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호링이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엄마, 나 숨겨진 재능을 찾았어.」
「아니, 호링이한테 재능이 더 있었어?」
자칭 못 하는 게 없는 재능 부자라는 아들이 어떤 희한한 재주를 발견했는지 궁금했다.
「내가 머리를 잘 자르더라고. 접때 룸메이트가 부탁해서 한번 해봤거든? 마음에 든다고 또 해달라는 거야. 벌써 두 번이나 잘라줬어.」
「머리? 미용실에서 하는 커트?」
「어, 처음엔 앞머리만 살짝 잘라 줬거든. 근데 좋다고 옆머리도 해달래. 친구가 이발기는 원래 가지고 있었고, 이번에 숱가위도 샀어. 주기적으로 기숙사에서 자를 건가 봐. 앞머리는 금방 했는데, 옆머리는 망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유튜브 영상 보고, 이미지 트레이닝 한 다음에 잘랐어」
「다른 건 몰라도 커트는 좀 위험부담이 있는데? 네가 실수해서 친구 스타일을 망칠 수도 있고」
「미용실 원장님이 내 머리 손질하실 때 봐둔 게 도움이 되더라고. 나야 가까우니까 주말에 집에 오지만 친구는 기숙사에 있잖아. 외출증 끊어서 미용실 가는 것도 힘들고, 돈도 들고 하니까 자꾸 미루다가 이발할 시기를 놓쳤거든. 우리 방 화장실에서 해보더니 정말 편하다면서, 내가 또 해주면 좋겠대. 시간도 얼마 안 걸려. 쓱쓱 자르고 샤워기로 물 한번 뿌리면 끝」
「초보한테 맡긴 친구나, 처음 미용가위를 잡고 남의 머리를 만진 너나 진짜 대단하다」
「이런 게 기숙사의 재미지. 할 수 있겠다 하는 거는 일단 직접 해보는 거. 친구가 머리 망쳐도 다시 자라니까 괜찮대. 근데 진짜 잘 잘랐어. 아주 마음에 들어 했어. 나 미용 좀 잘하는 듯」
호링이는 자신감이 크다. 망설임 없이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고, 혹여나 결과가 좋지 않아도 곧 회복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인 자신감은 과거 경험을 통해 생기므로 어릴 때부터 작은 성공이나 성취감을 느낀 것이 자신감 충만한 청소년이 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호링은 공구 다루기, 로봇 만들기, 악기 연주, 운동과 같은 몸으로 하는 일을 잘해서, 눈에 보이는 성과가 많았고 자연스레 주변의 칭찬을 받았다. 마음먹으면 못할 게 없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아이라 자신감이 큰 줄은 알았지만, 영상 따라서 커트 몇 번 해보고 재능 운운하는 건 근거가 약했다.
문득 호링이가 TV에서 봤다면서 학생을 두 종류로 나누어 설명해 준 게 생각났다. 학업 멘토링을 해주는 <티쳐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일타 강사가 공부 잘하는 청소년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분석하였다. 첫 번째 유형은 자기 자신을 믿는 학생으로, 학구열이 높은 학교에서 경쟁에 밀려 만족스러운 성적을 얻지 못하거나, 주변 상황이 열악해서 충분한 자극을 얻지 못해도 자신이 노력하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유형은 노력의 결과인 성적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으로, 성적이 좋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성적이 떨어지면 좌절감을 느낀다. 이런 학생은 실패를 극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에서 자신감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호링은 본인이 전자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 글을 쓰면서 호링이가 자신감이 큰 이유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아들의 자신감은 만족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 같다. 호링이는 “이만하면 어때? 이 정도면 훌륭하지!”라는 표현을 잘 쓴다. 내가 어떤 일을 좀 더 잘하려고 애쓰면 호링이는 넌지시 다가와 “엄마 굳이 그렇게 해야 해? 지금 딱 좋은데”라며 적정선을 제시한다. 그래서인지 셀프 칭찬은 물론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데도 후한 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두 번째 유형의 청소년이었다. 공부를 잘하면 그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에 힘들었고,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자책하느라 힘들었다. 세월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가끔 호링이가 주 양육자인 나의 기질을 물려받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다. ‘나는 나일뿐’이라며 남과 비교해서 자신을 평가하지 않는 호링이가 세파에 찌들지 않고 계속 멋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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