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을 마무리하며,

짧지만 소중했던 나의 한 달 휴가

by 백미진 Mijin Baek

2025년은 카카오에 입사한 후로 가장 바쁜 해였다.

언제나처럼 문제를 느끼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만들고, 먼저 찾아가 제안해서 실행하는 과정. 내가 일을 하며 늘 해왔던 그 과정을 이곳에서는 처음으로 제대로 겪어냈다.

덕분에 내가 카카오에 와서 내내 왜 힘들었는지 알게 됐고, IT씬의 민낯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막연하게 입사 3개월 차부터 이상하다고 느끼던 것들을 이제는 코끼리 다리를 짚는 게 아니라 큰 구조로, 정제된 표현으로 뱉을 수 있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이건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쯤 했으면 선택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시작을 했다면 마무리를 제대로 지어야 하는 법.


마무리가 안되면 내내 잠을 못 자는 인간이라 어떤 방식으로든 내 생각에 매듭을 짓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아무 대책 없이 뭘 하지는 않는 부류고, 나에겐 부양해야 할 자식이 있으니 일단 25년에 못쓴 휴가나 쓰며 생각해 보기로 했다.








딱 십 년 전에도 2개월 정도 쉰 적이 있다.

그당시 회사에서 일하던 나의 단편적인 모습을 본 사람들은 현재의 내 모습을 상당히 신기하게 여기는데, 왜냐면 일터에서의 내 모습만 보면 워커홀릭 같은 단어로 아주 짧게 단정 짓기에 좋았기 때문일 게다. 덕분에 아무도 내가 결혼을 하고 심지어 출산을 해서 아이를 기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당시엔 그 누구도 내가 휴직이라는 카드를 꺼내 쓸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인사과에 복직할 때의 소속은 내가 실제로 일하고 있는 곳이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는 보란 듯이 휴직을 써버렸다.


신기하게도 그 정도 쉬니까 다시 돌아가서 일할 기운이 생겼다.

라고 하면 좋겠지만, 사실 싱글인 나는 일하고 공부하는 게 정말 재밌었다. 정확히는, 나의 경쟁 상대는 어제의 나였기 때문에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몹시도 즐거웠다.


일터에서 멀어져 날 괴롭히던 정체모를 불안에서 멀어지니 오히려 명쾌해졌다.

돌아가서 뭘 할지 설계했고, 복귀하고 나서는 정말 그 일을 했다.


그렇다. 난 항상 그렇게 나의 생각과 행동에 마무리가 지어져야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굳이 지금 쉬어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지금 쉬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내가 LG전자의 애자일팀일 때 날 코칭해 주던 팀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느 날 돌연 휴직을 하더니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일 년 동안 살다 온 그는, 갑자기 미국엔 왜 갔냐는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하고 싶은 건 그냥 지금 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어. 예전엔 나중에 해야지 했는데, 나중이 오지 않더라고."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뒤로 미룬다고 해서 그걸 내가 이 다음 언젠가 원하는 때에 누릴 수 있을 거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그럴 일은 절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좋은 것들을 흡수해서 잘도 내 것으로 만드는 나는 그 당시에도 예민보스인 선배가 날 관찰하고 해주는 조언들을 쭉쭉 잘 받아들였는데, 저 말이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걸 보면 꽤 깊은 울림을 주었던 말임엔 틀림없다.


저 말을 떠올리고 나니 지금 휴가를 써야 하는 이유는 명확해졌다.

'지금이 아이와 함께하기에 딱 좋은 때가 아닌가?!'

이제는 뭐 때문에 우는지, 보채는지, 떼를 쓰는지 알 수 없었던 영아 시절을 지나 언니라며 으쓱하는 어린이가 되었다. 이젠 말도 제법 잘하는데 아기 때부터 할미하비가 봐주셔서 그런지 어른 말을 다 알아들어 어휘력이 좋고, 주관도 생겨서 가끔은 실랑이를 하지만 둘만 붙어있는 시간이 길어져도 훨씬 재미있어졌다.


이 좋은 시기를 어린이집에만 맡겨둘 수는 없었다.

한 달이라도 같이 지내며 돌아오지 않을 아이의 지금을 더 많이 함께 하고 싶었다.








휴가를 내면 하려고 적어둔 것들이 있다. 그중에 대부분은 가정을 돌보는 일이었고, 두세 가지는 나의 커리어와 관련한 일이었다. 가정을 돌보는 일은 모두 실행했고, 커리어와 관련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이걸 왜 못했지?'하고 생각해 보니 너무 명확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1년쯤 지나면서 집에 와서도 회사 일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스스로를 인식하며 집에 일을 가져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로 일은 회사에서만 하고, 자리를 나서면 스위치를 탁 끄는 훈련을 했더랬다. 회사 노트북을 집에 가져오지 않았고, 개인 노트북을 사지도 않았다. 한 3년을 그렇게 지내며 일은 일터에서만, 집은 편히 쉬는 곳으로 뇌가 인식하게 만들었더니 집에서는 일에 집중이 잘 안 된다.


그래서 휴가를 맞이하며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이 거실 한 면에 책장을 놓고, 각 방의 주제를 명확히 하는 거였다. 기존엔 책이 거실에 아이 책 가득, 내 서재에 내 책 가득, 아이 방에 놀이용 책이 놓여있었다. 이제 자신이 아기가 아니고 언니라며 으쓱하는 아이는 한글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 그러면 스스로 책 읽기도 할 거라 그에 대비해서라도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모든 책을 거실로 모았다. 거실 한 면은 책장으로 세팅하고 아이 팔이 닿는 곳 까지는 아이 책을, 그 위로는 누구나 읽으면 좋을 내 책들을 넣어두었다.(아직도 서재 곳곳에 책이 남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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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우드슬랩은 책장 바로 앞에 두어 아이와 함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한다. 책장과 식탁, 소파까지 수평으로 놓여있으니 거실이 좁아진 듯 하지만, 식탁의 위치를 저리 둔 덕분에 원래 식탁 자리로 만들어진 공간은 아이와 미술이나 모래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렇게 바꾸고 나니 거실이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거실에 놓인 우드슬랩은 애초에 노트북을 펴고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무를 고르고 골라 샀던 건데, 실제로 저기서는 일이 잘 안 된다. 아무래도 거실에 위치한 탓인 것 같다. 과거 나에게 집은 곧 쉬는 곳이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님과 함께 살며 내가 일과 공부만 할 수 있었을 때 얘기고, 내 가정을 꾸린 뒤로 집은 내가 돌봐야 하는 곳이 됐다. 즉, 잘 쉬려면 치워야 했다. 거실은 집안의 어딜 가더라도 항상 거치는 곳이라 거실이 너저분하면 내가 마치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물건의 자리를 만들어 주거나, 수납해서 안 보이게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냥 그 두 가지를 모두 해서 처리했다.


매우 만족스럽다.

거실에 그냥 앉아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 각 방의 주제를 명확히 하는 건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서 주제를 바꾸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크게 깨달은 건 내 뇌가 인식하기로 서재는 일하는 공간이라는 거고, 일하는 공간은 좀 지저분해도 나의 뇌가 그다지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니 일터에서 내 자리는 항상 뭔가 많이 놓여있었는데, 그 와중에 질서가 있어서 물건들은 모두 내가 찾아 쓰기 편하게 자리해 있었다. 해서 일하다가 내가 정해둔 시간이 되면 그 시점에 태그를 한 번 긋고, 다음날 와서 자리에 앉으면 그 지점부터 다시 일을 수행했달까. 일터에 오면 뇌의 메모리에 바로 올려서 어제 끊고 간 지점부터 다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뒀던 터라 스스로에겐 최적의 환경을 구성해 둔 거였다. 당시에 누군가 내 자리를 보고, "누가 봐도 니 자리인걸 알 수 있다"며 웃었는데, 나에게 최적의 환경을 구성해 둔 거라 다른 이가 뭐라 하든 별 상관이 없었던 듯하다.

Screenshot_2014-10-27-20-45-46.png 서서 일하는 걸로 뉴스에도 나오고 생로병사의 비밀에도 출연한 덕분에 내 책상이 전국에 생중계됨


집에서도 서재는 그런 공간을 맡기로 했다.

대신 집에서는 아이가 나와 항상 붙어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역시나 물건들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되도록 수납장 안에 넣어 밖에 보이지 않게 했고, 내 책상 옆에는 아이 책상을 두었다. 아이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달라고 제 책상에 세팅하고는 내가 일할 때 자기도 옆에서 노트북 켜고 일을 하는 시늉을 한다.


조만간 서재에 사진 출력도 되는 복합기를 들여 아이 사진을 많이 출력해 볼 생각이다. 해서 요샌 '복합기 자리를 어디로 만들어줄까~' 같은 생각을 한다. 아, 코팅기와 제본기는 이미 갖추고 있다. (파워 당당)









부모님과 함께 살 때도 내 방 안에 웬만한 게 다 있어 일주일 동안 밥 먹고 화장실 갈 때 빼고는 방 밖으로 안 나온 적도 있었다. 그만큼 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정말 많이 할 수 있는데, 영아 시절의 아이는 뭐랄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못하게 하는 느낌이 있었다.


헌데 쉬면서 생각해 보니 좀 다른 문제였다는 걸 알았다.

산후 우울증이 생기는 것 같아서 출산휴가만 쓰고 바로 일터로 돌아갔던 터였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육아 출근인데 익숙지 않은 일이다 보니 큰 틀에서 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안 보이고, 눈앞에 떨어진 일 처리하는 것에만 급급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늘 숙제하는 기분이었다. 아이는 숙제 내주는 사람이고 나는 그 숙제를 받아서 처리하는 것만도 벅찬 사람이었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


아이는 이제 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독립하기 전까지는 세트로 봐야 할 게다. 인생을 길게 보면 지금은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지만, 아이 돌봄과 가사에 익숙해질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게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이런 생각이 깊어지며 회사와 나의 관계까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휴가지만 뭐가 그렇게 마음이 불편한지 잠을 제대로 못 잔 날이 많은데, 이 정도 생각하고 나니까 복잡하던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정리됐다. 내가 처한 상황과 제약이 있어 여전히 딱 잘라 답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인생에서 딱 잘라 답을 내릴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저 이런저런 것들을 고려해서 생각을 정리했더니 막연했을 때보다는 마음이 조금 놓인다고 해야 하나.


난 그저 내가 가려는 방향이 옳다는 확신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고,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던 때보다 더 큰 변화로 요동치는 와중이지만 직장이 있다.

그 누구도 뭐가 정답인지 몰라 다들 그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요즘.


그저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하자.

과거에 했던 무수한 선택과 행동이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든,

지금 내가 하는 선택과 행동이 미래의 나를 만들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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