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라는 말

by 반고


지난여름 두 달 동안 책 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1교시는 글쓰기 강의, 2교시는 수강생 합평으로 꾸렸다. 처음 만난 참여자들은 서로의 글을 읽으며 친밀감을 키웠다. 대구가 고향인 60대 수강생이 글에서 ‘할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으로 외할머니를 꼽았다. 이 글을 읽은 다른 사람이 말했다. “이 글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외할머니인 거죠? 그러면 외할머니라고 써줘야 하지 않을까요? 통상, 할머니 하면 친할머니고, 외할머니는 ‘외’ 자를 붙이니까요.” 이 발언을 계기로 우리는 할매, 할머니, 친할머니, 외할머니라는 호칭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글 작성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요즘에는 ‘할머니’ 하면 외할머니를 말하는 거라고 하데요. 요새는 딸 중심 세상이고 손주들은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랑 친하니까 그렇대요. 아이들이 자주 소통하는 할머니가 외할머니인 거죠. 그럼 친할머니는 뭐라고 하냐고요? 예전에는 ‘친’을 빼고 그냥 할머니라고 했는데, 그 단어를 외할머니에게 내주었으니 지명을 붙여서 부르는 거죠. 친할머니가 부산에 살면, 부산 할머니 이런 식으로요. 또 친할머니 댁은 지역적으로 멀고, 명절 때 머무는 곳이니까, 만나러 갈 때마다 여행하는 기분이 들잖아요. 그래서 지역 이름을 붙여서 부르는 게 대세라고 합니다.”


수강생의 말은 국립국어원이 발간한 자료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뭐라고 부를까요?』에는 "전통 언어 예절에서는 아버지 쪽은 가까움을 뜻하는 '친(親)-'을 쓰고, 어머니 쪽은 바깥을 뜻하는 '외(外)-'를 써서 구분해 왔는데, 지역 이름을 넣어 친·외가 구분 없이 표현”한다고 쓰여 있다. 대부분 아버지 가족과 왕래했던 과거 문화의 영향으로 ‘친할머니=할머니’로 쓰다가, 근래 들어 ‘외할머니=할머니’로 통용된다고 해서 부계로 기울었던 가족 호칭이 비로소 균형을 찾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친’ 또는 ‘외’라는 접두사를 붙여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배제하면, 할머니라는 단어는 포용력을 읽는다. 호칭의 형평성에 연연하지 말고 가까이 지내는 조모를 할머니라고 부르거나, 양가 할머니 모두에게 지명을 붙여 부르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할머니~”하고 부르며 달려가 꼭 안을 수 있는 사람 한 명이 옆에 있는가가 핵심이다.


어떤 사람을 할머니라고 부르는가? 몇 년 전 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60대인 친정어머니와 30대인 내가 서울 지하철을 탔다. 우리는 70대 후반 또는 80대 초반으로 보이는 멋쟁이 할머니 옆에 앉았다. 곱슬곱슬한 은빛 단발과 연분홍색 누빈 조끼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 정거장쯤 지났을까,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옆사람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조끼가 정말 멋지네요.”

“고마워요. 내가 직접 만든 옷이에요.”

“어머나, 손재주가 대단하시네요?”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다가 할머니가 지하철에서 내리자 대화를 마쳤다. “왜 저분에게 아주머니라고 했어요? 할머니라고 하지 않고요?” 내가 물었다. “요즘 할머니들한테 할머니라고 하면 안 좋아해. 아주머니라고 해야지.”

60대 할머니는 자신보다 나이가 있는 여성을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내 또래의 중년 여성을 내가 아줌마라고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걸까? 내가 두 세대 이상 나이 차가 있는 할머니를 아주머니라고 불렀으면 이상했을 것인데, 어머니가 그녀를 아주머니라고 부를 때는 센스 있게 들렸다. 호칭은 무언의 계약이라, 서로 받아들이는지 아닌지 은근하게 파악한다. 스스로가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시기는 점점 늦어지는 추세고, 누군가가 할머니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외모나 나이보다 마음에 달려있다. 관계적으로는 40~50대에도 손주를 봄으로써 할머니가 될 수 있다. 그녀를 할머니라고 불러줄 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손주와 살뜰한 관계를 맺는 조모, 혈육으로 정의하는 좁은 의미의 할머니 서사가 아니다. 나이 듦과 함께 현명함, 따뜻함, 용기, 세련됨을 배가시킨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웃에게 넉넉한 마음을 가진 멋진 할머니들을 많이 만났다. 이 경험 덕분에 할머니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심리상담가이자 작가인 메리 파이퍼는 그녀의 저서『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에서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윤리적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선생님이며, 시간, 장소, 사람을 엮어서 젊은 세대의 정체성을 지켜줄 안전망을 조성한다고 하였다. 이때 할머니는 젊은 세대에게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그들의 삶 역시 충만하게 차오르는 기쁨을 경험한다.


“어떤 일도 잘 풀리지 않는 날에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라.” -이탈리아 속담-


누구에게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 너무 잘 풀려 자랑하고 싶은 날, 그저 목소리 듣고 싶어서 연락했다고 콧소리 내며 전화할 할머니가 필요하다. 어쩌면 할머니라는 호칭이 없어도 된다. 이름이나 별명으로 불러도 좋다. 나와 다른 세대에 살지만, 내가 할 실수는 다 해봐서 척 보면 이해하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할머니다운 친구가 있으면 된다.


나의 친할머니, 외할머니, 시할머니는 모두 돌아가셨지만, 나에겐 이 책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이 있다. 그들을 생각하면 힘내서 더 열심히 일하고, 어서 같이 놀고 싶다. 할머니들은 나를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고 하니, 이런 시너지도 없다. 우리 삶에 할머니 친구가 꼭 있으면 한다. 여럿이면 좋겠지만 한 명이어도 괜찮다. 할머니 친구를 어떻게 사귀는지 모르겠다고? 이 책에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