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할머니들을 편파적으로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 남편이 말했다. 그날 저녁 나는 밥을 먹으며 조문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두 달 새 세 번이었다. “당신이 교류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서 그런 걸까?” 남편은 이렇게 묻더니, 젊을 때는 친구 결혼식이나 아이 돌잔치에 가고, 나이 들면 친구 자녀의 결혼식이나 부모님 장례식에 간다는 말도 했다.
편파적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넌 편파적이야.” 하면 싸우자는 뜻이다. 경향이 있다는 말로 완급조절을 했지만, 한방이 들어 있는 말이었다. 남편은 조용히 할 말을 찾고 있던 내 표정을 살피더니, 공격할 뜻은 없었으며 그저 최측근 관찰자의 느낌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할머니들이랑 잘 어울려? 만나면 뭐 해? 재밌어?” 그간 주변인들에게 받았던 질문을 떠올려본다. 할머니들과 사귀는 일은 늘 해명의 번거로움이 따라왔다. 사람들은 내가 특별해서 할머니랑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실은 그 반대였다. 인생의 기승전결을 겪어본 할머니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신의 절반밖에 살지 않은 밋밋한 젊은이에게 시간을 내주는 것이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노라 에프런이 저술한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에 이런 글이 나온다. 엇, 이거 완전 내 얘기잖아! 적잖이 놀랐다.
젊은 여성이 나이 든 여성을 우상화한다. 젊은 여성이 나이 든 여성을 따라다닌다. 나이 든 여성이 젊은 여성을 받아들여준다. 젊은 여성은 나이 든 여성이 그저 인간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이야기 끝.
젊은 여성이 작가라면, 언젠가 그 나이 든 여성에 대해 글을 쓰게 된다.
세월이 흐른다.
젊은 여성이 나이가 든다.
이삼십 대 일 때 나는 두 세대 위 여성과 교류하였고, 사십 대인 지금 한 세대 위의 여성과 우정을 쌓고 있다. 나는 언제부터 할머니 예찬론자가 되었을까? 이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할머니 바라기는 자연스러움에 가까이 가려는 끌림이었다. 누구나 ‘삶’이라는 무게를 감당하며 나이가 든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인생을 몇십 년 먼저 경험한 선배를 통해 훗날의 나를 당겨 만나고 싶었다.
며칠 전에는 또 다른 60대인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60에 아는 것을 40에 알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잖아요? 주희 님은 60대들이랑 어울리며 일찍 그런 걸 아니까 참 좋겠다 싶더라고요. 어찌 보면 인생을 더 현명하게 사는 거야. 실수를 덜 하게 되니까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녀들이랑 친하게 지내서 얼마나 좋은지는 그 이야기로 책 한 권이 나올 정도다. 그녀들도 나와 어울려서 좋은 점이 있는지? 묻지 못했다.
나는 나이 들수록 할머니들의 매력을 잘 발견한다. 예전에 머리로 이해하던 것을 이제 나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의 삶에서 어머나! 하는 반짝임을 발견하면 나중에 저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동경이 아니라, 현재 삶에 할머니스러움을 새겨 넣고 싶다. 닮고 싶은 할머니스러움이란 어떨 때는 여유이고, 어떨 때는 지혜이며, 어떨 때는 자부심이다.
하지만 할머니 바라기의 시작은 맑음이 아니었다. 할머니라는 존재, 노년이라는 화두가 나에게 중요한 일이 된 것은 친할머니 때문이다. 친할머니와의 동거는 내 생애 처음 4년과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4년, 두 번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네 살 때까지 조부모님 댁에 살았고, 그 이후에는 부모님이 분가하여 간간이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 댁을 마포 집, 친할머니를 마포 할머니라고 불렀다. 내가 마포 집의 최연소 가구원이었을 때 할머니는 노인이 아니었다. 손주가 있으니 관계적으로 할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했지만, 실은 젊은 나이에 며느리를 맞이한 40대의 중년 여성이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 1학년 때, 친할머니와 다시 한집에 살게 되었다. 이번엔 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왔다. 당뇨합병증과 치매로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이 생기자, 할머니는 부모님과 네 자녀로 이루어진 우리 집에서 지냈다. 의견이 분명하고 이치에 밝았던 할머니가 다른 사람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할머니의 문제는 나를 파고들었다. 어른이 되어 내가 처음으로 치열하게 고민한 주제는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과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였다. 혼자 생활할 수 없는 할머니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무엇을 대비해야 할지 알고 싶었다. 할머니는 내가 대학 1학년 때 우리 집에 오셔서 4학년 때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해에 유학을 준비 중이었는데, 할머니의 고통을 지켜보며, 돌봄을 제공하는 보호자의 일상이 망가지는 것을 관찰했던 나는 그 후 노년학을 연구하기로 했다.
이렇게 친할머니는 나의 진로에 영향을 미쳤고, 그 이후에도 많은 할머니를 만났다. 나는 대학원과 직장에서 연구자와 연구대상자로 그들을 만났다. 학문적으로 접한 할머니의 세계는 그들의 일상을 알수록 더 흥미로워졌다. 나는 그녀들의 부러지지 않는 회복탄력성, 무뚝뚝하면서도 다정한 스타일, 있을 때 누리라는 현재 즐기기 철학에 반했다. 직업을 바꾸어 이제 업무적으로 할머니를 만날 일이 없어졌지만, 대신 친하게 지내는 그녀들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