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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 Oct 25. 2023

빨래 독립

원격 엄마와 찐 엄마 사이를 오가는 중

식자재 검수 봉사를 하는 날이라 새벽부터 호링 학교에 갔다. 일을 마쳤을 즈음 급식실에서 아침을 먹고 나오는 호링이를 만났다. 못 보던 옷을 입고 있었다. 이번 주에 교복 업체에서 기숙사로 소포를 보내주어 처음으로 하복을 착용한 것이다. 주말에만 호링이를 만나니, 주중에 일어난 소식은 한발 늦게 듣는다.

입학 전 기숙사에 가져갈 짐을 쌀 때의 일이다.

「호링, 준비물 목록에 세탁 세제가 있네. 빨래를 자주 할 건 아니니까 용량 적은 걸로 사자」

「에이 필요 없을 거 같은데? 주말에 가지고 오면 되잖아」

「집에 가지고 오더라도 주중에 빨래할 일이 생길 수 있지」

「그런 일이 있겠어? 그냥 옷을 많이 가지고 가면 안 될까?」

「음... 자다가 코피가 나서 베개 커버를 빨아야 한다던가, 체육복에 땀 흘려서 도저히 금요일까지 기다릴 수 없다던가 그럴 때? 혹시 모르니까 챙겨가자」

학기 초 호링이는 주말마다 빨래를 실어 날랐다. 캐리어에 넣어 몇 번 해보더니 짐을 싸고 푸는 게 더 귀찮다며 직접 세탁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자녀가 스스로 해보겠다는 일은 대부분 허락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만류했다.

「호링이가 빨래는 잘할 거 같은데 다림질은 어떡하지? 와이셔츠 때문에 어차피 옷을 챙겨 오긴 해야 하는데」

「엄마, 아무도 교복 다림질 안 해요. 그냥 잘 털어서 옷걸이에 걸어놓을게」

작년까지 돌돌이의 특별 요청을 수행했던 나로서는 호링이의 털털함이 신기했다. 교복 칼라가 붕 뜨면 이상하니까 목 부분을 세게 다려주세요와 탁탁 털어 입으면 돼요 사이의 온도 차이라니.

수업 종과 함께 아이들이 사라진 후 차에 탔다. 집에 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들 일을 잘 모르고 지냈다는 미안함, 옷을 챙겨주지 않아 중요한 사인을 놓쳤을 수 있겠다는 불안감 같은 거였다. 빨래에는 많은 정보가 들어있다. 언젠가 우리 집 세탁물에서 라이터가 나와 주인을 수소문했더니, 돌돌이와 호링이 둘 다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시내버스에서 교통카드만 사용하게 된 후, 빨래함에서 송금 정보가 적힌 버스회사 명함을 발견했다. 가족 중 유일하게 버스를 타는 호링에게 교통카드 잘 챙기라고, 어떻게 차비를 안 내고 버스를 타느냐고 했다. 호링은 그런 적 없다며, 친구가 준 것이라고 항변했다. 라이터를 꼭 숨겨야 할 처지였으면 바지 주머니에 넣겠나 싶어 더는 문제 삼지 않았고, 무임승차가 민망한 일인 줄 알았으니 앞으로는 안 그러겠지 하고 넘어갔다. 빨래는 일종의 레이더로, 더 큰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장치였다.

고등학교 일 학년이 빨래를 혼자 하기엔 이른가 싶어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호링이의 결정을 따르기로 한 후에는 혼자서 잘할 수 있다고, 도움이 필요하면 상의할 것이라고 믿었다. 몇 달간 그렇게 지냈는데, 낯선 옷을 입은 호링이를 보니 아이와 나 사이가 멀게 느껴졌다.

호링이의 셀프 빨래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가끔, 기숙사에서 의젓하게 빨래를 하는 호링이와 우리 집 빨래함 밖으로 수건을 던져 놓는 호링이가 같은 사람인지 헷갈린다. 내가 주중에는 원격 엄마로, 주말에는 찐 엄마로 지내며 혼란을 겪는 것과 비슷할 거라고 짐작해 본다. 호링이는 집과 학교의 중간 어디쯤에서, 나는 자녀의 존재와 부재가 반복되는 주기에 적응 중이다.

학교에 도착한 호링이가 차에서 내리면서 당부했다.

「엄마, 제가 어제 입은 와이드팬츠 건조기 돌리면 안 되는 거 아시죠? 그거 줄어들면 멋이 없어서 못 입어요」

그 정도는 내가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의복 관리였다.

Photo Credit: Bing Image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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