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친구예요?

by 반고

만남


그녀와 나는 열일곱 살 차이다. 내가 한 주에 한 번 이상 만나는 사람이니, 가족을 제외하고 가장 자주 보는 사람일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이소라이고, 나는 그녀를 소라 님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자원봉사 기관에서 만났는데 선배인 그녀가 나의 적응을 도왔다. 우리는 봉사 시간 이외에도 자주 어울려 다녔다. 독서와 글쓰기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어 금세 친해졌기 때문이다. 독립서점 나들이, 도서관 탐방, 북 토크 참석 등 책과 노는 일에 의기투합했다. 만난 지 서너 달 때쯤 지났을 때, 그녀가 말했다. “내가 올해 육십이 되는데, 환갑 기념으로 인문학 독서모임을 만들고 싶어요. 같이하면 어때요?” 그녀는 지난 삼십 년간 치유를 위한 독서모임을 이끌어왔고, 이번에는 다방면의 책을 읽는 북클럽을 준비 중이었다. 함께 읽기는 처음이었지만, 둘의 독서 취향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재미있을 것 같았다. 책 모임 고수와 왕초보가 만든 동아리는 이제 햇수로 3년이 되었다.


우리는 수요일마다 독서모임에서 만난다. 그 외에는 가끔 함께 카페에 간다. 그녀가 주로 장소를 정하고 나는 차를 운전한다. 카페 발굴은 내공이 필요하다. 오전에만 방문할 때는 일찍 여는 곳, 시간이 짧으면 가까운 곳, 여유가 있으면 차창 밖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정한다. 게다가 소라님은 음악 소리가 잔잔해서 책 읽기 좋은 공간, 노트북용 콘센트가 적재적소에 있는 카페, 인심 좋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장소까지 꿰고 있다. 소라 님이 크게 따지지 않는 것은 커피 맛이나 디저트 종류이다. 나는 허브차를 마시니 불만이 없다. 사색하고 공부하기 좋은 공간을 잘 찾는 그녀에게 나는 ‘카페 발굴 전문가’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카페 고르는 법


소라 님에게 카페 고르는 법을 물은 적이 있다. 의외로 단순했다. 카카오 지도에서 동네를 정하고 카페를 검색하여 사진을 유심히 보는 것이다. 자연 속에 있는 공간인지, 건물 한 층을 통째로 쓰는 곳인지, 좌석 수가 많은지, 책 읽기 적당한지, 가구는 편안한지 등 전반적인 분위기를 판단한다. 날씨와 계절도 본다. 한 번은 활짝 핀 수국을 기대하고 갔는데, 만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아쉬워하며 이주 후에 다시 오자고 하였다. 공간의 특징을 떠올리며 언제 가면 좋을지 가늠하는 모습에서 고수의 면모를 보았다.


최근 같이 간 카페는 농가를 이웃한 근교에 있었다. '집 가까이도 아닌데 여긴 어떻게 알았지?' 이 동네에 볼일 보러 온 김에 검색해서 찾았다고 했다. 네팔 산장 같은 외관은 마음에 들었지만, 글 쓰고 공부하기에는 실내가 어두웠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는 나를 특별한 공간으로 안내했다. 건물과 정원의 중간에 있는, 실내 같기도 하고 실외 같기도 한 썬 룸이었다. 아기자기한 장식에 정신이 팔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소박한 이곳이 안성맞춤이었다. 노트북 너머 창문으로 나무, 꽃밭, 항아리가 보였다.


친구라며


아침 일찍 네팔 스타일의 카페를 방문하던 날, 우리는 등장부터 수선스러운 방문자였다. 개장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것이 문제였다. 벤치에서 사진 찍고 놀다가 9시 정각이 되자 카페 번호로 전화를 했다. 불이 꺼져있고, 주차장도 비었으니 개점 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장님, 저희 카페 왔는데요. 아직 오픈 안 하셨죠?” 전화기 너머로 이미 열었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사장님은 전화를 끊자마자 입구까지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나는 멋쩍음과 미안함을 마스크 속에 감추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안녕하세요? 제 친구가 여기 좋다고 꼭 와보자고 해서요. 저희 되게 일찍 왔죠?”


카페에서는 따로 앉을 때가 많다. 오전에는 각자 일하고,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소라 님에게 물었다.

“우리가 친구예요?”

“아까 친구라고 했으면서! 카페 사장님한테 ‘제 친구가 좋다고 데려왔어요’ 이러지 않았어요?”
“그랬죠. 제가 친구라고 그러면 기분이 어떠세요?”

“좋지. 선배나 뭐 다르게 부르는 것보다 친구가 제일 좋죠.”

“그러고 보니 우리 둘이 하는 활동이 다 친구끼리 하는 거네요. 카페 가고, 책 이야기하고, 아이들 고민 상담하고.”


이전에도 나이 차이가 있는 인생 선배들과의 교제를 즐거워했지만, 서로를 친구로 받아들인 사람은 소라 님이 처음이다. 최근 나는 프리랜서 삶에 입문했는데, 이 친구를 통해 N 잡러의 일정 관리법을 배웠다. 60대인 그녀는 인생에서 제일 바쁜 시기를 넘겼다. 요즘은 강의하고, 글을 쓰고, 상담하고, 학습모임에 가고, 가족들 대소사를 챙긴다. 소라 님과 나는 공저로 책을 쓰고 함께 강연도 했다. 그녀는 마감일을 넘기는 법이 없었다. 한 번은 분량을 절반으로 나누어 각자 편집한 후 상의하기로 한 원고가 있었다. 나는 막바지에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는데, 그녀는 우아하게 작업을 마쳤다. 이걸 하느라 저걸 못했다는 구차한 변명이 필요 없는 막강한 뒷심이 부러웠다. “이 우직함, 진짜 배우고 싶어요.”라는 고백에 소라 님은 아무래도 가족이 단출하니까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고 했더니, 그녀는 좀 더 생각해보고 말했다. “나도 옛날엔 뒷심이 세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삶에는 예고 없이 닥치는 것이 있다는 걸 경험한 거죠. 그러니까 급하지 않을 때, 별일 없을 때, 약속한 일, 예측할 수 있는 일은 해 두면 몸과 마음이 편하다는 걸 알게 되었달까요?” 현명한 일정 관리 비법은 ‘미리’ 하기였다.


자연과 가까이


그날 우리는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추어 카페에서 나왔다. 꽤 긴 시간 한 공간에 머물렀는데, 글이 잘 써졌다. 일이 잘 되었다는 말에 소라 님은 중간중간 자연을 바라보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잠깐 마당을 거닐거나 고개를 들어 푸릇함을 보기만 해도 정서적 환기가 된다는 거다. 그녀와 함께 과수원 옆 카페에서 배꽃을 보며 글 쓰던 날, 통창 너머로 계룡산이 한눈에 보이는 카페에서 공부한 날이 기억난다. 전부 생산적인 시간이었다. 얼마 후 신문에서 헤르만 헤세의 서재를 보았다. 그의 책상은 아치형 유리문을 바라보았는데, 양쪽 여닫이문을 열면 자연을 집안으로 불러들였다고 할 만큼 개방감이 있었다. 작업하다 쉬엄쉬엄 푸르름을 바라보았을 헤세의 모습을 상상하며, 글이 잘 써지는 카페를 선별하는 그녀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신세대 할머니


나는 소라 님을 통해 신세대 할머니의 일상을 엿본다. 두 해 전 겨울 그녀와 나는 손그림 카드 만들기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일러스트레이터의 지도로 색연필 그림을 완성한 후 디지털로 변환하여 엽서를 제작하는 수업이었다. 나는 그림책의 한 장면을 따라 그렸고, 그녀는 손녀의 사진을 보고 그렸다. 마지막에 선생님이 보정해준다는 말 덕분에 우리는 부담 없이 참여했다. 며칠 후 완성품을 받아본 그녀가 말했다. 선물 주려고 보니 손녀가 둘인데 한 명만 그려서 다른 손녀가 섭섭할까 걱정이라는 것이다. 수업을 한 번 더 들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에서 공평한 할머니가 되려는 그녀를 보았다.


얼마 전에는 소라 님이 연못이 있는 한옥 카페에 다녀왔다고 했다. 손녀에게 주려고 올챙이 사냥을 한 것이다. “내가 올챙이 엄청나게 잘 잡는 거 모르죠?” 다섯 살 손주에게 장난감이나 동화책이 아니라 올챙이를 주는 할머니가 내 친구라니! 전화를 끊고 나니, 올챙이 잡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건지 궁금했다. 카톡을 보냈다. “올챙이 잘 잡는 비결이 뭐예요? 전 옛날에 종이컵과 페트병으로 잡았는데. 그리고 잘 키우는 비결은?” 금세 답이 왔다. “맞아요. 잡을 땐 종이컵 두 개로 잡으면 잘 잡히고 키울 땐 수돗물 하룻밤 묵혀서 며칠에 한 번씩 갈아주면 돼요.” 대단한 도구가 없음을 알게 되어 피식 웃었지만, 젖은 종이컵이 못 쓰게 될 때까지 올챙이를 잡았던 유년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따뜻해졌다.


카페 사장님에게 소라 님을 친구라고 한 날, 우리가 친구 사이냐고 물은 날, 당연한 걸 묻냐는 답을 들은 날, 몇몇 사람이 떠올랐다. 나더러 맨날 할머니들이랑 논다고, 도대체 뭘 하고 노는지 말해보라던 이였다. 나의 할머니 바라기는 꽤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소라 님과 친구가 되고 나서 내가 할머니를 편파적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할머니를 연구하고, 할머니와 일하다가, 이제는 할머니랑 노는 사람. 나는 할머니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