새로운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던 구조는 그저 과거부터 만들어온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더 견고하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그걸 바탕으로 개인이 성장하게 하면서 견고했던 그 시스템에 변화의 단초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하는 바탕이기도 하다. 변화라는 게 가능하려면 아무것도 없는 흰 도화지가 아니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회 초년생들이 스타트업은 자유로운 곳이고 대기업은 꼰대들만 득실거리는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난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타트업은 자유롭다기보다는 그냥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갈아 넣으며 아무 일이나 다 해야 해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이렇게 가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어서 나의 커리어를 예쁘게 쌓기 힘든 곳이다. 게다가 보고 배울 사람이 없으니 한계를 느껴서 다른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지만 옆그레이드인 경우가 많다. 5명인 곳에서 팀장이었던 사람을 4만 명 규모의회사에서 팀장으로 써주겠나? 그 안에서 다루는 문제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팀장이라는 이름을 사수하기 위해 옆그레이드를 하는데, 이런 경우 수학책으로 따지면 1장의 행렬만 죽어라 푸는 것에 가깝다.(나 때는 행렬이 1장이었는데 지금은 다른가...)
자, 나는 행렬 전문가가 되는 게 목표인가?
대기업은 견고한 체계 안에 내가 탑승하는 모양새라 부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선배들이 말 잘 들어라 하는 그 말을 그냥 잘 들으면 정말 자유는 없고 꼰대 같은 사람들과 저녁 회식에 고기만 구워 먹어야 한다. 그런 거 대신 잘 짜인 그 체계를 이용해 볼 수 있다. 대기업은 서비스와 제품을 시작부터 끝까지 잘 다룰 수 있는 체계가 고도로 꾸려진 곳이다. 이는 곧 원한다면, 내가 풀프로세스 중에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를 경험해 보기에 최적의 환경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의 모수 자체가 많기 때문에 보고 배울만한 사람도 많이 찾을 수 있다. 물론 '내가 저렇게 돼야지'라기보다는 '난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쪽에 가깝긴 하다.
아참, 우리나라엔 겉모습만 대기업인 곳이 매우 많으니 잘 걸러야 한다. 회사에 정규직 인원수가 많다고 해서 대기업은 아니다. 게다가 우리가 대기업이라고 알고 있는 곳의 대부분은 놀랍게도 체계가 아예 없는 곳도 많다.
이렇듯 스타트업과 대기업은 분명 장단점이 있다. 때문에 회사를 고르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아는 일이다.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그래서 내가 한층 더 성장하려면 어떤 부분의 역량, 능력이 더 필요한지를 스스로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십 년 넘게 애자일코치라는 직업을 가지고 사람과 조직을 성장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까지 생기면서 고민이 더 많아졌다.
내 아이에게 나는 무얼 줄 수 있을까
어떤 가정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이 아이에게 좋을까
과연 내가 앞으로 머물려고 하는 이 사회는 이 아이에게 좋은 곳일까
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의 세상은 어떨까
나는 거기에 어떤 기여를 해서 내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이 더 잘 살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까
...
앞으로도 이 고민이 끝날 일은 없을 것 같고 정답도 없겠지만, 적어도 가족이 파괴되고 세대가 단절된 것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의 삶이 네 발로 기다가 두 발로 섰다가 세 다리로 걷다가 가는 거라면, 그 생애주기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살펴보고 언젠가 나도 속할 각 시기에서의 삶을 고민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연대하는 게 좋지 싶다. 각 시기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잘 살아내려면 나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떤 기여를 하며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