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겸 기획 회의
오랜만에 기획 회의를 했다. 그 동안 회의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월간 토마토가 종합지 형식으로 발행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로 잡지를 만들 때는 기자들 간에 상의와 조율이 필요하지만, 종합지를 만들 때는 글 꼭지가 중복될 가능성이 거의 없고 다양한 기사를 실을 수 있어서 기자들은 편집장에게 자기가 쓸 글의 주제를 알려주고 취재를 진행한다. 느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도 척척 추진하는 유능한(?) 동료들 덕분에 우리는 모이지 않고도 잡지를 만들 수 있었다. 최근 출판사 사무실이 리모델링을 마치고 공간을 새로 단장했기에 기획 회의를 겸한 오프라인 모임을 했다. 지난 몇 달 동안 보지 못한 동료들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편집장은 종합지 형식의 월간 토마토에 대해 독자들의 반응이 좋다면서 이번 달에도 종합지를 만든다고 하였다. 잡지는 볼 게 많아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종합지가 구독자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 같다고 하였다.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면서 취재 안건을 나누었다. 전시회 기사를 준비하는 동료가 한 가지 질문과 한가지 정보를 공유했다. 질문은 전시 기간과 취재 일정 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녀는 잡지가 나갈 때쯤이면 이 행사가 막을 내린다며, 독자들이 가보고 싶어도 찾아갈 수 없는 정보를 기사화하는 것이 괜찮은지 물었다.
이에 대해 편집장은 자세히 답변해 주었다. 잡지 기사는 언제 어디서 전시회가 열린다는 정보 전달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해당 전시가 가진 의의, 관객의 반응, 기획 의도 등을 아카이빙하여 독자들이 향후에도 찾아볼 수 있게 하는 기록의 기능도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전시가 막을 내린 후 기사가 나갈 경우에는 후자에 강조점을 두어 기사를 쓰면 된다는 것이다. 나도 종종 이런 고민을 했었다. 취재 당시의 시간적 배경과 잡지가 읽힐 때까지의 시간 사이에 편차가 존재하는데, 독자들이 뒤늦게 정보를 접하면 이 기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동료의 질문에 답하는 편집장의 설명을 듣고 취재를 할 때 어떤 관점에서 준비해야 할지 배움이 있었다.
또 한 가지 나의 동료가 공유한 정보는 취재를 준비하게 된 경위였다. 본인이 처음부터 이 전시회에 관심을 두었던 것은 아니고, 지인이 SNS를 통해서 이 전시회를 취재하면 어떻겠냐고 제보해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제보를 받았다고 다 기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냐며 제보 내용이 기사로 연결이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편집장에게 물었다. 나는 가볍게 물어본 것이었는데, 편집장은 정색하고 답변했다. 독자 또는 시민이 제보한 사실에 대해 기자는 최선을 다해 기사화해야 한다고 했다. 장애물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취재하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보받은 기사를 지면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검토하는게 맞다고 했다. 그동안 내가 소화할 수 있고 조사할 수 있는 범위의 글을 맡아서 좋아했는데, 내가 잘 모르는 분야나 무거운 주제의 제보 역시 취재해야한다는 편집장의 설명에 부담이 생겼다. 제보자가 있다는 사실이 멋있게 느껴졌을 뿐, 기자로서의 윤리적 책무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못했었기에 이 말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저널리스트 vs 에디터 vs 에세이스트
내가 생각할 때 월간 토마토의 글은 언론사의 기사라기보다는 에세이에 더 가깝다. 편집장의 글은 예외이지만 다른 기자들이나 내가 쓰는 글은 그런 편이다. 편집장은 말이 나온 김에 언론사에서는 글 쓰는 사람을 저널리스트라고 하고, 잡지사에서는 에디터라고 한다며 그 차이를 알려주었다. 대략 이런 설명이었다.
[잡지의 에디터는 편집하는 사람으로 정보를 가다듬고 감각적 취향을 넣어주는 역할을 주로 한다. 월간 토마토는 문화 예술 부분을 심화시킨 저널적 성격을 가진 간행물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월간이라는 호흡이 애매하게 된 적이 없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처럼 속보를 퍼 나르는 것이 대세인데, 이런 홍수 속에서 월간지는 오히려 속보성 기사에서 다루지 못하는 주제를 다루는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 아주 천천히 하는 일을 담아내는 long-term journalism으로 가야 한다. 지금은 달마다 다른 주제로 기사를 쓰고 있지만, 반년 혹은 일 년 동안 한 분야를 취재한 후 글로 써낸 기사도 환영할 것이다.]
읽어보면 수필처럼 느껴지는 글이지만 글 쓰는 이가 기획하고, 취재하고, 사실을 확인하며 기사를 쓴다는 점에서 월간 토마토의 글은 에세이와 다르다. 프리랜서 기자에 지원하면서 나 자신이 저널리즘 세계에 발을 들인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독자의 제보를 받는 기자가 되리라고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기자 활동을 한 반년 동안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이 분야를 알아가고 있다. 출발점이 워낙 바닥이었기에 보는 것과 듣는 것 하나하나가 도전이다.
프리랜서 기자가 된다는 것
오늘 회의 중에 한 주제를 오랫동안 파고들어 르포 형식의 기사를 쓰는 사람에게는 단행본으로 책을 내주겠노라고 한 편집장의 제안이 귓가에 맴돌았다. 어쩌면 편집장은 프리랜서 기자가 글을 잘 쓰기를 기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누구든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 도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월간 토마토에 글을 써도 좋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프리랜서 활동을 하는 동료들과는 한 달에 한 번이나 그보다 적게 만나는 사이지만 글을 통해 그들을 조금씩 알아간다. 어떤 취재처를 고르는지, 글의 온도는 어떤지, 사진은 어떻게 찍는지, 편집 후기는 어떻게 작성하는지를 보면서 동료들에 대한 퍼즐 맞추기를 조금씩 완성한다.
회의 끝에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대전을 방문하는 젊은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성심당(빵집)-프렐류드 스튜디오(문구점)-다다르다(서점)에 가는 코스가 정석이라고 말이다. 편집장과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20대인 월간토마토 동료들은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였다. 프렐류드를 몰랐던 나는 회의를 마치고 이곳에 들러보았다. 인싸가 되려고 그랬다고 여기면 오해다. 어디까지나 시내 나온 김에 두 가지 볼일은 보고 가야 한다고 정해 둔 염주희 표 프리랜서 규칙 1번을 충실히 따르려는 마음에서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