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8. (일)
학교로 돌아갈 짐을 챙기던 은호가 말했다.
“엄마, 샤프 있어?”
“샤프야 많지, 근데 네가 원하는 게 있을지 모르겠네. 문구 상자 한번 열어봐.”
상자를 뒤지던 아들은 찾는 게 없다고 했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 사 가자는 제안을 거절하길래 꼭 필요한 건 아니구나 싶었다.
다음 날, 쿠팡에 들어갔더니 가장 최근 구매 기록에 샤프가 있었다. 일요일 저녁, 학교에 가자마자 주문해서 화요일에 기숙사로 배송받았다고 나왔다. 사러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을 나는 대체품이 있나 보네 한 것이고, 아들은 온라인으로 주문해야지 했던 거다. 은호는 2,150원짜리 샤프를 하나 사고 2,500원의 배송비를 내서 총 4,650원을 썼다. 늘 쓰는 필기구면 여러 개를 사서 배송비를 줄이던지, 문구점에 들리자 할 때 갈 것이지, 이런 낭비가 있나 싶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아들의 소비가 수긍이 안가는 건 아니었다. 평소에 말하길 할인한다고 쟁여두지 말고 꼭 필요한 만큼만 사라고 했으니, 집에서 배운 대로 한 것 같기도 했다. 운전하고 시내 문구점에 가도 주유비, 주차비로 2,500원은 들었을 테니 택배비가 과한 것도 아니었다.
구매 내용을 본 김에 그간 기숙사로 배달한 물건을 훑어봤다. IT 관련 용품, 생활용품, 미용용품이 대부분이었다. IT 용품은 충전케이블, 충전기, 노트북 화면 닦는 천, 노트북 파우치가 눈에 띄었다. 개발자를 꿈꾸는 고등학생답게 노트북 관련 구매가 많았다. 생활용품은 세제와 빨래걸이가 있었다. 입학할 때 집에서 쓰던 액상 세제를 가져갔는데, 새로 살 때마다 제품을 바꾸더니 지금은 소포장 캡슐 세제를 사용한다. 세탁실 갈 때 무거운 통을 옮기는 게 번거롭다는 게 이유다. 훗날 세탁기가 있는 집에 살면 대용량 세제로 바꾸겠다고 한다. 양말 건조대는 건조기 사용을 금지하는 기능성 양말을 사면서 새로 들였다. 발 다한증을 잡아주는 양말을 한 켤레 주었는데, 더 보내달라고 했다.
“엄마, 이 양말 정말 좋아. 발냄새가 안 나요. 양말을 전부 이걸로 바꿔도 좋겠어요. 근데 말릴 데가 없어요. 친구 것 보니까 양말 말리는 옷걸이가 따로 있던데, 그것도 같이 쓰면 좋을 것 같아요.”
검색해 보니 집게로 집어 좁은 공간에서 양말을 말릴 수 있는 소형 제품이 있길래 학교로 보내주었다. 아들이 쿠팡에서 쇼핑한 것 중 가짓수가 가장 많은 것은 미용용품이다. 토너, 앰플, 향수, 클렌징 오일, 바디워시, 샴푸, 가글 등을 샀는데 꾸준히 재구매하는 것도 있고, 샀다가 필요 없다며 집에 두고 간 것도 있다.
청소년이 스스로 물품을 사는 일은 장단점이 있다. 고등학생이 생활용품 가격을 아는 것만으로도 경제관념을 기르는 거로 생각하지만, 비싼 세제를 주문하는 것은 그러려니 해야 한다. 기숙사 친구의 물품을 써보고 사는 것은 적절한 물건을 찾는 수고를 줄여주니 효율적이지만, 어쩐지 휩쓸려서 사는 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사놓고 쓰지 않는 물건은, 음…그런 시행착오는 누구나 겪는 게 아니던가? 써보고 어떤 게 본인에게 맞는지 알아가는 것은 의미 있다.
몇 개 없긴 하지만 내가 산 생활용품 중 호평받은 것은 다한증 완화 양말이다. 어느 날 인터넷에 발 냄새가 없어지는 양말 광고가 뜨길래, 내 관심사도 아닌데 웬일이지 하고 지나갔다. 몇 번 그 정보를 보니 발에 땀이 많아 고민인 아들이 신으면 어떨까하고 생각했다. 은호를 만났을 때 물었다.
“근데 왜 나한테 그 광고가 떴는지 모르겠어? 그런 제품을 찾아본 적이 없는데.”
“알겠다! 나 때문인가 봐. 내가 온라인에서 발 냄새 없애는 제품을 찾아봤거든. 엄마랑 나랑 같은 계정을 쓰니까 엄마한테 그 광고가 보였나 보지.”
“그랬을 수도 있겠네. 은호 네가 한번 사보지 그랬어?”
“나는 효과가 없을 줄 알았지. 발냄새가 진짜 없어질 것으로 생각하질 않았거든.”
“그래서 엄마가 한 개 사보고 네가 좋다고 한 후에 여러 개 주문한 거야. 배송비는 들었지만 확실하지 않을 때 하는 방법이야.”
“오, 좋네. 그래도 되는구나.”
필요한 거 알아서 사니까 걱정하지 말라던 아들이 영락없는 10대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Photo Credit: https://pixabay.com/users/preis_king-13794513